Mission믿음간증歷史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명사들의 회심

영국신사77 2007. 4. 7. 02:30
               나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2004-11-05
오후 5:38:54

[원글보기] 바람소리 브로그입니다~



 

                                   1. 여성들의 고백

 

 

김소엽
어린 시절부터 교회생활은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남이 없었던 김소엽은 초등학교 때 모친을 여의었고 교사로 첫 부임을 하던 해에 또 아버지를 잃는 불우한 경험들을 겪는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만에 대학원에 가게 된다. 우연히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에 관한 졸업논문을 되는데 이 논문을 준비하면서 인간의 죄성의 발견과 함께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는다.
드디어 그녀는 참회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권유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함께 그 동안에 그토록 초라해 보였던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그러던 중 남편은 연세대 정교수가 되었으나 많은 일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한창 나이에 죽음을 맞고 만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신앙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통하여 십자가의 은총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세속적인 겉멋의 껍질이 벗겨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그녀는 작가로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다. 정금 같이 빚어 가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양 영자

아시아 선수권 단체전에서, 서울 올림픽 복식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던 양 영자는 선수에게 치명타인 건강의 문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선배 어머니의 권유로 안수받기 위해 기도원에 가게 된 것이다.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진리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기도원에서 그녀는 설교를 듣고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6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테니스 엘보우라는 병을 완치받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녀의 고집스럽던 성격은 점점 변하여 순한 양처럼 되어 갔고 승부사 근성은 약화되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신앙고백에서 감동적인 것은, 병낫는 체험보다 말씀에 기초한 신앙생활이 더욱 참되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선교사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양 은순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출석하였으나 그녀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죄인이라는 참다운 자각도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대학생선교회에서 만난 한 청년의 진지한 접근에 의해 성경말씀 특히 계21:8절에 열거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죄들에 대해 깊이 참회하기에 이른다. 개인적인 영접기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삶의 구주,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접기도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아무런 체험이 없어도 지적으로, 의지적으로 영접하는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이후에 생명의 말씀사에 근무하는 약대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에 이르렀고 남편의 권유로 가정사역에 관련된 서적을 번역하는 등 가정사역에 뛰어들게 되었다. 남편의 신학 공부를 계기로 도미하여 가정사역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국내에 돌아온 이후 보다 더 왕성한 가정사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정효

서울신대 기독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안 정효씨는 어린 시절, 1949년 가을에 굴다리 밖에 내버린 간난 아이의 시체를 여러 아이들과 함께 보게 되는 계기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왜 죽는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10대 시절을 보내던 중 1950년 어느 한가로운 오후에 대청마루에 앉아 엄마의 다람질을 돕고 있다가 낯설지만 극도로 선명한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눈같이 깨끗한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성경책을 들고 와서 받으라고 권유한 것이다. 이후에 6.25를 겪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서 불교, 실존주의에 탐닉하여 진리를 궁구해 보았지만 참된 진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삶에 대한 허무감과 무력감이 그녀를 괴롭혔고 둘째 아들이 두살이 되던 해에 하혈로 석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고난을 당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재생 불능성 악성빈혈로 인해 고통받게 되었다. 죽음의 문제를 절박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인 입지조건 아래 그녀는 결국 성경을 보게 되었다.
이후에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구세주로 영접하게 된다. 이후에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회개의 역사를 통해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고 병도 말끔히 낫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남편은 물론이고 친정 식구까지 다 복음화되었다. 성경말씀의 위력이 어떠한지 우리는 그녀의 신앙고백을 통해 실감하게 된다. 과연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칼보다도 더 예리하다.
불행한 가정주부에 불과했던 그녀는 고난을 통해 성경말씀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난치병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대학교수로, 전도사로 헌신하는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정 연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 그녀의 삶을 한마디로 불나방의 삶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 그녀의 삶은 거룩한 사람의 삶으로 바뀌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는 삶의 결과는 이처럼 황홀하다.
그녀는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다. 남편과의 결혼은 불행한 삶의 전주곡이 되었고 급기야는 이혼하기에 이른다. 이어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간통 피의자로 수사를 받게 되었다. 그 아내의 고발로 그 남편은 간첩의 누명까지 쓰고 구속되었고 그녀는 어렵게 풀려 난다. 매스컴에까지 그 수치를 드러내게 되었다. 절망의 수렁에서 그녀는 결국 하나님을 부르고 말았다. 예전에 동창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을 외면한 이후 이제 극심한 고통 속에서 통곡으로 부르짖으며 매달린 것이다.
드디어 그녀는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주님의 용서와 구원받는 기적을 체험한다.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는 만남을 경험한 뒤에, 그녀는 신앙생활을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십이지장과 췌장이 파열되었고 대문 니가 2밀리 가량 흘러 내려진 채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이빨이 뿌리까지 흔들리니 빼야만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기도원에 가게 된다. 거기서 참다운 통회의 역사가 일어났고, 기도 후 앞니가 가지런히 올라붙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후에 그녀의 삶은 주님을 소망하는 천국신앙으로 변화되었다.

