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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제국 [Western Roman Empire]

영국신사77 2007. 1. 30. 15:08
                    서로마 제국 [Western Roman Empire]

  요약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재위 379∼395)의 사망으로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을 때, 호노리우스(384∼423)가 395년에 계승하여 476년까지 약 80년 동안 계속한 서반부(西)의 제국(이탈리아·에스파냐 북아프리카).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은 후, 큰아들인 아르카디우스(재위 395∼408)가 동()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데 대하여, 둘째 아들인 호노리우스가 서방의 황제로서 서로마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서로마제국은 국력이 약하여 내외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476년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폐위되자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였다.

 

  동쪽과 분리된 서로마제국은, 동로마제국에 비하여 그 국력이 훨씬 약한 데다가, 게르만인 스틸리코를 처형한 뒤로, 각지에 황제가 난립하여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뿐만 아니라 게르만인의 침입에 시달리면서, 그것이 국력 쇠퇴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브리튼섬에는 색슨족이 침입하였고, 갈리아 지방에는 프랑크족부르군트족이 침입하였으며, 에스파냐수에비족·반달족 등에게 점령되었다.

 

  410년 로마시마저도 알라리크 1세(재위 395∼410)가 인솔한 서고트족에게 강탈되었다. 이어 발렌티니아누스 3세(재위 425∼455)의 모후()인 가라 프라키디아와 무장 아에티우스 등이 국운()의 재건을 도모하여, 451년 훈족의 왕 아틸라카탈라우눔전투에서 격파하였으나, 455년 로마시가 재차 반달족의 게이세리쿠스(재위 428∼477)의 습격을 받아 황폐하게 되었다.

  이처럼 서로마제국의 영토가 게르만인의 침입으로 유린당하거나 그들이 정착함으로써,
국고() 수입이 격감하고 국가재정의 유지도 곤란하게 되었다. 이로써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하기 이전에 이미 소진()하여, 실질적으로도 제국의 해체 때에는 야만인들 무장()의 지배하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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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마제국 [Western Roman Empire]

요약

  395년∼476년까지의 로마제국 서반부를 가리키는 호칭. 395년 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제국 동부는 장남 아르카디우스가, 서부는 차남 호노리우스가 물려받았다.

설명

395년∼476년까지의 로마제국 서반부를 가리키는 호칭. 395년 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제국 동부는 장남 아르카디우스가, 서부는 차남 호노리우스가 물려받았다. 국법상으로 제국이 동서로 <분열>한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는 동부와 서부로 나뉘어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았는데, 401년 알라리크 휘하의 서고트족이 북이탈리아를 침입하였고, 406∼407년에는 반달·알라만·수에비족이 갈리아를 차지하고 에스파냐를 침입했다. 발렌티니아누스 3세 때인 429년 아프리카로 건너간 반달은, 439년 카르타고를 점령하였다. 451년 아틸라 휘하의 훈족이 갈리아에 쳐들어왔으나 ,장군 아이티우스는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이를 물리쳤다.
 
  그러나 455년 테오도시우스왕조가 단절되자, 서로마의 제위(帝位)는 게르만 무장(武將)이 차지하거나 동로마황제가 보낸 황제가 뒤를 이었다. 476년 오도아케르가 어린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고, 황제의 자리를 동로마황제에게 반환함으로써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였다.
 
  동로마제국이 1453년까지 존속한 데 반하여, 서로마제국이 일찍 소멸하게 된 배경에는 우선 경제력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동로마는 인구와 경제력면에서 서로마를 능가하여, 제국 세입의 약 2/3를 동로마에서 거두었다. 4세기에 서로마는 얼마간 번영을 회복하였으나, 그 부(富)는 명문귀족에 집중되었으며, 대토지 소유귀족들은 고관직을 대부분 독점하고 중소농민을 예속화하여 그들의 영지에서 자립성을 강화하여 갔다.
 
  이러한 상황에 서로마의 직할영토가 게르만족에 의하여 잠식당하자,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군사력에서도 425년 무렵의 경우, 서로마군의 병력이 약 25만 명인 데 비하여, 같은 시기의 동로마군 병력은 35만여 명에 이르러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더욱이 동로마는 국민군의 유지와 그 향상에 힘썼으나, 서로마군은 재정상태의 악화와 함께 군사력도 급속히 약화되어, 게르만동맹부족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갔다.
 
  동서의 분화는 문화면에서도 나타나, 4세기에는 서로마 지식인 가운데 그리스어를 알지 못하는 자가 늘었고, 그리스도교회 내에서도 서로마의 주교들은 황제의 권력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동로마보다 엄격한 태도를 견지하였다.
 
  서로마제국이라는 정치적 통일체가 소멸된 뒤에는 가톨릭교회, 일부 로마귀족층과 예속농민, 게르만 여러 왕국이 잔존하여, 이후 동로마와는 다른 서유럽 세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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