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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정의는 이성의 힘만으론 불가능”

영국신사77 2007. 4. 2. 15:17
               “집단의 정의는 이성의 힘만으론 불가능”
현대신학 ‘3인방’ 중 하나인 니버
집단이기 제어할 정치력 강조
유학시절 ‘역동적 사회윤리’ 매료
“강원룡 목사는 한국의 니버”
한겨레 한승동 기자
»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책·인터뷰 /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쓴 고범서 교수
 
 

“클린턴 대통령이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에게 <도덕적 인간과 비도적적 사회>라는 책을 읽어봤느냐며,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클린턴 그 사람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원래 칸트의 (개인)윤리학을 전공했으나 미국 유니언신학대와 컬럼비아대 대학원 협동과정, 밴더빌트대 등에서 약 7년간 유학할 때 라인홀트 니버(1892~1971)의 사회윤리를 파고 든 고범서(81) 교수가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대화문화아카데미)을 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몇년간의 작업 끝에 내놓은 이 책은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카를 바르트, 폴 틸리히와 함께 ‘20세기 개신교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세명의 신학자’의 한 사람이요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개신교 신학자라는 니버. 책은 니버의 생애를 개관하면서 생애 각 시기 및 단계와 관련지어 그의 저서 18권을 요약 소개하고 필요한 해설을 붙였다. “니버를 제대로 알려면 단편이 아닌 그의 저작 전부를 읽어봐야 한다”는 소신을 관철한 니버 사상의 집약본, ‘니버의 모든것’이다.

“개인들 사이에서 정의로운 관계를 순수하게 도덕적, 합리적 설득과 조정을 통해 수립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집단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1970년대 후반 유신독재시절 이 땅에서도 많이 읽힌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가 던진 메시지는 선명하고 과격하기까지 했다. 니버는 집단간의 정의로운 관계의 수립은 윤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개인들 사이에선 도덕적 설득과 조정을 통해 서로 양보하고 일정한 합의에 이를 수 있지만 그런 개인들이 다수 포진한 집단과 집단 사이에선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 책 제목이 그것을 압축하고 있다.

 

 

 

 

 

 

 

 

 

“비범하게 뛰어난” 저서라는 평을 받은 이 책이 미국사회를 열광과 논란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니버는 사회정의 실현과 집단간의 정의로운 관계 수립은 ‘이성’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며 집단이기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선 ‘폭력’을 수용하고 ‘혁명’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선의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건 전통신학이 선호하는 ‘윤리적 방법’이 아니라 ‘정치적 방법’이다. “이 ‘정치적 방법’이 사회윤리학의 방법론 모색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중요성을 한국은 물론 미국조차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 교수는 탄식했다.

그가 니버를 처음 접한 건 1947~8년 대학 초년생 시절 강원룡 목사 덕이었다. 당시 강 목사는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1945) 일본어판을 갖고 있었고 미 문화원에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 등 니버의 주저들을 빌렸다. “강 목사는 대한민국의 니버였다”며 지난해 8월 타계한 “50년 지기”를 떠올리던 그는 잠시 목이 메었다. 강 목사는 2000년에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은퇴하면서 20여년간 이사로 일한 고 교수에게 이사장직을 맡겼다.

숭전대 총장 재직 말년에 과로 때문인지 뇌일혈로 쓰러졌다. 거의 회복됐는데 다리 한쪽이 여전히 온전하지 못하다. 20여년간 재직한 한림대에서 지난 학기까지 강의를 했지만 80을 넘기고부터 기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와 어투는 명석하며 안색도 좋다.