 

 

 

                               2. 전문인들의 고백

 

 

김 인수
고려대 경영학 교수이자 기독교윤리 실천운동본부 실행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인수씨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어린 시절에 두번 빠진 것이 마음에 걸려 교회출석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교회의 부조리와 교인들의 위선에 거부감을 가지면서 고학시절 잠시 교회에 다니던 것을 또 접게 된다. 그러나 영어공부를 하려고 들어간 곳은 성경공부를 하는 죠이 선교회였다. 이 선교회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신앙은 말씀중심의 신앙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는 성경을 보게 되었고 처음에는 윤리 도덕적 가르침에 마음이 끌려 그런 구절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기 시작한 신약 성경 전체를 8일만에 읽어내기도 했다고 한다. 성경읽기가 거듭되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났듯이 자신에게도 나타나 보여달라고 기도했으나 그런 기적은 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로마서를 읽다가 죄인임을 통감하고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 다음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길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차별 없는 길을 주시는 비밀한 경륜을 깨닫기에 이른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라는 말씀과 그 외의 말씀들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된다.
그 이후 극동방송에 입사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행정의 은사를 받은 것을 십분 발휘하게 되었다. 이후 국제대학 경영학과의 야간에서 공부하다가 이후에 아내와 함께 유학을 가게 되었다. 동료 대학원생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게 되었고 그 아이들 중 5명이 목사가 되는 선한 열매를 맺기도 한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수학한 뒤 간호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아내와 함께 귀국 후 자신이 공부했던 경영학의 조직행동론과 아내의 전공분야를 살려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기에 이른다. 지금도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주의 일과 사회적인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박 성수

이랜드 그룹의 사장이며 동시에 사랑의 교회 집사로 봉사하고 있는 박성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빼먹기 일쑤였다. 대학시절에 친구를 따라 간 교회는 진보적인 교회이어서 사회참여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는 교회였고 그 곳에서 좋은 코이노니아를 형성한다. 이후 대학생선교회에서 나온 책자 “성령충만의 비결을 아십니까?”를 통해 도전을 받고 죄를 회개하고 성령충만하고 목적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대학졸업 후 5년 동안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에 걸려 병상생활을 시작 한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고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시작한다. 5년 동안 병상에서 보았던 많은 책들은 그의 삶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업체가 법인화를 한지 6년만에 동종업계에서 1위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불법적인 상거래를 하지 않고 주일성수를 하고 있는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야망을 가지고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남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의 신앙고백을 통해서도 감정이나 체험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라 의지적, 실천적 신앙이 얼마나 실제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 승훈

경북대 사범대 물리학교수도 재직중인 양승훈씨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는 다녔으나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선배의 기분 나쁜 조언을 계기로 자취방에서 무릎을 꿇고 소위 영접기도를 하기에 이른다.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는 선배의 도전적인 질문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정직하게 사는 것을 체화시키고 또한 기독교대학설립의 꿈을 안고 카이스트에서 뜻있는 형제들을 중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들은 기독교대학 출판사를 만들고 기독교 소책자들을 간행하게 된다. 기독교 대학의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교회 내에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일으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공저로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등을 출간하고 “기독교 세계관 이해와 적용” 등 많은 저작활동을 통해 과학과 기독교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윤 주홍

