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의 낭만적인 소크라테스 거리에 있는 민박집에서 일박하고 고스 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로도 항구로 갔다. 정기선은 출항 시간이 늦고 횟수도 적어 오전 8시에 출발하는 쾌속정을 타고 고스 섬으로 갔다. 사도행전 21장 1절에 언급되고 있는 고스 섬은 터키의 밀레도 항구에서 남쪽으로 68㎞ 거리에 있는 비옥한 작은 섬이다. 3만여명이 사는 작은 이 섬은 바울 사도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도중 일박하고 이튿날 로도 섬으로 향한 곳이다(행 21:1). 로마 제국이 통치할 때는 자치도시였으며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는 주치의인 고안의 간언에 따라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오스만제국과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7년 그리스령이 되었다.
오늘날 섬 사람들은 대부분 중심도시인 고스시에 살고 있으며 섬 중앙에는 해발875m의 오로메돈 산이 있다. 지중해성 기후인 이곳은 옛날에는 고운 직물과 포도주가 명물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어업은 물론 밀 감귤류 포도 채소류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구리와 철 등 광산물도 많이 나오고 있다.
고스 섬의 고스 항구에 도착하자 배에 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렸고 일부만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 배에 남아 있었다. 이곳은 해마다 3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경치 뿐만 아니라 이곳이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출생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화가 아펠테스(Apeltes),시인 필레테스(Pilletes) 등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5세기께 히포크라테스는 이곳에 의학교를 세웠다. 현재 이 섬의 코스(고스)시에는 2400년전 히포크라테스가 그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다. 그래서 이 섬 서쪽에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유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역사 유적보다 위대한 복음 전도자인 바울의 전도지를 찾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고스 항구 옆에는 그리스정교회가 아담한 모습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고스 항구에 내린 나는 먼저 아스클레피오스 유적지를 찾기로 하고 먼저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항구 옆 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주문하고 아껴두었던 라면을 꺼냈다. 라면을 처음 보는 곳이라서 내가 직접 주방에 들어가 주방장과 함께 라면을 끓였다. 식당 앞 의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라면 국물과 함께 현지 음식을 먹으니 한국에서 먹는 라면 맛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항구에서 상당히 떨어진 아스클레피오스 유적지로 가기 위해 오전 11시쯤 3유로를 주고 코끼리 열차를 탔다. 코끼리 열차는 15분만에 유적지에 도착했고 다시 입장료 6유로를 내고 아스클레피오스 유적지로 들어갔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으로 라틴어로는 아스쿨라피우스라고 한다. 호메로스의 시에서는 인간이며 의사라고 언급되고 있는데 훗날 전설에서는 아폴론의 아들로 그려진다.
아스클레피오스 유적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데 입구로 들어가자 상점터였다는 표지판이 오른쪽에 있고 넓은 지역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왼쪽에 대신전터임을 보여주는 7개의 기둥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2개의 기둥이 남아 있는 또 다른 작은 신전터가 있었다. 다시 계단을 오르자 언덕 위로 아폴론 신전의 제단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의 중의 하나로 제우스와 레나 사이에 태어났다. 아폴론은 학예의 신이며 국가의 중요한 도덕이나 법률을 주관하는 예언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델포이를 중심으로 그의 신전이 세워졌다. 후대에는 태양신으로 불렸다.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에 오르자 에게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고스 섬에 들러 하루를 보낸 바울은 이곳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아마 “인생은 짧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을 위해 사는 자가 되라”고 외쳤는지 모른다. 내게는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와 관련된 유적지를 찾았다는 것보다 성경에 한번밖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바울 사도가 전도여행 중 들러 하루를 묵었다는 복음 전도의 현장에 와 있다는 감격이 더 컸다. 이곳을 방문했던 바울 역시 육체의 건강보다 영혼의 건강 곧,영혼 구원에 더 관심이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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