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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목사 성서도시 (6)] 바울이 매를 맞은 바보(Paphos)

영국신사77 2007. 2. 24. 22:11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6)] 바울이 매를 맞은 바보(Paphos)
[국민일보 2005-04-04 15:35]

북키프로스의 서쪽에 있는 바보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 중 살라미를 떠나 도착한 항구도시이다. 오늘날 파포스(Paphos)로 불리는 이곳을 바울과 바나바는 터키의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살라미로 온 것과는 달리 섬 중앙을 통해 육지로 이곳에 왔다(행 13:4∼6). 나 역시 라나카에서 빌린 차로 이곳을 찾았다. 동행한 목사님은 갈수록 오른쪽 운전에 익숙해져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따라 속도를 내어 달렸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해안가의 험한 길로 가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배는 더 걸렸을 것을 고속도로 덕택에 라나카에서 바보까지 130㎞ 2시간30분만에 갈 수 있었다. 아마 운전석이 우리나라처럼 왼쪽에 있었다면 더 시간이 단축되었을 것이다.

바보는 한때 구브로섬의 수도였던 성읍으로 이 섬의 남서부 연안 평원에 위치해 있다. 바보는 구바보와 신바보로 구분되는데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차 방문한 곳은 신바보이다. 이곳은 주전 55년 로마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이 섬의 수도가 되었고 로마 총독의 주재지였으며 바울은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다(행 13:6∼12). 그런데 이를 방해하려던 바예수는 바울에게 질타를 받아 얼마 동안 소경이 되리라는 선언에 따라 그가 장님이 되자 큰 감명을 받은 서기오 바울은 더욱 바울의 전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항구에는 주차장 시설이 잘돼 있었고 작은 돛단배들이 항구에 가득 정박해 있었다. 항구의 바로 북쪽에는 중세 때의 성채가 항구를 방어하듯 서 있었다. 요금을 지불한 후 성채 꼭대기에 올라가니 북서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가 놓여져 있고 남쪽으로는 바보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2000여년전 사도 바울은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는 고통을 겪은 후에도 전도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 바보 항구에서 배를 타고 오늘날 터키 남부에 있는 버가로 전도여행을 계속했다.

성채에서 내려온 나는 바울이 채찍이 맞았다는 바울채찍교회를 찾았다.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교회는 영국 성공회에서 바울이 채찍에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이다. 교회 앞에는 300년께 세워진 교회터가 발굴되어 있었고 그 교회 유적 옆에는 ‘성 바울의 기둥’이란 푯말이 그리스어와 영어로 새겨져 있는 대리석 기둥이 놓여져 있었다. 바로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기 위해 묶였던 기둥이다. 고린도 후서 11장 24절에는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매를 맞은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이곳 바보에 있는 바울이 채찍에 맞은 것을 기념하는 기념교회와 바울이 묶였다는 대리석 기둥은 그 중의 한곳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 기둥에 기대어 기념사진을 찍는 나의 모습이 왠지 죄스러웠다. 기둥 뒤에 세워진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행복하게 산다고 하여 영국에서 온 신자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의 고통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것같이 이들도 바울이 당한 고통으로 자신들이 행복하리라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교회를 나와 오른쪽으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로마에서 보았던 카타콤이 있었다.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나 초기 기독교의 박해와 순교사에 등장했던 카타콤을 생각하니 먼 이국땅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순간의 감동이 복음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카타콤에서 나와 해안가로 가자 왕들의 무덤이 보였다. 그러나 입장료를 현지 화폐인 파운드로만 받아 현지 화폐가 없던 우리는 무척 난감했다. 다행히 사정을 이야기하자 매표원은 보기 힘든 동양인이고 더구나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무료로 들어가도록 해주었다. 이곳에 있는 왕들의 무덤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께 조성된 것들로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었다. 무덤벽에는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색이 변하지 않은 벽화가 남아 있었다. 바울채찍기념교회에서 항구로 가는 길에 있는 이곳의 화려한 무덤을 바울도 역시 보았을 것이다. 훗날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외쳤던 부활의 메시지를 전할 때 이곳의 무덤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권력을 잡았던 수많은 왕들의 무덤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의 교훈을 되새기며 무덤을 나와 다시 고속도로를 통해 숙소인 라나카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장거리 여행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바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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