“봉천동 슈바이쩌”라고 불리우는 윤주홍씨는 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째 되던 때 친구의 “좋은 데 가자”라는 매력적인 권유에 따라 교회에 간다. 그 해 겨울에 자신의 죄와 심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확실하여지고 외로움도 없어졌으며 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여졌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후에 서울신대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기숙사 편입을 위해 신체검사를 받은 후 결핵이라는 병명 진단과 함께 신학에의 뜻은 좌절 되었다. 그는 의대진학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귀하신 주님의 섭리라고 아름답고 눈물겹게 고백하고 있다.

 

 

이영덕

국무총리를 지내고 명지대학교 명예총장 및 한국정신문화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영덕씨는 모태신앙으로 북한에서 사선을 뚫고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후에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죽을뻔했으나 기도로 살아나는 체험을 한 산 신앙인이다. 남북 대표단으로 활약하였으며 서울대 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아주 기이한 고백을 하고 있다. “저는 40년간 교육에 종사하여 왔습니다. 세속적인 교육으로는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눈여겨본 결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죄인임을 인식하고 회개하고 말씀에 붙잡힌 바 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날 걸리지 않고 한번에 돌연히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 근모

과기처 장관을 두번 역임한 바 있는 정 근모씨는 과학신동이라는 화려한 타이틀로 서울대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으나 아들의 만성신장염을 통해 불신자에서 기독인으로 돌아서게 된다. 아들의 신장이 견딜 수 있는 기간은 5년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을 전해 듣는다. 아들은 이후에도 두번의 자살기도를 하는 등 그에게 큰 고통이자 운명적인 아픔을 준다.
그는 부인과 함게 기도원을 찿게 되었으며 하나님 앞에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쏟게 된다. 아들을 위해 십자가룰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확인 후 그는 또 은혜를 받게 된다. 이후에 그는 심한 위경련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혼수상태에서 어렴풋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고 이후 그의 신앙은 깊어져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믿게 되었다. 아들의 뇌출혈 사건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기도로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그리고 아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놀라웁게 변화되었다고 그는 술회하고 있다.

 

 

 

                           3. 목사님들의 고백

 

이 동원

부친은 사업의 실패 후 행방불명되고 장남이었던 그는 동생 여섯과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정신적인 가장이 된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과 불교사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에 대한 패배감까지 겹쳐 지칠대로 지친 채 진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스월드 스미스 목사가 쓴 소책자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나라”에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죽은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는 예수만이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움직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 한권의 소책자 “율법이냐 은혜냐”를 통해 그는 복음의 진리의 차별성에 눈뜨게 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그는 영접 후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 “의심의 안개는 없어지고 죄책의 무거운 짐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YFC에서 십대의 복음화를 위해 젊음을 투신한다. 그는 이후에 신학을 하게 되었고 미국 유학중에 접하게 된 가정생활 세미나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고 이후에 “새생활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가정사역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후에 그의 가족들은 모두 복음화되었고 동생중에 둘도 목사가 되었다. 이민목회를 하다가 다시 1993년 공동목회 공동선교라는 비전을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된 뒤 지구촌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이 재환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수돗가에서 “너는 내 종이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는 신학교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 운명을 피해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군목님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상기시켰다. 그는 애써 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원인모를 질병으로 3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고 몸무게는 38Kg로 줄었다. 그는 끝까지 기도를 하지 않고 버티었으나 끝내 대성통곡을 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그 병은 만성췌장염이라는 싱거운 병으로 판명났다. 어머니의 서원기도에 힘입어 선교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결국 그는 아무도 가지 않는 아프리카 감비아의 선교사로 주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 한번 선택하신 주님은 끝까지 우리를 놓치지 않으신다.

