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제1차 유대전쟁 (5)

영국신사77 2007. 1. 31. 20:47


                                                  마 사 다 북 쪽 궁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난 다음 이스라엘은 시오니즘을 위시하여 그들의 역사 속에서 영웅적으로 독립을위해 저항한 사건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이용된 것이 마사다였습니다.

이가엘 야딘(1917~1984)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이며 욤키프르전쟁에서 장교로 활동.


  야딘의 주도로 50년대에 마사다의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물과 요세푸스의 기록에 일치하는 건축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독립운동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동굴에서 유골이 출토되자 이스라엘군은 이 유골들을 군장으로 치러주었고, 한동안 이스라엘군의 신병들이 이 위에서  “마사다는 다시는 점령되지 않는다”라고 맹세를 합니다. 한때 그랬습니다
그런데 발굴이 더 진행되면서 이 유골근처에서 돼지뼈가 출토됩니다.
아는 분은 알지만,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돼지를 먹지 않습니다.  한가지 잘 알려져있 않은 사실은, 마사다가 수십년동안 로마군 막사로 사용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군의 유해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로마군 장례에 돼지를 제물로 바친다는 얘기가 있으니까요.
정확하게 그 진의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960구의 시체가 나오지 않았으니, 마사다의 집단 자결은 요세푸스의 픽션이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것을 논쟁에 올릴 생각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어디에도 이 포위 전동안 유대인과 로마군이 접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로마군의 사상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군단 공성포위전의 제일 꽃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유대가 로마에 의해 파괴된 것은, 순전히 유대인들 자신의 탓이 컸습니다. 물론 네로가 성전의 제물을 탐냈다는것과 헤롯 집안의 형편없는 통치가 불러온 결과이기도 하지만, 성급하고 교만하며 비개방적인데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성이라고는 눈뜨고 찻아볼수 없는 급진 민족주의의 마수에 걸려 버린 것이 직접적인 비극의 원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특별히 잘난것도 없으면서 이민족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런 이민족이 자신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자기목소리만 크면서도 자기들의 의사에 반하는 자는 자기 민족이라도 가차없이 처단하는 무리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 놀아난 일반 사람들.
요세푸스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신의 섭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어여삐 여기지 않을만큼 교만한 족속의 결말은 비참할 뿐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비극에서 또다른 사회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릅입니다...


 


                             ONAGER[오나거]-오직 한개의 팔로 작동되는 무기

  위의 사진의 맨위 중간에 가로 지르는 바닥과 평행을 이루는 것은 일종의 브레이크로서, 이것이 없으면 발사 거리 통제가 불가능하다



                               마사다에서 나온 투석기용 바위


                                   공성 포위전


  로마군의 공성포위전은 케사르의 갈리아전기 중의 알레시아, 그리고 아바리쿰을 통해 그 전술이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 또 지난 4편에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다루어졌지만 예루살렘 포위전을 통해 다시 한번 로마군단의 공성 포위전에 대해서 쓸까 합니다.

  로마군단은 어떤 특정한 목표가 생긴 경우, 가능하다면 그 성을 거의 둘러싸버립니다.  물론 그러기에 때로는 충분한 병력이 없을 수도 있으며 전쟁이라는 것은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부족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위방벽, 로마군단만의 전술이 등장합니다.

