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항을 출발한 나는 “미항이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행 27:8)는 성경 구절에 따라 오늘날 라사이아로 표시된 지도를 따라 차를 몰았다. 라새아(Lasea)는 그레데 섬 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라사이아 알라사 달라사 등으로 간단히 소개된,잘 알려진 곳이 아니었고 지리학자들도 별로 언급이 없는 곳이다. 답사를 위해 가지고 간 자료에 의하면 호메로스 시대에는 이 섬지역에 90개의 도시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1850년 지중해 일대를 조사한 스프레트 선장은 페어레이븐스 근처 해안에서 고대 유적들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이 라새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에 따르면 아마 라새아는 조그마한 해안 성읍에 불과했을 것이다.
라새아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여서 흙먼지가 날렸다. 그런 길을 5㎞쯤 달리자 놀랍게도 우리 눈앞에 라사이라는 마을 표지판이 나타났다. 표지판 아래의 비교적 경사가 심한 길을 따라 25여 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해안은 해수욕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오붓하게 들어선 라새아 해수욕장은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같았다. 아마 죄수의 몸이었으나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로마로 가던 바울도 이곳을 지나갈 때 지친 몸을 잠시라도 쉬고 싶지 않았을까? 해수욕장은 피곤한 나그네를 편안하게 감싸줬다. 계속되는 성지 답사로 피곤한 터라 라새아 해안에서 잠시 몸을 담그고 싶었으나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유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해안가 높은 곳의 작은 발굴터가 보였던 것이다. 비록 작은 발굴터였으나 이제까지 찾지 못했던 새로운 성경의 지명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큰 배려로 생각되었다. 나는 바울의 로마행 여정 중에서 미항과 함께 꼭 한번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라새아(행 27:8)를 발견한 기쁨을 안고 다시 그레데의 이라클리온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도 새로운 지명을 찾았던 그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었다.
성경에 그레데 섬으로 언급되는 오늘날 크레타(Creta)섬은 에게해와 지중해를 구분하는 선상에 있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의 중부는 다른 지역보다 번성하여 크노소스 파이스토스 말리아 등지에는 초기의 궁전이 세워졌고 벽화와 채색된 화려한 도자기들이 쓰였다. 이곳은 바울이 머물렀던 때보다 이미 1900여년전인 기원전 1800∼1500년께 크레타 문명을 꽃피웠다.
이라클리온에 도착한 나는 크레타 문명의 면모를 가장 잘볼 수 있는 고대 크노소스 궁전 유적을 찾을 수 있었다. 궁전의 유적은 이라클리온에서 남쪽으로 6㎞ 떨어져 있는 구릉 위에 위치해 있었다. 1884년 에번스에 의해 발굴이 시작된 크노소스 궁전은 그의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였다. 이곳이 그토록 유명한 것은 연대에 비해 상상을 뛰어넘는 채색 벽화 때문이었다. 그 색상은 오늘날까지도 원색에 가깝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찬란했던 크레타 문명은 기원전 1400년 그리스 본토인의 두 차례 침략으로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게 되었다.
모든 인간의 역사가 다 그렇듯이 흥했다가는 망하는 반복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역사의 흔적과 상관없이 우리의 삶속에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기에 오늘도 나는 사라져간 성경의 도시들을 찾는다. 비록 성경의 도시들이 지금은 유적으로 남아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 남아있을지라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하나님의 사건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라져간 성경의 도시들을 찾는 이유이고 그래서 성지의 현장에서 체험한 은혜를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삶속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집필자 홈페이지 photobib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