 

 

이 태웅

아버지의 중풍으로 6.25때 피난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이 태웅씨. 그는 삶이 주는 압박감으로 고3 때 심한 두통을 앓기도 하며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한 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죠이 선교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3개월 동안 다녔으나 마음에 여러 가지 번민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구원초청 설교를 하는 목사님의 설교 끝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말씀의 권고에 따라 다음과 같이 영접기도를 한다. “저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위해 예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모든 형벌을 받으신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제 이것을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오셔서 주인과 구세주가 되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난 뒤 대인공포증과 소심함이 사라지게 되었고 주 앞으로부터 이른 유쾌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후에 그는 죄를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습성으로 인해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나 곧 말씀공부와 함께 영적으로 튼튼하게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 후로 목사가 되었고 한국 해외선교회에서 선교사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세계각처에 파송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영접기도의 결과가 이처럼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감하게 된다.

 

 

홍 성철

군대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총애를 받으며 성경과 찬송을 선물로 받는다.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그 친구의 삶은 깊게 홍성철씨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큰 마음을 갖고 교회에 가게 된 그는 그 날의 헌금설교에 대해 크게 실망한다. 과도한 운동과 술, 유교, 불교를 맴돌면서 20대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영어회화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영문학도였고 자연스레 죠이클럽에 들어가게 되었다.
순전히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들어갔지만 그 곳에서 수양회 참석을 계기로 한 전도자의 전도에 강하게 인도되어 난생 처음 이렇게 기도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나에게 그 존재를 보여 주십시요. 그러면 나도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십시요.” 그러자 그는 자신의 죄가 떠올랐다. 그가 죄를 인정하는 순간은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순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해방과 자유의 기쁨이 충만하여 모든 산과 나무들도 자신이 하늘 나라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하여 주는 것 같았다며 구원의 기쁨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분을 대학 4년이 되어서야 만난 것에 대해 억울해 하던 중 그는 마침내 전도자로 변신하게 된다. 이후 그는 태국의 선교사로 다녀온 뒤 국내에서 제자훈련과 목회와 출판전도를 쉬임 없이 해오고 있다.

 

 

홍 순영

어린 시절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그는 가난하여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후 야간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로 군인목회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군선교 24년만에 제24대 육군군종감으로 취임하게 되어 군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특히 계롱대교회 설립 이야기라든지, 새벽기도를 통해 승리한 이야기라든지, 결국에는 외지 출타시 즐기던 음란성 비디오 보기를 끊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신앙인의 승리하는 삶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4. 외국인들의 고백.

 

 

로버트 콜만

그리스도를 높이는 아름다운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아버지의 고된 훈련을 통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체화시키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대학생활에서도 여전히 성경을 보고 자기 전에는 늘 기도를 하고 잤지만 종교적 행위에 그쳤을 뿐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교제의 기쁨은 누리지 못했었노라고 고백한다. 이후 그는 부흥회를 위하여 설교준비를 하면서 무디와 그외 다른 지도자들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삶에 무언가 결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휼륭한 설교 이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복음의 진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자신의 독선적인 방법을 버리고 “나는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저가 능히 지키실 줄 아나이다”라는 말씀이 영혼 깊숙히 부딪혀 옴을 느꼈다. 이것이 그의 생애에 있어 진정한 회심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 이후 그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으며 로잔위원회의 창립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주님의 전도계획” 외에 21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이 책은 8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라일 도싯

