偉人*人物

청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

영국신사77 2007. 1. 17. 23:08
             청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
 
출처 블로그 > 熊 穴
원본 http://blog.naver.com/anpius/30001508090
 
 

                                        

 

 청황조 제 2 대 황제 皇太極의 어진(御眞)

 

 

 

이름 : 홍타이지(皇太極)
묘호 및 시호 :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
생몰년(재위기간) : 1592~1643(1626~1643)

 


홍타이지(愛新覺羅 皇太極)는 태조 누르하치의 여덟번째 아들로서,

병자호란때 직접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여 결국 송파 삼전도에서 인조임금에게 치욕을 안겨준 것으로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다.

 

 

주지하다시피, 만주족의 군사 및 행정조직은 '팔기(八旗)'로 이루어져 있다.

정황기, 양황기, 정남기, 양백기 등 여덟 가지의 서로 다른 색깔과 모양의 팔기는 각각 다른 부족과 족장의 인솔 하에 있었고, 후금이 건국되던 시기만 하더라도 이를 통해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청 황실도 본래 3개의 기병만을 통솔하였으나, 홍타이지가 잇따른 권력투쟁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결국에는 모든 팔기를 황제의 휘하에 둘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홍타이지는 비록 그 생전에 자금성에 들어가보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소수의 여진인(만주족)들이 다수의 한족을 수 백년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였다.

 

몽골과 조선을 경략하여 배후를 안전하게 하였고, 민족 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화합방책을 강구하였으며, 만주족 고유의 조직인 팔기제를 시대에 맞게 개편하였으며, 국호를 청(淸)으로 개칭하고 칭제(稱帝)하여 중국과 대등한 왕조임을 표방하였고, 만주문자를 보다 쓰기 쉽게 바꾸고 중국의 여러 문헌들을 만주어로 번역하는 등등.......

 

역시 '태종'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우리나라 또는 중국(한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랑캐 출신 침략자'로서 비춰질수 있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왕조 초기의 뛰어난 창업군주로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당시 사대주의와 국제정세판단착오에 빠진 우리 조선 조정이나 외척·환관과 끝도 없는 부정부패의 늪에 빠진 명나라 조정이 부정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것이지, 우리 임금을 무릎꿇게 하였다는 이유에서 그의 엄연한 업적을 무시하고 단지 '야만족 추장'정도로 폄훼하는 것은 역사를 보는 바람직한 시각이 아니라고 본다.

 


 

                                   

 

皇太極의 소릉(요녕성 심양(沈陽) 소재)

 


서양에서 발간된 동양사 문헌에서는 그의 이름이 아바하이(Abahai)라고 언급되는데,어떻게 그런 명칭이 붙었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홍타이지는 죽은 후, 만주 선양(沈陽)의 북릉(소릉)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