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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

영국신사77 2007. 1. 27. 19:52

  

                        주 [周]

 

제기 / 주나라(서주) 기원전 10세기. 제기에 새겨진 새문양은 서주의 청동제기에 자주 보여진다.

  요약
중국의 고대 왕조(BC 1046∼BC 771).

()나라 다음의 왕조이며, 이전의 하()·은과 더불어 삼대()라 한다. 요()·순()의 시대를 이어 받은 이상()의 치세()라 일컬어진다. 주()나라는 왕실의 일족과 공신을 요지에 두어 다스리도록 하는 봉건제도로 유명하다. 봉건이란 말의 원래의 뜻은 곧 주나라의 국가체제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BC 11세기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호경(:西 부근)에 정하여 주왕조를 건설하였을 때 나라의 기초를 굳히기 위하여 실시한 제도였다.

다음 : 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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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건국

 

  주왕조()의 시조는 후직(:)이며, 13대째의 고공단부(:) 때에, 기산(:西 )에 옮겨 정주()하고, 국호를 주()라 하였다. 당시 황허강[]의 하류지역에는 은왕조()가 번영하고 있었는데, 주족()은 그 서쪽 변두리의 제후()의 하나였다. 태왕의 손자 문왕(:)에 이르러, 태공망(:) 등의 보좌로 서방의 패자(:西)가 되었다.

  그 아들 무왕(:)은 제후의 지지를 받아, 당시 민심을 잃고 있던 은의 주왕()을 멸할 싸움을 일으켰다. 이 출병()을 하지 말도록 간()한 백이()·숙제()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무왕은 마침내
목야()전투에서 은의 대군을 무찔러 주왕을 죽이고, 은왕조에 갈음하여 주왕조를 창시하였다.

 

 

 

                                주의 문화

 

  주는 종주(:西 유역의 )를 도읍으로 하였으나, 동방을 통치하는 중심으로서 낙수()를 따라서 동도() 성주()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희성()의 동족을 노()·위()·진() 등의 요지에 후()로 봉하고, 건국의 공신 태공망 여상도 제()에 봉하였다. 이것을 봉건()이라 부르고, 흔히 무왕의 동생 주공(:)이 처음으로 실시한 제도라 하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 '봉건'과 유사한 제도는 이미 은대 말기에 행하여진 것 같다.

 

  '봉건'뿐만 아니라 주공이 창시했다고 하는 주의 예제()는 후세에 원망을 산 것이 많으나, 주의 청동기문화()나 상형문자()는 은에서 발달한 것을 이어받은 것이 명백하다.

 

  대체로 주의 문화는 은의 문화에 힘입은 바가 많다. 은을 멸한 후, 주의 지배자는 그 정치적 변동 등을 하늘의 뜻에 의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일찍이 은에 내린 천명()은 주왕()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은에서 떠나고, 새로이 주()에 내려진 것이라 했다. 이렇게 천명을 고친, 즉 혁명()한 주왕조가 영속되기 위해서는 덕()을 닦고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동주시대

 

  무왕부터 소왕()·목왕()에 이르는 동안이 주왕조의 전성기였으나, 마침내 BC 9세기부터 안에서는 제후의 이반(), 밖에서는 융적()의 침입이 잦아져 주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11대 선왕(:)은 융적을 격퇴하여 한때 세력을 회복하였으나, 그의 아들 유왕()은 포사(??)를 총애하여 내정이 문란해짐으로써 견융()의 침입을 초래하여 유왕은 살해되었다.

 

  그의 아들 평왕(:)은 마침내 도읍을 성주(: 부근)에 옮기고 주왕조를 부흥시켰다. 이 평왕의 동천(:BC 771) 이전을 서주(西)라 하며, 그 이후를 동주()라 불러 구별한다.

