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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박사 신사참배 반대와 평양장로회신학교 자진폐교

영국신사77 2007. 4. 1. 22:32

 

     박형룡박사 신사참배 반대와 평양장로회신학교 자진폐교

 
 
출처 블로그 > 쉴만한물가
원본 http://blog.naver.com/mokpojsk/130003823814
 
 
                                   박형룡박사 신사참배 반대
                         보수신앙 고수위해 자진폐교 결정

 

 

  박형룡박사가 서울 남산장로신학교의 학장 재직시에, 칼바르트(1886-1968)다음으로 그 당시에 신정통주의 신학자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던 독일 신학자 에밀 부룬너의 특강요구를 거절한 사건은 물론, 일제시대에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이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지적을 받을 수 있겠으나, 한국교회안에서 김재준교수가 주동자 되어서 추진해온 바 신정통주의 신학의 정착에 대한 박형룡박사의 또 하나의 상징적인 “거부권행사”라는 의미로 볼 때에, 1935년에 있었던 박형룡박사의 신정통주의자 김재준교수의 신학자는 논문기고 금지조치의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고로, 아니 그 보다도 「신학지남 사건」의 “복사판” 또는 “재발생”과도 같았다고 볼 수 있는 고로, 1930년대에 발생한 「신학지남 사건」과 동시대적으로 내가 이 글에서 취급하고 서술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이해하여 주시기를 앙망하는 바이다.
 
  이 1935년에 있었던 「신학지남 사건」외에도 한국의 보수신학이 일본제국주의의 총칼앞에서 죽지않았으며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만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30년대 후반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식민정책의 하수인이었던 조선 총독부가, 한국기독교에 대하여 일본의 천조대신을 모신 조선신사에 참배할 것을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 당시 한국의 보수신학의 선봉자요 대변인과도 같았던 박형룡 박사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하나님의 제일 계명을 제일 소중히 여기는 “제 일계명 제일주의”에 입각하여,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행위를 결사반대 했으며, 평양장로회신학교와 특히 미션스쿨이었던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 숭의여중의 폐교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널리 공포한 사건을, 우리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줄 안다.
 
  특히 평양장로회신학교의 교수회가 1938년 봄 열렸을 때에 ,박형룡교수는 교수회석상에서 “신사참배를 하려거든 학교의 문을 열어 놓으시오 그러나 신사참배를 않하려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일장연설을 함으로서, “아직도 좀 두고 보자”고 하던 라부열 평신학장을 설득하여, 평양장로회 신학교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리게 하였고, 평양시내에 존재하던 세 미션스쿨(숭실전문, 숭실중, 숭의여중)도 연쇄적으로 폐교하는 사태를 초래케 했던 것이다. 나는 선친 박형룡박사가 살아 계셨을 때, 이 사건과 관련하여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참으로 마음에 미안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지. 마치 내가 평신과 숭전·숭중·숭의여중을 모두 문을 닫도록 한 총책임자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야! 관련된 이 모든 교의 교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하여 정말 얼굴을 쳐들 수가 없었어!”
 
