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 곳에 거하기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 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작은 규모로 지어졌으나, 404년 인데 주교가 추방된 것에 반발하여 일어난 폭동으로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1년 뒤인 41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복원했지만, 532년 유스타니아누스 황제 때 일어난 '니카의 반란'으로 인해 또 다시 소실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니카의 반란은 유스티니아누스가 총애한 이집트 무희 출신의 왕비 데오도라 때문에 생긴 반란인데, 당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히포드롬에서 농성하는 반란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성소피아성당이 또 다시 파괴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 잔해 위에 황제의 권위와 교회의 영광에 걸맞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건축가 안테미우스와 수학자 이시도르를 투입,이 거대한 성당 축조를 완료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신축된 모습이 현재의 소피아성당의 모습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 거대한 성당을 단 5년 10개월만에 지었다는 것이다.
축성식을 위해 입장하던 황제는 너무나도 감격해서 "솔로몬 대왕이시여,내가 당신을 이겼소" 라고 외쳤다고 한다
2층으로 되어있는 돔모양의 성당에는 많은 벽화가 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성소피아 사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이 곳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을 둘러싸는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안에는 회칠로 덮여 이슬람교의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다. 회칠 속으로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모두 사라졌다. 이후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투르크가 박물관으로 지정하면서, 복원작업으로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그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성소피아성당 안을 들어가면, 바로 중앙에 웅장한 규모의 황제의 문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사용된 나무가 일설에는 노아의 방주를 뜯은 목재라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성소피아 성당의 돔
동서 77m, 남북 71.7m로 중앙에는 높이 54m에 지름이 33m나 되는 거대한 돔 지붕이다
성소피아 성당의 중앙에 서면,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본당의 넓이 75m X 70m 로 7,570 평방 미터에 달하고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에 달하여,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이의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이다.)
성소피아 성당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 불린다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렇게 큰 구조물인데도 지붕을 떠 받드는 기둥이 없다는 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받으면서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비잔틴 역사를 통해 성 소피아는 황제 대관식과 같은 또는 여러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장소로 쓰였다.
복원 후 드러나기 시작한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 벽화. 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알라와 그 계승자인 술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거대한 이슬람어 글씨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