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 2007.01.02 15:4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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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꿈과 비전은 삶의 동력이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동차를 움직이는 양질의 연료다. 성경은 말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수많은 꿈과 비전을 품는다. 사람들은 동일한 시간의 첫 자락에서 공평하게 출발한다. 그러나 1년 후에는 순위가 가려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1년 동안 그 꿈과 비전을 잊지 않는다. 꿈과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1년 동안 부단히 노력한다. 실패한 사람들은 언어의 진수성찬만 즐길 뿐이다. 그들은 실천하는 힘이 없다. “하나님께서 새해에는 또 어떤 신비롭고 오묘한 일을 나에게 맡기실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원단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그것은 꿈을 가진 자들만의 가슴 벅찬 감동이다. 시작은 항상 희망을 준다. 새 출발은 항상 기대를 갖게 한다. 대천농고 2학년 때,나는 세 가지의 꿈을 꾸었다. 첫째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는 꿈이었다. 둘째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꿈이었다. 셋째는 교회를 100개쯤 건축하는 꿈이었다. 셋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모두 허황된 꿈처럼 보였다. 나는 세 그루의 꿈나무를 가슴에 심어놓고 매일 그것을 가꾸었다. 매일 기도의 물을 주면서 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꿈과 비전들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싹이 돋아나고 제법 단단한 줄기가 형성됐다. 노력이라는 이름의 비료가 더해지자 나무의 자태가 점점 도드라졌다. 세 가지의 꿈은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니었다. 나는 두 개의 꿈을 이미 이루었다. 1984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그 해에 ㈜대우 아메리카 사장을 맡았다. 2001년에는 대학 겸임교수로 위촉됐다. 두 개의 꿈은 성취됐고 100개의 교회를 세운다는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꿈의 성취를 위해서는 숱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 시간의 파도,자금의 파도,나태함의 파도,위험 부담의 파도 등…. 이 거친 파도를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다. 믿음은 꿈과 비전을 완성시키는 힘이다. 나는 현재 15개국에 41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올해 4개의 교회를 추가로 봉헌할 것이다. 1990년부터 설날과 추석을 한국에서 보낸 적이 없다. 내게 명절은 해외 선교여행의 기회다. 교회 건축을 위해 목사님과 현지를 방문하거나 예배당을 봉헌한다. 나의 선교 타깃은 사도 바울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터키의 동쪽 지역이다. 스리랑카 네팔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 교회를 세우고 있다. 올 설날에는 미얀마에서 예수교회(Church of Christ)를 봉헌한다. 라오스의 폰무앙 교회도 곧 건축될 예정이다. 한센병 환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폰무앙에 ‘아이들의 교회’를 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꿈과 비전의 열매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이 말씀은 곧 꿈이 있는 백성은 흥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예수를 영접한 것이 내겐 최고의 복이었다. 내가 만약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 예수 그리스도,그분은 내 삶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내 삶의 나침반이다. 내 삶의 등대이시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채의숭 회장은 193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삼성과 대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1989년 ㈜대의를 창업했다. 그는 36세에 화양감리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4대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조부모로부터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550여명의 자손들이 모두 기독교인이다. |
업데이트 : 2007.01.02 17:5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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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업데이트 : 2007.01.03 17: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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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업데이트 : 2007.01.04 17: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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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공장은 내 삶의 전부였다. 나의 열정과 물질을 모두 쏟아부었다. 공장은 직장생활 20여년의 결정체였다. 1985년 여름. 며칠째 장대비가 내렸다. 공장은 지대가 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공장에는 리스 자금으로 구입한 신형 기계들이 설치돼 있었다. 새벽 1시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낭보보다 비보가 많은 법. 불길한 예감. 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공장장의 전화였다. 그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흥분된 상태였다. “사장님,공장이 바닷물에 잠겼어요. 기계가 떠내려가고 있어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급히 회사로 달려갔다. 그곳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기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폭우에 만조가 겹쳐 바닷물이 역류,공장을 덮친 것이다. 무릎까지 차올랐던 바닷물이 금세 가슴까지 올라왔다. 새벽엔 천장에 이르렀다. 직원들이 기계를 지키려고 발버둥쳤으나 허사였다. 이제는 직원들의 안전이 문제였다. “모두 공장에서 철수한다.