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史 한국문화

한국인들, 근·현대 한국역사 너무 몰라…

영국신사77 2007. 1. 17. 23:44

‘뒷부분 한국사’는 몰라도 되나

한국인들, 근·현대 한국역사 너무 몰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본지 분석결과
조선후기 문제 정답률 80% 육박 광복 이후 문제에선 50%대
“근대 연장인 우리의 현재인데도 그걸 잘 모르는 안타까운 일"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7.01.15 23:57 / 수정 : 2007.01.16 05:51

    • 한국인들은 한국 역사에서 고대(古代)와 17~18세기 근세(近世) 부분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반면, 정작 현재와 가까운 근·현대의 역사에는 무척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지난해 11월 25일 치러진 국사편찬위원회 주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문항별 수험생 반응률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조선시대 후기(17~19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의 정답률이 8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난 반면, 19세기 후반 개항기와 광복 이후에 해당하는 문제에선 50%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그 동안 근·현대사를 소홀히 다루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에 치러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3·4급(중·고교생 수준)과 5·6급(초등생 수준)의 네 가지 유형으로 그중 객관식 문제는 모두 156문제였다. 이를 ▲상고(上古) 시대(삼국시대 전) ▲고대(삼국시대부터 후삼국시대 전까지) ▲고려시대 ▲조선 전기(15~16세기) ▲조선 후기(17~19세기 전반) ▲개항기(고종·순종기) ▲일제시대 ▲현대(광복 이후) 등 모두 8개의 시대별 영역으로 나눠 정답률을 분석했다.〈그래프 참조〉

    • 그 결과 조선 후기가 79.2%로 가장 높은 정답률을 보였고, 상고(76.4%)와 고대(75.9%), 고려시대(73.1%), 조선 전기(71.6%)가 시대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개항기는 53.9%, 일제시대는 62.2%, 현대는 53.2%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두 명 중 한 명 꼴로 오답을 택한 셈이다. 전 시대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 역시 개화기에 해당하는 4급 32번 문제로, 정답률이 고작 16.0%에 그쳤다. 1882년의 명성황후 일기 자료를 제시한 뒤 당시 구식 군인의 차별 대우, 도시 하층민의 가담, 청나라의 내정 간섭 등이 임오군란과 관련이 있음을 짚어 내게 하는 문제였다. 정답률 19.0%에 그친 4급 41번 문제는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1947년 5월)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사이에 들어갈 역사적 사실을 묻는 현대사 문제로 정답은 제주도 4·3 사건(1948년 4월)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유영렬 국사편찬위원장은 “처음에는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뒷부분으로 가면 별로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소홀히 했기 때문이고, 거기까지 학교에서 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까지 대학에서도 좀처럼 근·현대사를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며 “근대의 직접적인 연장선이 우리의 현재인데도 그걸 잘 모르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의 정답률이 높은 것에 대해서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실학과 상공업 진흥 등 새로운 분위기가 창출됐던 우리 사회의 전환기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별 정답률은 문화사가 76.2%로 가장 높았고, 경제사(75.0%)와 사회사(72.1%)가 그 뒤를 이었다. 정치사는 66.2%로 가장 낮았다. 모두 15개의 객관식 문제가 출제된 고구려·발해 관련 문제의 정답률은 고대사 전체 정답률보다 6%포인트 정도 낮은 70.9%에 그쳐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관심을 무색하게 했다.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과의 역사 문제에 겉으로만 목소리를 높일 뿐 정작 내실 있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세태를 반영한 셈”이라고 말했다.

    • 유영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최근 국사편찬위원회가 치른 제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결과 수험생(일반인,학생)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근현대사였다고 말하고 있다. / 유석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