휘튼대학의 전임교수이며 “국제아동을 위한 그리스도”라는 선교단체를 창설하여 지도하고 있는 라일 도싯의 삶을 보자. 밤을 지새며 술을 마시는 생활, 결혼의 실패를 향한 내리막길 ,대학 교수직의 상실 등은 그를 죽음을 향하는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외관상 교회의 일원이었고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장년 주일학교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안고 있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그는 알콜중독자였으나 진정으로 술을 끊기 원하였다. 그는 행위를 통해서라도 술에서 구원받기 위해 십일조, 헌금, 출석을 시도했고 그것으로 되지 않자 건강클럽, 견신론, 점성술까지 시도했었다. 마침내 그는 차 안에서 소리쳤다. “당신이 존재하신다면 당신이 거기에 계신다면, 와서 저를 도와주소서.” 그러자 그에게 정말 놀라운 평화가 임했고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그가 살아계심을, 그가 자신을 돌보고 계심을, 예수께서 언제나 그를 사랑하셨으며 늘 찾고 계셨음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술을 끊었으며 그리스도를 더욱 더 알기 위해 좀더 훈련된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성경공부 소그룹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매일 아침 기도를 드렸다. 현재 그는 복음을 전하며 또한 치유하고 양육하도록 부름받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고 있다. 라일 도싯의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을 통감하게 된다. 비록 감정적인 체험을 동반하지 않는다 해도 지성적으로, 의지적으로 영접하는 행위는 신앙에 있어 필수적이다.

 

 

우본완 메쥬돈

불교철학을 기르쳤던 우완본씨는 불교국가인 태국인이다. 그녀는 “하나님은 없다”라는 책을 쓴 골수 불교신자였다. 그러던 중 그는 결혼할 사람과 약속을 맺은 뒤 도미하여 캘리포니아와 뉴질랜드 웰링톤에서 수학하기에 이른다. 거기서 홍성철 목사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오히려 홍성철 목사님을 불교도로 회심시킬 계획을 가졌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홍성철 목사님의 재간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불교경전을 전했고 홍성철 목사님은 성경을 전하였다. 그녀는 홍 목사님의 전도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태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 인사차 들른 교회에서 설교후 홍성철 목사는 그의 간증을 했고 회중을 향해 그녀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기도하는 시간에 잤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홍성철 목사님의 소개로 전크 목사와 상담하도록 배려되었는데 여러 가지 그녀의 갈등을 다 들어준 전크 목사의 짦은 한마디에 그녀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전크 목사의 말을 이러했다. “부처는 휼륭한 사람이고 불교는 좋은 종교 중에 하나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예요.”
그날 밤 방으로 돌아와 그녀는 예수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자신 앞에 빛을 보았고 그날 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분을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이후에 약혼자도 그녀를 통해 주님을 영접했으며 그녀는 어머니, 교수, 목회자, 저술가, 상담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큰 일군으로 쓰임받고 있다.

 

 

루이스 팔라우
복음전도자 루이스 팔라우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기도를 먹고 성장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궁극적인 실제가 되었다. 결국 그는 천국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천국에 관해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 수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거듭남에 대해 상담자와 상담을 거친 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고백했다. 상담자의 권면에 따라 영접기도와 결신의 열매를 맺기에 이른다. 그때 그의 나이는 12세였다. 그 이후 그는 영적으로 식어지기도 했지만 25살되던 해에 카니발 축제기간에 카니발을 뒤로 하고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헌신했다.

 

 

스탠리 탬

플라스틱회사와 미국제련 및 정련회사의 설립자이자 회장이며 템코산업의 이사장인 스탠리 탬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교회를 다녔다. 그는 롱 부인의 복음전도를 통해 죄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는 교회의 구원초청에 응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것이다.
그 후 20살이 되던 해에 사업에 뛰어 들었고 다섯 번의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업을 이어가면서 하나님을 상관 경영주로 모셔 들였다. 그는 사업의 51%를 주님께 드렸다. 그는 “내게 구하라, 열방을 기업으로 주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서약을 맺었다 한다. 사업가이지만 매년 전세계에서 100여회의 말씀증거 사역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 회사의 모든 이윤은 십자군 전도대의 후원에 쓰여지고 있다. 그는 매년 85개의 교회개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사업의 이윤을 복음사업에 재투자하고 있다.

 

 

                                            (한세대 신대원 강의요약에서 스크랩)


 

  많은분들이 쉽지않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며 동행한 사실은 경이롭습니다

  때로 쉽지않은 상황에 계신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시길 ....

 

주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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