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外 聖地순례/Rome 이태리 歷觀 & 聖地순례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영국신사77 2007. 3. 4. 23:29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베니치아 광장(Piazza Venezia)과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정치, 종교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 신전, 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지하철 B선 COLOSSEO역에서 도보로 약 5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탈리아]포로 로마노 (Foro Romano)  2007.02.13 08:56
퍼스나콘 여행괴물(sjw1861) 카페스탭
 

 

작성자 : 허남웅  2006 4 17

             

 

  팔라티노(Palatino) 언덕과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포로 로마노는 현재 쓸모없는 돌무더기를 모아놓은 일종의 건축 무덤처럼 보이지만 한때 고대 로마의 영화를 상징했던 곳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정치, 종교, 문화, 경제, 상업의 핵심기관이 모두 들어서있던 로마의 중심지였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곳이 두 언덕 사이에 갇혀있는 형태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대가 낮아 비가 오기라도 하면 물에 잠기는 지형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5대 왕으로 등극했던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가 로마를 정돈된 도시로 건설하기 위해 지금의 포로 로마노의 터를 잡아 배수시설과 하수시설을 갖춰 도시 형태로의 첫발을 내딛으니 그것이 바로 포로 로마노의 시작이다.


  그러나 로마의 국력이 날로 확대되면서 포로 로마노의 시설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새로운 포룸을 건설하여 중요 기관의 역할을 포로 로마노에서 새로운 포룸으로 분산시켰고 이로 인해 점차 포로 로마노의 기능은 쇠퇴하게 된다. 게다가 BC  283년에 터진 대화재로 포로 로마노는 많은 건축물이 소실되었고 결국 제정이 몰락하면서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방치되어 흙속으로 갇히고 만다.


  그후 18세기에 들어오면서 포로 로마노에 대한 발굴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하였고 현재도 발굴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어 언제가 되어야 그 장대한 모습이 전부 드러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출처 : 노매드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