                                     포위방벽


  책에 따라 토성, 또는 방책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영어의 단어는 bank 즉, 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투 진지와 게르마니아 방벽에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먼저 방책을 설치하기에 적당한 지형을 확보합니다. 적의 발사무기(투석기, 활,등)로부터 안전하고, 지형적으로 성이나 요새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적보다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 언덕을 이용합니다.  그 다음, 숙영지를 건설할 때와 같이, 개인 장비 속에 있는 야전 토목공구를 이용하여 땅을 팝니다.  그리고 파낸 흙으로 둑을 쌓습니다.  둑을 쌓은 다음, 그 위에 근처의 나무를 목재로 이용하기 위해, 벌채하여 목책을 만듭니다.  그리고  일정거리마다 탑을 만들어, 감시와 전투시의 거점 역할을 하게 합니다.  또한 이 작업 중에 사령부용 숙영지를 따로 만들고, 몇 개의 코호르트(보통 2개대)가 숙영할 진지를 따로 만듭니다.  이것은 물론 이 방책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방벽은 포위된 성에서, 혹시나 돌파구를 열기 위해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으므로, 그때 방어를 해주고 성을 거의 완전히 밖과 고립시켜줍니다.
그 유명한 알레시아 전투에서, 로마 군단은 요새에서의 적과, 그들을 구하려는 적들 모두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이중 방벽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알레시아 항공사진

  케사르의 경우, 이 방벽의 앞에 도랑을 하나 더 파고, 이것에 물을 끌어 들였으며, 각종 부비트랩으로 방어의 효과를 높였습니다.  이후 다른 공성포위전에서 이와 같은 방식이 사용됐는지는 기록에 없기 때문에 알수는 없으나 ,케사르의 갈리아 전기는 케사르가 살아있던 당시부터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로마군단 지휘관이라도 그 방식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전쟁에서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건조한 지리적 여건이 악재로 작용하여, 유대인들의 화공에 자주 이 방책이 습격당하여 피해를 입곤했습니다.

  일단 이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공성전에 들어갑니다. 이 작업 기간에도, 로마군들은 전쟁기계들로 계속적으로 적의 거점에 무기를 발사하여, 적의 피해를 극대화시켰습니다.  

  로마군단 지휘관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적을 굴복시켜야 할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시간이 충분하고 적의 보급품이 적을것이라는게 확실하다면, 그대로 앉아서 적이 굶주림에 허덕이도록 기다릴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시간이 부족하고 적의 보급이 이쪽보다 더 확실하다면, 성을 점령하는 전술로 나가게 됩니다.

  어떻게 성벽을 넘을것인가?
가장 구태의연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바로 사다리입니다.  높은것에 올라갈려면 이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창의력이 부족하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적 성벽을 넘으려고 수천년동안 이어져오는 전쟁은 여러가지 방법을 만들어냈습니다. 

 


     사다리

    ...리시아의 젠토스에서 기원전 5세기에 것을 보이는 벽부분 장식이 발굴됐는데 여기에 둥근 방패를 들고 그리스식 투구를 쓴 전사들이 사다리로 올라가는 장면이있습니다.  서양 공성전을 묘사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일겁니다. (중동제외)  

  사다리로 적의 성벽을 올라가자면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1. 어디로 올라갈것인가?
      올라갈 곳은 너무 높지 않은가?  그리고 적의 공격을 한번에 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인가?


   2. 누가 올라 갈 것인가?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맨 먼저 올라가는 친구가,

     맨 먼저 전사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로마군의

     훈장에는 적의 성벽을 가장 먼저 올라간 자에 대해 큰 상을 내리고,

     그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간주합니다.

  자 그럼 올라갈 위치를 살펴봅시다.
일단 너무 높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곳은 수비대도 알고있으니 참 암담하죠. 그러니 지원대책이 꼭 필요합니다.  현재의 지원 포격이 그 당시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투석기와 활 등이 이곳에 집중되게 됩니다.
그리고 측면에서 적의 화살이 날아오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도 솔직히 별로 없는 그런 곳입니다. 방어자가 성 만들때 다 계산해 보고 만드는데, 아주 높은 곳이나 이런상태입니다.

  자 그럼 올라가는 것은 그 다음 고민이고, 병사들을 어떻게 성벽밑까지 무사히 보내는가?


