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 치제(致齊). 정홍기 만주기인(正紅旗滿洲旗人)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입신양명하여 건륭제(乾隆帝)의 총애를 받고, 1769년 3등경거도위(三等輕車都尉) ·3등시위(三等侍衛)가 된 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776년 군기대신(軍機大臣), 이어 호부상서(戶部尙書) ·의정대신(議政大臣)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건륭조의 번영하는 시류를 타고, 숭문문 세무감독(崇文門稅務監督) 등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모으는 등 횡포가 극에 달하였다. 건륭제가 퇴위한 후 가경제(嘉慶帝)는 그를 체포하였고, 대죄 20조를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그의 전재산은 몰수되었는데, 황제의 재산보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
1750 중국~1799. 2. 22 베이징[北京].
중국의 관리.
청(淸)나라 때 건륭제(乾隆帝:1711~99)의 총애를 받아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백성들을 억압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25세에 시위(侍衛)가 되어 준수한 용모와 상냥한 태도, 재치 있는 유머로 황제의 관심을 끌었다. 1년 내에 최고의 지위인 군기대신(軍機大臣)이 되었고,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의정대신(議政大臣)을 겸했다. 그의 아들은 황제가 총애하는 막내 딸인 화효공주(和孝公主)와 결혼했다.
1796년 화중과 화남 지방에서 백련교도(白蓮敎徒)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반란 진압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그의 일당들과 함께 군대의 파견을 지연시키면서 막대한 군비를 착복했다. 그때문에 부대는 백성들을 약탈했고, 조정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다.
1799년 건륭제의 죽음과 함께 그는 권좌에서 밀려나고 유능한 인물들이 등용되었으며, 5년이 지난 1804년에 가서 반란은 평정되었다. 건륭제를 계승한 가경제(嘉慶帝:1796~1820 재위)는 화신을 투옥하고 자살하게 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에게서 몰수된 재산이 은 5,000만 냥에 75개의 전당포, 7만 개의 모피 등을 포함해 10억 냥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화신의 정적들이 다소 과장한 면도 없지 않다.
브리태니커 백과 > 인물 > 기타 > 그 외 여러 인물
'偉人*人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의 5 賢帝 (0) | 2007.01.22 |
---|---|
청나라 건륭제의 20만대군을 짓밟아버린 베트남 황제 (0) | 2007.01.21 |
가경제 (嘉慶制) (0) | 2007.01.21 |
건륭제(乾隆帝) (2) (0) | 2007.01.21 |
건륭제(乾隆帝) (1) (0) | 2007.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