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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영국신사77 2007. 4. 1. 09:31

 

 

                조직신학자 박형룡 박사의 신학과 사상
 
                                                                                                hisnations (2003-05-26)

  박형룡 신학은 구 프린스톤 신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신학은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 한 민족의 교육과 개화에 힘썼던 평양 숭실 전문학교에서 시작되었고,
무엇보다, 그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은 그가 신학사, 신학석사를 마친 1923년-1926년
사이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구체적으로 비롯되었다.
박형룡 박사가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유학한 1923년은 미합중국장로회가 소위 근
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 휘말렸던 시기였으며, 구 프린스톤 신학전통의 마지막
주자인 메이첸 박사가 <헬라어 첫걸음>(1921),<바울종교의 기원>(1921)에 이어 <
기독교와 자유주의>(1923)를 출간하고 당시 자유주의 또는 근대주의와의 논쟁에서
보수 연합세력의 지도자로 부상한 해이기도 하다.

미 합중국 장로교회 안에서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이 격돌하던 바로 이 시기
에 박형룡 박사는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사와 신학석사를 마쳤다. 후에 그가 한
국에 돌아와서 평양신학교에서 교수하는 동안 그의 제자 박윤선을 프린스턴 신학교
에 추천하지 아니하고, 당시 프린스톤 신학교의 신학적 좌경화를 지적하고 메이첸
박사를 중심으로 새로 출발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도록 권한 것은 박형룡 박
사의 신학과 사상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조직신학자로서 박형룡 받사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흔히 그의 글의 인용으로 출
발한다. 그의 면모는 1977년에 발간된 <박형룡박사 저작전집>에 가장 잘 담겨있다.
전체 20권으로 되어 있으며, 이중 제1권부터 제7권까지가 교의신학 7권에 해당한다.
그의 <교의신학> 7권은 그의 창작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그는 일찍이 루
이스 벌콥의 조직신학(1941년판)을 번역하여 신학교의 교재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그의 <교의신학> 7권은 벌콥의 <조직신학>에 전적으로 의존한 번역 또는 번안으
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벌콥의 <조직신학>과 박형룡 박사의 <
교의신학>을 외형적으로 비교만 해 보아도 잘못된 편견임이 금방 드러난다.

박형룡 박사의 <교의신학>은 세계 교회에 "한국신학"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위대
한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의 저작전집 제7권에 해당하는 <교의신학 내세론
>은 그 명칭에서부터 서구의 타신학자들의 것과는 구별된다. 벌콥의 <조직신학>에
서는 종말론이라 이름한데 비해, 박형룡박사는 이를 <내세론>이라고 명명했고, 하
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이미와 아직"(already but not yet)의 구속적 관점
에 비추어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의 교의 신학 내세론을 전체적으로 시종일관 역
사적 천년기전설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시대론적 천년기전 재림론을 배
격하고 나머지 견해를 개혁주의 교회가 모두 수용할 수 있음을 밝히고, 특히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신학적 전통은 "역사적 천년기전 재림론"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내세론>은 역사적 개혁주의, 정통 칼빈주의의 틀 안에서
매우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박형룡 박사의 신학은 구 프린스턴 신학으로 대표되는 영미 계통의 장로교 신학
과 화란 계통의 개혁신학의 조화를 일구어낸 신학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교의신학은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을 기초로 하고 다른 권위자들로부터 자
료를 수집하여 종합함으로써 되어진 저술이다. 그의 교의 신학은 기초적으로 바빙
크-벌콥 게통을 따르고 있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수학한 프린스턴 신학교의
충실한 계승자들, 특히 찰스 핫지, A.A.핫지,워필드,메이첸 등의 교수들의 글에서도
널리 인용하고 있다. 그가 이미 영미 계통의 신학뿐만 아니라, 이에 화란계통의 신
학을 접목함으로써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 칼빈주의, 청교도적 장로교주의 신학 전
통을 한국교회에 정착시킨 점에 있어서,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신학적 업적은 바르게
평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는 일평생 한국교회와 총신을 위해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 칼빈주의, 청교도적
장로교주의 신학적 전통을 한국 교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혼신을 노력을 다 하였다.

박형룡 박사가 남긴 신학적 업적에 대한 바른 이해와 평가는 총신의 과거,현재,미
래와 직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21세기를 향해 매진하는 대한예수교 장로
교 총회 전체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도하는 척도가 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후학
들의 어깨는 한츰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