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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Perga:페르게]

영국신사77 2007. 3. 17. 00:22
                                   버가(터키)
 
 
                                                                                                      출처 블로그 > 성화사랑
                                                                  원본 http://blog.naver.com/bss2079/60013418628
 
 
 

                                                             버가

 

                                                            버가

 

                                                    헬레니스틱 문

 

                                                  헬레니스틱 문

 

                                                     헬레니스틱 문

 

                                                      헬레니스틱 문

 

                                                     원형극장

 

                                                      원형극장

 

                                                  버가 아고라

 

                                                      버가 아고라

 

                                              버가 아고라

 

                                              버가 대로와 열주

 

                                                  버가 대로와 열주

 

                                                버가 대로와 열주

 

                                                버가 대로와 열주

 

                                                        목욕탕

 

                                                        목욕탕

 

                                                      목욕탕

 

 

                                         버가 (페르게)


  버가는 안탈리아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이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다.

 

  버가는 밤빌리아 지방의 한 도시로써 주전 12-13C 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리디아 왕국에 이어서 페르시아의 점령 하에 들어갔던 버가는, 주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해방되고 최고의 번영기는 로마 시대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버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유적은 역시 로마 때 것이다. 현재 발굴 작업은 터키 고고학자들이 벌이고 있다.

 

  이곳은 사도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때 처음 방문했던 곳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타우로스 산맥을 넘어서 비시디아 안디옥을 방문했다. 바로 버가에서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전도 여행을 시작했던 중요한 곳이기도하다.

 

  버가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헬레니스틱문은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였다. 2개의 원형으로 된 탑과, 뒤에 U 자 모양의 정원이 있다. 탑들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그것들의 원래의 형태 그대로 원추형의 지붕을 가지고 아직도 서 있다. 로마제국시 28개의 가득 채워진 벽감들의 2번째 열이 옛 거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발굴 작업시 아폴로, 아프로디테, 칼카스, 모프소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조상들이 발견되어, 지금은 안탈리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버가에 있는 극장은 그리이스-로마 스타일로, 갤러리와 14.000명의 관중석과 함께 만들어졌다. 무대 건물은 52m의 길이며 하나의 층으로 되어있고, 내부 벽은 대리석 조각으로 덮어져 있었다. 그것들 중의 몇몇을 아직도 볼 수 있는데, 연주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생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버가에서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스타디움이다. 길이가 243m 폭이 34m가 되는 두 번째로 큰 빌딩인데, 좌석들의 아래는 원통형 천장 건축양식으로 받쳐져 있으며, 이 큰 건물은 1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버가에서 헬레니스틱 문 말고도 로마의 문이 있는데, 이 도시의 서쪽, 동쪽, 남쪽으로 각기 문을 가지고 있다. 남쪽의 문은 AD 3세기의 로마시대의 것으로, 문 앞에는 2개의 탑이 있었는데, 하나는 거의 손상된 채로 남아있다. 또 이것은 개성의 아치 모양으로 똑바로 서있으며, 후에 두 번째 중심 출입구로 되었고 여러 번 개조되었다.

 

  헬레네스틱의 문과 로마의 문 사이의 공간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광장이라 불리어진다. 그것은 중요한 사건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광장의 왼쪽에는 두 층으로 된 분수가 있고 입구에는 2개의 작은 대접이 있는데, 그것은 이 도시의 거주자들이 이 물은 식수로 사용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발굴 작업 중 이곳에 세워졌던 건물의 조각품들이 발견되었고, 그것들은 지금 안탈리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외에도 버가에는 상점들이 있었던 아고라, 비잔틴 시대에 세운 교회가 있는 아르카디안, 버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 체육학교, 온천탕 등... 로마제국의 지배하에서 버가의 융성했던 생활상들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로마시대의 많은 건물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출처-   http://holyland.maru.net/

 

 

 

 

       [이원희 목사의 성서 속 도시 이야기]

 

                                 (47) 마가 요한이 돌아간 버가

                                                                                                [국민일보 2006-01-23 15:28]