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직원들은 급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생산과장과 공장장이 울부짖으며 공장을 떠나지 않았다. 참으로 위험한 고집이었다. “지금은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철수하자.”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장님이 먼저 피하십시오. 기계가 이렇게 둥둥 떠내려가는데 어찌 저희만 피한단 말입니까. 기계와 저는 한몸입니다. 끝까지 버텨볼 생각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눈물이 핑 돌았다.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 회사를 이렇게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면 그 회사는 정말 가능성이 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회사를 지키려는 저 마음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나님,제가 과연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완전한 절망입니다. 회사를 세운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제게 역경을 주시지 않았잖아요. 첫 시험 치고는 너무도 혹독합니다. 제게 왜 이런 역경을 주십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침 8시. 상황 종료. 고가의 기계들이 모두 바다로 떠내려갔다. 공장은 기괴한 괴물처럼 축 늘어져 있다. 반제품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절망’이라는 제목의 풍경화였다. 4명의 직원들이 끝까지 공장에 남아 사투를 벌였으나 한계가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공격 앞에 인간은 그저 나약한 방관자일 뿐이었다. “하나님,제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지금 저를 연단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연단이 너무 가혹해 이겨낼 힘이 없어요. 이제 저를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망연자실.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납품계약을 한 회사들과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나는 지금까지 ‘신뢰’를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업데이트 : 2007.01.07 15:1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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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마치 점령군처럼 땀과 노력의 결정체를 한순간에 산산이 깨뜨려버렸다. 인간의 무력함…. 회사의 구조물이 마치 괴물처럼 흉물스럽게 누워 있었다. 바닷물이 모든 기계의 작동을 정지시킨 것이다. 넋을 잃은 채 바다가 할퀴고 간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꿈과 희망과 비전들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시체로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 수포(水泡). 그때 내 뇌리에 떠오른 단어였다. 도무지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희망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 퍼뜩 잠언 16장 9절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 말씀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인간의 계획들은 단지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여호아 라파. 치료의 하나님,마음의 절망을 치유해주옵소서. 제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희망을 주옵소서. 다시 비전을 품게 하옵소서.” 나는 직원들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전쟁터에서 지휘자가 절망하면 병졸들의 사기는 급격히 추락하는 법. 이 절망의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리라. 언젠가는 이 고통의 순간을 웃으면서 추억하는 날이 있으리라. 내가 잃은 것은 기계와 제품뿐,가슴 속 희망과 비전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 최남단을 ‘폭풍의 곶(Cape of Storm)’ 또는 ‘악마의 곶Cape of Devil)’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이곳을 항해한 후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잔잔한 바다가 있었다. 그래서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불렸다. 이 절망의 포구에서 나는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리라. 하나님이 주신 그 영원한 희망의 노래를….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연일 수해현장을 보도했다. 우리 공장은 공단에 입주한 회사들 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컸다. 텔레비전 화면에 회사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 즈음,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대학동창 김성중이었다. “채 사장,뭐라 위로할 말이 없네. 그러나 나는 자네의 능력을 믿네. 자네는 반드시 재기할 걸세. 사업을 하다보면 수없이 고난의 파도를 만나는 법이야. 자네가 처음 만나는 파도라서 그만큼 충격이 컸을거야.”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그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재기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네. 우정의 표시라네. 나중에 돈 벌면 갚게나.” 1억원짜리 수표. 거액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친구가 선뜻 1억원을 내민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내게 보내준 구호천사였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이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보란 듯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온상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제게 연단의 과정을 준비하신 것이군요.” 나는 직원들에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너진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우선 깨끗하게 청소부터 하자. 사업을 하다보면 숱한 시련에 부닥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출발이다.” 우리는 ‘폭풍의 곶’을 ‘희망의 곶’으로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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