 

주요산업의 사회화를 주장할 정도로, 니버는 사회주의자였다. 포드와 싸웠고 일생을 자본주의와 싸웠다. 하지만 현실공산주의 유토피아 사상은 거부했다. 날카롭고 명민했던 그는 신학자라기보다는 사회윤리학자로 자처했다. 하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진보적이었으되 생활은 검소하고 금욕주의적이었다.” 목사로서도 성공한 니버는 삼위일체 등 의인화된 신관을 인간 자신의 투사로 파악했으며 예수의 부활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상징적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본 회퍼도 그랬다. “하지만 니버는 인간의 이성만으론 너무나도 복잡한 인간삶이나 역사를 이해할 수 없고 결과가 예정돼 있지 않는 드라마 같은 것이라고 봤다. 그건 신학이지만 참으로 역동적이며 신나는 사상이었다.” 니버는 인간의 모든 도덕적 성취도 아가페엔 미치지 못하지만 그 근사치에 근접(수렴)할 순 있다고 봤다. “그게 중요하다.” “우주가 신이라면 인간들은 그 세포”라며 니버의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고 교수의 또 하나의 소망은 니버에 이어 “틸리히 책도 쓰고 싶다”는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고범서 박사 "지도자가 오만하면 그 권력은 망한다"
[세계초대석]'니버의 사상' 펴낸 기독교윤리학자 고범서 박사
사회정의는 권력 뒷받침돼야… 교류보다 군사력 균형이 중요"

 

 ◇기독교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를 연구한 고범서 박사는 “민주주의 메커니즘은 어느 한 쪽의 승리가 아니라 권력의 균형과 견제”라고 일갈한다. 허정호 기자

  “니버는 오만이나 자만이 큰 죄라고 경계했습니다. 권력을 쥔 지도자가 오만하면 그 권력은 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종교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니버의 중요한 윤리개념입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창가에 봄 기운이 완연하다. 원로 기독교윤리학자 고범서(81·전 숭실대 총장) 박사의 얼굴에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아 있다. 그는 최근 944쪽의 두툼한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대화문화아카데미)을 출간했다.

기자가 찾은 21일, 고 박사는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닌 존재이니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거나 오만하지 말라는 것이 니버 윤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신학 명문 유니온신학교에서 32년 동안 강단에 섰던 기독교윤리학의 거두 니버(1892∼1971)는 카를 바르트, 폴 틸리히(이상 독일)와 함께 20세기 위대한 신학자로 꼽힌다. 니버가 특별한 것은 바르트나 틸리히처럼 신학에 교리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그만의 독특한 영·미식 ‘기독교 실용주의’를 전개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은 이상에 불과하므로, 이것을 현실사회와 접목해 상대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주창했다. 결국 니버에게 중요한 것은 이상과 현실이 서로 역동적 관계로 발전해 근사치에 다가가는 ‘근사적 해결’이다.

종교는 ‘절대’와 ‘초월’을 강조하다 현실 도피에 빠질 수 있으나, 니버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정의를 외쳤다.

그 정의는 말이나 이성의 힘만으로는 실현되지 않으며, 권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독과점의 폐해를 안기는 A항공사에 대해 말로만 “하지 말라”고 하면 시정이 안 된다. B항공사를 세워 경쟁을 붙여야 가격과 서비스 면에서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버가 말하는 권력이란 독점이나 부패 없이 서로 분산·견제되고 균형을 갖춘 힘을 의미한다.

“니버의 이론을 빌린다면, 남북 문제도 퍼주기나 교류협력보다 군사력의 균형을 이루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래야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월등하면 지금까지의 교류협력은 하루아침에 무시될 수 있지요. 다만 군사력 경쟁은 군축회담을 통해 억제할 수 있습니다.”

고 박사는 1946년 서울대에 입학한 뒤 미국문화원에서 처음 니버의 책을 접했다. 이어 50년대 초 고 강원룡 목사가 구해준 니버의 일본어 번역본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을 읽고 새로운 연구열로 심장이 맥동했다.

고 박사는 41세 때인 67년 미국에 건너가 니버가 봉직했던 유니온신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 석사과정을 이수했으나 니버가 퇴임(1961)한 뒤여서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고 박사는 이후 밴더빌트대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73년 귀국해서는 숭실대 총장과 한림대 대학원장, 한림과학원 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니버를 강의했다.