 

  동주시대에 들어서서 약 반세기가 지나 춘추시대()가 시작된다(BC 722). 춘추시대에는 제후 등의 이반으로 국내의 정정()이 불안정하였고, 열국 간에 전쟁과 회맹()이 끊이지 않았으며, 제()의 환공(), 진()의 문공()과 같은 패자(:과 같은 뜻이며, 를 의미한다)가 회맹을 주재()하여, 중원()의 질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패자는 명목상으로는 주왕실의 권위를 존중하고, 주의 봉건질서를 적극적으로 허물어뜨리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BC 5세기에 들어서자, 여러 나라의 내부에서 하극상()의 풍조가 일어나, 그 기세에 눌려 주의 위열왕()은 진의 유력한 귀족 한()·위()·조()의 3씨를 정식으로 제후로 격상하는 것을 인정했다(BC 403). 이 해를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해로 보는 설이 있는 것은, 주왕 자신이 '봉건'의 정신을 망각한 점을 중대시하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의 주왕은 낙양 부근을 영유하는 한낱 작은 제후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도 마침내 동서(西)로 분열된 나머지 BC 256년, 난왕(赧)이 진()에 항복하여 주는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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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周]

 

 

 〈사기〉에 의하면 주는 후직(后稷)의 자손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고공단보(古公亶父) 이전의 계보에는 의문점이 많다. 문왕(文王)의 할아버지인 고공단보 때, 주나라 사람들은 처음으로 기(岐:지금의 산시 성[陝西省] 치산 현[岐山懸] 근처)로 옮겨와 정착하여 점차 세력을 길렀다.

 

  주는 허난 지방의 유력한 국가들과 혼인관계를 맺어 세력을 확대하다가, 왕계(王季) 때 은과 싸워 왕계는 살해되고 문왕이 그뒤를 이었다. 문왕은 기에서 웨이수이 강[渭水]을 넘어 동쪽으로 진출하여 풍(:지금의 시안 시[西安市] 서쪽)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동쪽으로 세력을 신장하여, 결국 은으로부터 서백(西伯:서쪽의 패자)으로 인정받았다.

 

  그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도읍을 시안 근처의 호(鎬)로 옮기고 이를 종주(宗周)라고 했다. 나아가 이곳을 동방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군사를 일으켜 은을 정벌하고 주조(周朝)를 세웠다. 무왕은 은나라 주왕의 아들인 무경(武庚)에게 은의 옛 영토를 다스리게 하고, 동생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에게 그를 감시하도록 했다.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成王)이 제위에 오르자, 주공(周公)이 섭정했다. 관숙과 채숙이 이에 불만을 품자, 주공은 은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강숙(康叔)을 그곳의 제후로 봉한 뒤, 다시 동정(東征)에 나섰다. 주공은 동방경영을 위해 동도(東都) 낙읍(洛邑)을 건설했다.

 

  주는 그뒤 강왕(康王)·소왕(昭王)·목왕(穆王)의 3대에 걸쳐 강성했으며, 여러 차례의 군사정벌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주는 외국 정벌로 획득한 새 영토를 통치하고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요충지에 동족 또는 이족 공신들을 제후로 봉했다. 이 제후들에게는 일정한 지역과 주민을 지배하게 하는 대신, 공물을 바치고 군사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했다. 주의 봉건제도는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무왕·성왕 때만 새로 70여 개국이 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군사정벌로, 목왕 이후 국력이 점차 쇠퇴했다. 제10대 여왕(勵王)은 국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전제정치를 시행했으나, 귀족들의 분노를 사 체( : 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훠 현[縣]근처)로 망명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수도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그가 왕위를 비운 동안에는 재상 공백화(共伯和)가 국정을 장악했다.

 

  공백화가 처음 국정을 다스리게 된 해를 공화원년(共和元年:BC 841)이라 하며, 이때부터 중국의 기년(紀年)이 분명해졌다. 주 말기에는 흉작과 천재지변이 이어져 민심이 흉흉해졌으며, 후계 문제로 내란이 일어난 틈에, 북방민족의 침입을 받아 BC 771년 수도를 함락당했다. 이로써 서주(西周)가 멸망하고, 평왕(平王)이 동도(東都) 성주(成周)로 도망가, 다시 왕조를 일으켰다. 그러나 옛날과 같은 위세는 볼 수 없었으며, 제후들이 독자적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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