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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모스크(BlLUE MOSQUE)

영국신사77 2007. 2. 10. 19:32
                블루 모스크(BlLUE MOSQUE) 2007.02.08 08:11





             블루 모스크(SULTAN AHMET MOSQUE)

 

 

 

블루 모스크 사원 전경 (술탄 아흐멧 자미)

회교 사원 중의 하나인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메트 사원은 소피아 성당의 바로 맞은 편에 있다. 이 사원 내부에 있는 타일과 유리창은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블루 모스크(Blue mosque)로 더 잘 알려져 있다.원래 이 사원이 있던 자리는 비잔틴 제국의 궁궐이 있던 자리로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후 파괴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인 아흐메트 1세(Ahmet I, 1603-1617)는 이 자리에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성소피아성당 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이슬람사원)를 만들고 싶은 욕심 으로,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 건축가 메흐메드 아아(Mehmed Aga)에게 황금으로 된 미나레(minaret), 즉 첨탑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재정 형편상 황금으로 첨탑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묘책을 세우게 된다. 금은 아랍어로 '알트'인데 마침 숫자 6이 금의 발음과 유사한 '알튼'이니 4개의 첨탑에 2개를 더해 6개로 만든 다음 왕이 뭐라고 하면 첨탑 6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우기자는 것.결국 블루모스크의 첨탑은 6개가 되었고, 금첨탑이 아닌 첨탑 2개가 더 붙어 있는 것에 놀란 왕이 신하들을 추궁하자 신하들은 너무나 태연하게 얘기했다."폐하께서 6개의 미나렛을 만들라고 하신 것을 소신들은 분명히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여러 명이 한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은 쉬운 것처럼 왕 한 명을 놓고 여러 신하들이 금첨탑이 아닌 6개의 첨탑으로 만들었다고 우기니 뭐라 할 말을 잊은 왕, 일단 첨탑은 6개가 되긴 했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당시 왕의 권위로 만들 수 있는 모스크 미나렛 수는 4개. 6개의 첨탑은 오로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는 알라의 성전만 가능한 것인데 졸지에 알라의 성전과 미나렛 수가 같아졌으니 큰일이라 생각한 아흐메트 1세는 결국 메카의 성전에 첨탑 하나를 더 지을 비용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결국 메카 성전의 첨탑 수는 7개가 되었고 블루모스크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첨탑이 6개인 사원으로 남게 됐다고한다.

 

 

 

 

 

 

 

남쪽 문을 통해 사원 내부로 들어서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된 웅장한 사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원 내부를 장식하는 데 21,043개의 타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타일은 니케아 신경이 만들어진 이즈닉으로 부터 가져온 것이다.  천장을 가득 메운 수백 개의 오일램프는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사원 전체에는 260개의 창문이 있는데, 스태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블루 모스크는 역사적인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회교 사원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곳이다.

 

 

 

블루 모스크의 모자이크 창들.
모두 푸른빛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낮에 햇빛이 투과되면 푸른빛이 더해보인다. 천정에서 길다란 줄이 내려와 할로겐 등들을 지지하고 있다.

 

 

 

 

 

 

 

블루 모스크를 둘러보려면 서쪽에 있는 작은 출입문이있다. 이 문은 오스만 제국 당시 황제가 출입했던 문이다. 겨우 몇 사람이 함께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문에 들어서면 ‘ㅅ’ 모양의 쇠사슬이 방문객들의 앞을 가로 막는다.

 

 

 

서쪽 문에 이런 쇠사슬을 설치해 놓은 이유가 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지중해를 둘러싼 방대한 영토의 대 군주로서 머리를 숙이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회교의 신을 예배하기 이곳에 들어설 때는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 출입문에 쇠사슬을 만들었다고 한다.

 

 

 

 

히포드럼(마차경기장 HIPPODROME)

 

 

본래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의 광장 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곳에는 아주 귀중한 세 개의 기념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5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한 사원에 세워졌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셀팬타인 기둥(Serpentine)이 있다.

 

 

 

청동제 뱀기둥은 그리스가 페르시아제국과 살라미스 해전 및 프라테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기념하기 위해 B.C 479년 그리스에 있는 델피의 아폴로신전에 바쳐진 것인데(그리스군이 포획한 페르시아군의 무기를 녹여 만듬)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가져온 것으로 이 탑은 청동으로 된 3마리의 뱀이 서로 꼬여 있는 모습으로 8m 높이였는데 머리부분은 소실되어 5.5m 만 남아있다.
세마리의 뱀의 머리 중 두개는 발견되었으며 1847년 발견된 것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하나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다.

 

 

 

Shoot datetime 2006-05-30 Istanbul, Turkey

        http://blog.godpia.com/ya106/17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