  이것도 큰 문제입니다. 화살이 날아와, 돌 던져, 바위 굴려.  구약성서에 보면 여자가 던진 맷돌에 맞아 죽은 사람이 기록되어있습니다.  100명 가서 30명이 성벽까지 갈거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근처에 까지 방어용 방패 또는 방책이 또 만들어 이동이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로마군은 이에 그 유명한 구갑진(테스투도)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좀 그렇습니다. 바위라도 굴리면 위 크레모나 전투에서 보이는 꼴나는 것이죠. 그리하여 나온 것이 공성용 이동식 오두막입니다. 이것은 생긴 것은 오두막인데, 바퀴가 달려 병사들을 안전하게 성벽 밑까지 이동시켜 줍니다.
그리고 아바리쿰에서 사용된 방식으로 아예 통로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성밑 파기

  위와 같은 방식은 한가지 전술을 더 할수있게 합니다. 바로 적 성벽 밑의 토대를 파내어, 무너지게 하는 방법입니다. 테스투도 역시 이런 전술을 이용할 수 있게 하죠.  이 방식은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성안으로 들어갈 수 도 있겠죠.



                     아바리쿰 공성전 디오라마

  공성탑
  사다리로만 올라갈 것이 아니라, 탑을 만들고 바퀴를 달고 가보자. 이 생각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더하여 맨 위에 궁수와 투석수까지 배치시키면, 적 위에다가 화살을 날릴 수 있으니 더 좋겠죠?


  성벽 파괴하기
  그냥 성벽을 부셔버리자. 어떻게? 투석기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쓸 경우, 모든 투석기를 한 곳에 집중하여 날려야 합니다.  그리고 잘 무너지는 곳을 노려야겠지요. 그런 곳이 바로 모서리입니다. 모서리를 깨는게 더 낫지요.

  공성차
  공성차란 처음부터 목적이 적의 성벽을 깨뜨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앗시리아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최초인지는 모르지만.
레야드라는 고고학자가 앗시리아의 왕궁을 발굴하면서, 벽에 설화석고에 부조세공을 찾아내었습니다.  매우 휼륭한 전투장면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현재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재 3개의 다른 형태가 있습니다. 초기의 형태의 것은 멧돼지 같은 모양에 6륜이며, 위에 병사들이 활을 쏘는 장면입니다.
좀더 발전된 형태는 겉에 금속원판으로 보이는 것으로, 외부를 강화하고 진자와 같이 일종의 추로 힘을 주어 파괴하는 형태로 보여진다고합니다.  한대에 두개의 뾰족한 봉이 있습니다.

 

 또 하나가 니느웨 세나케리브에서 출토된 것으로, 구약성서 느혜미야 11:25~30에 묘사된 유대의 도시 ,라기스를 공격하는 장면을 담은 부조입니다.
이 부조에는(사진에는) 4개 이상의 공성차가 보입니다. 각 공성차는 병사들이 만들어 놓은 비스듬한 길을 따라 올라가고, 바로 뒤에 꼭 현재의 전차 뒤에 이동하는 기계화 보병들처럼, 궁수들이 따라오면서 활을 쏘는 장면입니다.  성에서는 돌과 횃불을 던지고, 공성차에 자루가 달린 바가지로 물로 부어 불을 끄려는 병사의 모습까지 나와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장비와 전술로, 로마군단은 공성 포위전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두실 것은 공격하는 쪽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격시점을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상황 봐가면서 지휘관이 결정하야 하겠지만, 최소한 적 방어벽이 붕괴되거나, 적이 상당히 피해를 많이 받은 다음 공격해야 합니다.  시간 없다고 그냥 올라 갔다간 부하들은 그대로 황천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에는 다른 방어벽의 적을 그 자리에 묶어둘, 이른바 견제를 해주어야 하는 부대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하100을 전부 한곳에 모을 경우, 당연히 적도 같이 반응하게 되죠.


 

 성벽이 무너졌더라도, 견제부대는 필요합니다.  적이 이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병력을 빼낼 것이고, 그럴 경우 성벽의 방어력이 얇아지면, 그만큼 다른 방향에서 넘기도 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 등에서도 많은 공성포위전이 존재했지만, 로마군과 같이 그렇게 상세하게 후세에 까지 알려주는 곳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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