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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말로 ‘특권’을 해체했나

영국신사77 2007. 1. 24. 14:57

                    [특파원 칼럼] 정말로 ‘특권’을 해체했나

 

                                                       선우정/도쿄특파원 su@chosun.com
                                                                   입력 : 2007.01.23 22:51 / 수정 : 2007.01.23 23:52

    • 선우정/도쿄특파원
    • 일본 수퍼에 장 보러 가면 두 번 놀란다. 우선 한국과 비교해 제품이 비싸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중국산이겠거니’ 생각하다가 공산품이든, 농산물이든 ‘일본산(産)’ 표시가 붙어 있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이런 현상을 그저 환율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중요한 의미를 놓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특권 해체’에 관한 일본의 메시지다.

      일본 경제사엔 다이에이-마쓰시타의 ‘30년 전쟁’이 기록돼 있다. 1964년 시작돼 1994년 끝난 주도권 쟁탈전이다. ‘골리앗’은 일본 최대 전자업체 마쓰시타, ‘다윗’은 구멍가게에서 출발한 유통업체 다이에이였다. 다이에이가 마쓰시타 전자제품을 마음대로 할인 판매하자 마쓰시타는 “값은 우리가 결정한다”며 납품을 끊었다. 팔려나간 제품 번호를 확인해 다이에이에 물건을 공급한 중간업자까지 응징하는 힘을 과시했다.

      한국으로 치면 ‘삼성’을 빼고 장사하는 꼴이었지만, 다이에이는 무려 30년을 버텼다. 당돌하게 “싸게 팔겠다는데 왜 시비냐”는 고객주의로 맞섰다. 소비자들은 다이에이에 박수 쳤고, 결국 마쓰시타가 졌다. 마쓰시타가 제품 공급을 재개한 1994년은 일본의 경제 권력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넘어간 역사적인 이정표로 기록되고 있다. 대기업의 ‘비싸게 팔 수 있는 특권’이 와르르 해체된 것이다.

      일본 제품 가격에선 또 하나 해체된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이익과 상관없이 매년 임금을 올려 받겠다는 ‘노동 특권’이다. 가격 결정권이 소비자로 넘어가 기업이 멋대로 가격을 못 올리자 노동 특권 역시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2002년 유명한 도요타자동차 노조의 임금 동결 선언이 이정표였다. 고임금 부담을 소비자에게 가격으로 전가하는 노사(勞使)의 ‘특권 담합’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일본 농민들 역시 똑같은 이유로 ‘농산물을 비싸게 팔 특권’을 잃었다.

      이어 일본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관료와 교단 특권이다. 일을 어떻게 하든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철밥통 공무원과, 아이들 학력엔 아랑곳없이 사상이나 강요하는 일교조(日敎組·한국의 전교조에 해당) 교사의 특권을 말한다. 정권이 스스로 나서고 있다. 물론 이들을 먹여 살리는 납세자의 힘이 밑바탕이다. 시장과 정부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는 기업-노동자-관료-교사의 특권 담합을 함께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6월 항쟁 기념사업회 사람들을 모아놓고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특권 구조는 거의 해체됐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남은 특권적 권력은 언론”이란 상투적 구호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노사가 짝짜꿍이 돼 성과급을 챙기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대기업을 보면, 대체 무슨 특권을 해체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국민 세금으로 살찐 정부, 빨치산 위령제에 어린 학생을 몰고 가는 전교조 교사의 존재만으로도 이 정권엔 특권 해체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일본의 특권 해체는 거품경제 붕괴가 계기였다. 한국도 IMF 위기라는 계기가 있었다. 하지만 잘못된 정권 선택으로 몇 년을 허송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재벌과 노동의 제왕적 특권이 결합한 야릇한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관료와 교단의 특권도 정권의 비호 속에 더 공고해졌다. 한국 사회는 국민들의 주머닛돈을 우려내는 특권 구조를 ‘거의 해체’한 것이 아니라, 이제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시점에 직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