고 박사의 노작은 니버의 생애를 근간으로 니버가 27년 처음 펴낸 ‘문명은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에서 65년 마지막으로 출간한 ‘인간의 본성과 그의 공동체들’까지 18권의 저서를 간추린 일종의 평전이다. 니버 연구에 꾸준히 매진한 고 박사는 이번 출간으로 학자로서 걸어온 길에 한 획을 그은 셈이다. 그런데, 고 박사에게 니버는 왜 그리 중요했을까.

진보적 인물로 알려진 니버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사회주의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니버를 모르는 사람은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하고 오해도 하지만, 그는 막상 마르크시즘은 단호히 배척했다. 니버의 눈에는 공산독재를 해야 유토피아가 온다고 봉기한 프롤레타리아도 독선이요, 죄인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원적으로 보면 그리스어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이니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헛짚은 것이다. 니버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민주주의 신봉자’가 된다.

“니버는 민주주의 역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그의 한마디는 미국 대통령의 당락을 좌우했고, 정책을 움직였습니다.”

린든 존슨(민주)과 배리 골드워터(공화)가 나선 1964년 대통령 선거. 당시 골드워터는 보수라 싫고, 존슨은 속물이어서 싫다는 냉소주의가 팽배했다. 그때 니버가 유명한 말을 내놓았다. “나도 골드워터가 싫고, 존슨도 싫다. 그러나 존슨을 지지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존슨이 조금 덜 나쁘기 때문이다.” ‘덜한 악(lesser evil)’ 추구라는 니버 특유의 실용주의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니버는 케네디 대통령에게도 많은 조언을 했다. 아시아 정치에 대한 언급도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독재를 해도, 공산주의만 하지 않으면 간섭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 나중에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고 박사는 “이것만 보아도 니버는 뛰어난 정치·현실 감각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했다. 미국의 한 유력 신문이 칼럼에서 “미국 대학생이라면 가장 먼저 니버를 읽으라”고 공공연히 조언할 정도다.

왜 니버가 고 박사 자신에게, 또 오늘의 한국 사회에 중요한지에 대한 우회적 설명은 자연스럽게 노무현 정부의 ‘인기’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평가의 기조는 예상대로 쓴소리였다.

“지금 정부가 분배를 강조하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 근대국가의 발전과정을 보면 국가질서와 사회정의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면 다음으로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틀렸습니다. 성장은 등한시한 채 분배만을 강조한 나머지 크게 실패해 경제 문제를 야기한 것입니다. 집값도 경제를 죽이고 잡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 박사는 “현 정부가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자만심과 교만심에 빠져 자기만 옳다며,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아 사회변화라는 새로운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니버식’으로 일갈했다. 민주주의란 흑백논리와 양자택일로 어느 한쪽이 이겨서는 안 되는 것이며, ‘즉각적 해결’보다는 ‘잠정적 해결’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노학자다운 훈계도 이어졌다.

그나저나, 집필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팔순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고 박사는 또 다른 저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4년 집필계획까지 세웠다. 이유는 제자들의 권유. 아마도 제자들은 고 박사가 석학의 힘으로 한국 사회의 윤리적 기틀을 바로잡아주길 원하는 모양이다. 그가 권유에 못 이겨 쓰려는 주제는 ‘서양윤리사상사’다.

고 박사는 “체력이 좀 약해졌다”고 말했지만, 과거를 기억해 내는 힘은 놀라웠다. 체력도 사실 문제없다. 요즘 힘에 부친 감이 없지 않아 매일 1시간 즐기던 산책 시간을 30분으로 줄이긴 했으나 건강관리는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단편적으로만 전해지던 기독교윤리학자 니버를, 국내 처음으로 전체적으로 형상화한 고 박사는 새 책 집필도 자신하는 눈치였다.

“(견제와 균형이 수반된) 권력에 의한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니버의 사고는 미래사회에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현실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천재 신학자 니버의 사상은 기독교는 물론, 민주주의와 이 세계를 건강하게 떠받쳐 줄 것입니다.”

제법 긴 인터뷰를 마치면서, 니버의 메시지를 간추려달라고 부탁했더니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고 박사가 또박또박 정리해 준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니버의 메시지인 동시에 고 박사 자신의 메시지인 게 아닐까.

정성수 종교전문 기자

hul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