  터키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성서의 도시들 중 하나인 버가로 가기 위해서 이스탄불에서 국내선 항공을 이용해 앗달리아로 간 후 다시 버가로 향했다. 버가(Perga)는 세스트루스(Cestrus·현재 아쿠스강) 강구에서 13㎞ 내륙의 평원에 위치한 소아시아의 남부 밤빌리아 지역에 있는 고대도시 중의 하나로 현재는 무르타나(Murtana)로 불린다. 버가는 앗달리아 시내에서 30㎞가 채 되지 않아 30여분만에 도착했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때 왕복 2회에 걸쳐 이 땅을 통과하였다(행 13:13,14:24∼25). 이 성은 토착민의 요소가 강하며 비옥한 토지는 아니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에 동행하던 마가 요한은 너무 힘든 나머지 이곳에서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말았다. 이 일은 2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행 13:13∼14).

 

  왜 마가 요한이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는 버가 북쪽에 있는 높은 고산 지대가 말해주는 듯했다. 마가 요한은 힘든 뱃길과 오늘날 키프로스(성경의 구브로섬)에서 바울이 채찍에 맞는 고난과 고통을 본 후,버가에서 또 높은 산을 넘어 전도여행을 해야 하는 일정을 바라보며 그 고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만큼 버가의 북쪽은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버가에 도착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자 무너졌지만 남아있는 도시문(Triple Arch)의 규모를 통해 버가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버가는 헬라 시대 이전에 생겼고 트로이 전쟁 이후에 번성했다. 이 도시의 성벽은 BC 3세기께 건축된 것으로 밤빌리아의 주요 토착 성읍이었으며 헬레니즘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동전을 주조하고 있었으며 그 기간은 BC 200∼AD 276년까지 이른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들의 주요 예배 대상으로 그 제의와 형태는 에베소와 비슷하고 때로는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수렵의 여신으로서 표현되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도시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는 넓은 아고라(고대 시장)터가 위치해 있었다. 버가의 아고라 규모는 에베소에 버금 가는 규모였다. 그리고 도시문에서 북쪽으로 강의 신인 카스트로스(Kastros) 조각상이 새겨진 분수탑까지는 도시의 중심거리인 콜론나디드(Colonnaded) 거리가 직선으로 뻗어 있으며 거리 옆에는 옛 상점터가 남아있다. 버가는 대규모 성읍답게 바실리카형 교회가 두 곳이나 있으며 로마와 그리스풍의 극장 역시 도시의 남서쪽에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남북의 길이가 234m,폭 34m의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경기장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로마의 대도시에는 빠짐없이 설치된 목욕탕과 성벽,성벽에 있는 망대와 문들을 통해 버가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큰 규모의 유적지를 2시간만에 다 둘러본다는 것은 무리였지만 앗달리아에 가야 하는 일정 때문에 서둘러 돌아본 후 다시 온 길을 따라 앗달리아로 향했다.

 

  앗달리아(Attalia)는 현재 안탈리아로 소아시아 남서쪽 연안에 있는 밤빌리아의 가장 중요한 출구에 위치한 조그마한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버가모의 아탈루스 2세(BC 159∼138년)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앗달리아라고 명명하였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가를 다시 경유하여 앗달리아에 와서 전도한 후 이곳 항구에서 배를 타고 전도여행의 출발지인 안디옥으로 귀환했다(행 14:24∼26).

 

  그래서 나는 다른 유적보다 가장 먼저 항구를 찾았다. 앗달리아 항구는 작지만 높은 바위 밑에 자리잡고 있어서 풍랑으로부터 안전했으며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오늘날 항구 위의 언덕에는 항구를 내려다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현재에도 앗달리아는 알맞은 규모로 번성하고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의 방어시설물들의 유적이 중세 도시 성벽들에서 발견된다. 항구 근처에는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진 삼중으로 된 문이 있다.

오늘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 귀로 중에 들린 앗달리아 항구,그리고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버가를 찾았다. 잊어지고 사라져가는 성경의 도시들을 찾는 일은 참으로 힘든 길이기에 마가 요한처럼 이쯤에서 멈출까 생각할 때도 많지만 훗날 마가 요한이 바울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 오늘도 성지를 찾는다.

 

 

                                                                                                                 이원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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