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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영국신사77 2007. 2. 1. 15:01
                  [한마당―조용래]  아편전쟁
           

아편전쟁(1840∼1842)은 18세기 영국의 대(對)중국 무역역조가 발단이었다. 영국산 모직물,면직물은 중국 시장을 뚫지 못하고 되레 중국산 차,도자기 수입이 급증해 당시의 국제화폐였던 은이 엄청나게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은의 급격한 유출은 초기 영국 자본주의에 중대한 위협요인이었다.

문제는 인도에서도 벌어졌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의 구매력 부족 때문에 영국산 직물 수출이 좀처럼 늘지 않아 은화 확보에 적잖은 애로를 겪고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이 두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면 존립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영국은 당시 소량의 인도산 아편이 의약품으로 중국에 수출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해 대중국 무역역조를 해결하고 인도에는 아편수입 대금을 지불해 인도의 영국산 공산품 구매력을 높였다. 단숨에 두 난제를 해결한 영국은 이후 불과 50∼60년 동안 아편밀수 규모를 무려 200배나 늘렸다.

이에 청나라는 반발했고 결국 양국간 전쟁이 벌어졌다. 바로 아편전쟁이다. 결과는 청나라의 참패. 청나라는 거액의 배상금 지불,아편무역 용인,150년간 홍콩 조차 등 불평등조약(난징조약)을 맺어야 했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반식민지로 전락했던 인도와 중국의 아픈 역사다...



                                                                                     조용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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