  그러나 박형룡박사가 1938년에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 조선 총독부에 대항하여 평양장로회 신학교의 문을 닫을 것을 제안한 것은, 첫째로 한국의 보수신학의 요람이었던 평양 장로회 신학교가 계속 개교하다가는, 혹시라도 교직원 중에서 그리고 특히 학생들 중에서 강요에 못이겨 신사참배하는 일이 속출함으로서, 「보수신학」의 명예와 영광을 훼손할까 염려했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황국신민의 신사참배”라고 하는 “국민의례”를 가장한 우상숭배와 비진리를 수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존재를 희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올바른 믿음의 모습을 평양장로회신학교가, 조선교회와 조신민족전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박형룡박사는 폐교하는 학교들의 교직원들과 가족들이 직장을 잃고 유리방황할 것을 생각할 때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으나, 「보수신학」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비통한 눈물을 흘리면서 ‘자진폐교’라고 ‘그 당시에 매우 인기 없었던 제안’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평양장로회신학교와 평양의 세 미션스쿨을 ‘자진폐교’로 이끌어 갔다고 볼 수 있는 선친 박형룡 박사가, 자신은 어찌하여 일제 말기의 조선 땅에 남아서 주기철목사와 같이 신사참배행위를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거부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이 지면을 빌려서 정중히 대답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이와 같은 질문을 내가 박형룡 박사의 장남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직접·간접적으로 빈번하게 받게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 기독교 연합신문의 지상에 연재되고 있는 나의 이 논문의 진술과정에서, 나는 이미 선친과 주기철목사 사이에 존재하였던 ‘신앙동지적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 문제에 대하여 일차적인 답변을 내놓은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박형룡박사가 대변하던 한국의 보수신학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가운데, 왜 박형룡박사가 신사참배를 극력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땅에 남아서 순교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을 더욱 깊이 있게 고찰하고 답변을 하고자 한다.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지은이 : 박용규
  판 형 : 신국판(양장)
  면 수 : 548page
  발행일자 : 1996-03-30
  ISBN : 89-8169-124-X 93230
  코드번호 : ZCA01
  책낸곳 : 총신대학교출판부
분 류 : 신앙서적 > 신앙일반 >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미 리 보 기

일찍이 프린스톤 유학시절, 보수주의 거장 메이첸 박사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르쳐 본 동양 학생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학생"이라고 평가받았던 박형룡 박사는 한국 교회를 말씀 위에 바로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시대의 스승이었다.
마포삼열, 곽안련, 이눌서, 구례인을 비롯 구학파 전통에서 선 선교사들과 그들에 의해 설립된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정통보수신학을 그대로 한국 교회에 계승해 주었다는 점에서 구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보수주의 거장 메이첸 박사 밑에서 직접 신학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도전 앞에서 당당히 한국 교회의 보수주의를 지켜주었다는 점에서, 거의 50년 동안 초지일관 신학교육에만 헌신해 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 신학자로는 처음으로 방대한 조직신학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박형룡 박사는 한국 교회가 낳은 위대한 신학자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

저 자 소 개

성균관 대학교 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Western Evangelical Seminary(M.A.)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Th.M., Ph.D)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주임교수

목 차 보 기

제1부 죽산 박형룡, 그의 신학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
성경의 영감
성경의 무오

제2부 박형룡 박사의 생애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신학
총신과 박형룡
성자다운 학자 박형룡
신학과 삶이 일치하신 분
탁월한 개혁주의 신학자
나의 신학, 신앙, 인격의 모델
박형룡 박사님의 교훈과 그 저작 전집을 생각하며
대나무를 좋아하셨던 박형룡 박사님
참 스승이요, 큰 스승

제3부 박형룡 박사의 사상
박형룡 신학
박형룡 목사와 그의 설교
박형룡의 성경해석
박형룡 박사와 근본주의

제4부 조직신학자가 본 박형룡 신학
박형룡 신학의 원리
박형룡의 조직신학
박형룡 박사의 내세론 연구

제5부 총신 박에서 본 박형룡
박형룔 박사의 한국 보수신학사적 의의
박형룡의 신학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박형룡의 위치

책 소 개

박형룡을 떠나 한국 교회 신학사를 논할 수 없다. 그의 신학은 미국 프린스톤 신학의 전통을 이은 개혁주의 정통신학이다. 그는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한국 장로교회에 신학적 기초를 놓은 개척 신학자요, 선교사들이 소속한 미국 장로교회가 점차 신학적으로 변질되어 처음의 정통주의 노선에서 좌경 이탈되려 할 때 정통 신학을 보수하는 데 여생을 바친 보수신학자다. 그의 보수 신학적 노력은 '변증학'을 비롯하여 '현대신학 비평'서로 결실하였고, 말년에는 복음주의 내의 혼선을 막기 위하여 '신복음주의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신앙과 인격을 살찌웁니다..[라이프북/생명의말씀사]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박용규 저 | 총신대학부설기독교교육연구소 | 1996년 03월 30일 ... 회의 신학적 전통 성경의 영감 성경의 무오 제2부 박형룡 박사의 생애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신학 총신과 박형룡 성자다운 학자 박형룡 신학과 삶 ...\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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