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믿음간증歷史

[역경의 열매] 대의그룹 회장 채의숭장로 (1)~(5)

영국신사77 2007. 1. 5. 00:49
업데이트 : 2007.01.02 15:44:42
[역경의 열매] 채의숭 (1) “비전 없는자 망한다” 성공 좌우명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꿈과 비전은 삶의 동력이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동차를 움직이는 양질의 연료다. 성경은 말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수많은 꿈과 비전을 품는다. 사람들은 동일한 시간의 첫 자락에서 공평하게 출발한다. 그러나 1년 후에는 순위가 가려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1년 동안 그 꿈과 비전을 잊지 않는다. 꿈과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1년 동안 부단히 노력한다. 실패한 사람들은 언어의 진수성찬만 즐길 뿐이다. 그들은 실천하는 힘이 없다.

“하나님께서 새해에는 또 어떤 신비롭고 오묘한 일을 나에게 맡기실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원단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그것은 꿈을 가진 자들만의 가슴 벅찬 감동이다. 시작은 항상 희망을 준다. 새 출발은 항상 기대를 갖게 한다.

대천농고 2학년 때,나는 세 가지의 꿈을 꾸었다. 첫째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는 꿈이었다. 둘째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꿈이었다. 셋째는 교회를 100개쯤 건축하는 꿈이었다. 셋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모두 허황된 꿈처럼 보였다. 나는 세 그루의 꿈나무를 가슴에 심어놓고 매일 그것을 가꾸었다. 매일 기도의 물을 주면서 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꿈과 비전들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싹이 돋아나고 제법 단단한 줄기가 형성됐다. 노력이라는 이름의 비료가 더해지자 나무의 자태가 점점 도드라졌다. 세 가지의 꿈은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니었다.

나는 두 개의 꿈을 이미 이루었다. 1984년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그 해에 ㈜대우 아메리카 사장을 맡았다. 2001년에는 대학 겸임교수로 위촉됐다. 두 개의 꿈은 성취됐고 100개의 교회를 세운다는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꿈의 성취를 위해서는 숱한 파도를 넘어야 한다. 시간의 파도,자금의 파도,나태함의 파도,위험 부담의 파도 등…. 이 거친 파도를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다. 믿음은 꿈과 비전을 완성시키는 힘이다. 나는 현재 15개국에 41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올해 4개의 교회를 추가로 봉헌할 것이다.

1990년부터 설날과 추석을 한국에서 보낸 적이 없다. 내게 명절은 해외 선교여행의 기회다. 교회 건축을 위해 목사님과 현지를 방문하거나 예배당을 봉헌한다. 나의 선교 타깃은 사도 바울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터키의 동쪽 지역이다. 스리랑카 네팔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 교회를 세우고 있다. 올 설날에는 미얀마에서 예수교회(Church of Christ)를 봉헌한다. 라오스의 폰무앙 교회도 곧 건축될 예정이다. 한센병 환자 700여명이 모여 사는 폰무앙에 ‘아이들의 교회’를 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꿈과 비전의 열매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이 말씀은 곧 꿈이 있는 백성은 흥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예수를 영접한 것이 내겐 최고의 복이었다. 내가 만약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 예수 그리스도,그분은 내 삶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내 삶의 나침반이다. 내 삶의 등대이시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채의숭 회장은 193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삼성과 대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1989년 ㈜대의를 창업했다. 그는 36세에 화양감리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4대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조부모로부터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550여명의 자손들이 모두 기독교인이다.

 

 

업데이트 : 2007.01.02 17:58:35
[역경의 열매] 채의숭 (2) 대천감리교회에 신앙 둥지


나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자동차를 구경할 수 없을 정도의 오지였다. 부모님은 6남매의 교육이 늘 걱정이었다. 마을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업의 끝이었다. 부모님은 6남매가 이런 전철을 밟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신대륙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서산을 떠나 꼬박 사흘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산중턱에 모여 앉았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공중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하나님,이 지팡이의 끝을 따라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켜주신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미련없이 따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약속의 지팡이였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출 14:16)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출 17:6)

그것은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던 능력의 지팡이,모세가 호렙산 반석을 내리쳐 생수를 터뜨린 권능의 지팡이와 같았다. 아버지는 모세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공중에 내던진 것이다. 하나님은 촌로의 조그마한 결심에도 함께하셨다.

지팡이의 끝이 가리킨 곳은 충남 대천. 그곳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예비하신 가나안 땅이었다. 비록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곳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으로 여겼다. 1945년,이곳에는 단 하나의 교회만 세워져 있었다. 선교사들의 선교지 분할 정책에 따라 이곳은 감리교 관할 지역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천감리교회 앞에 집을 구입했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먼 항해를 해온 청교도들처럼 들떠 있었다. 대천을 서인도제도로 알고 그곳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놀랍고 오묘했다. 우리 6남매에게 교회 앞마당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매우 만족해하셨다. 교회는 최고의 학교였다. 가족 중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장로가 되셨고 이어 곧 아버지도 장로가 되셨다. 우리 3형제도 모두 장로 장립을 받았다. 막내동생은 최근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 구리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것도 어머니의 기도 응답이다.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로가 된 것도 감사하다. 그러나 아들 하나쯤은 주의 종이 됐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텐데….”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았다. 어머니가 가르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주일을 성수하라. 가능하면 본교회에서 주일을 지내야 한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는 가능하면 맨 앞에 앉아라. 둘째,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십일조를 하면 분명히 물질의 복을 받는다. 농사를 짓더라도 수확의 십일조를 철저히 바쳐라. 셋째,목사님과 교인들에게 순종하라. 또 너의 달란트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 특히 주의 종에게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성경 말씀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으셨다. 하루 일과를 항상 새벽기도로 시작했다. 어머니는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런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많은 감화를 받았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03 17:20:09
  
[역경의 열매] 채의숭 (3) 대학 다니며 천막교회서 봉사


유소년기의 신앙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부모가 가장 훌륭한가. 좋은 습관을 갖게 해주는 부모다. 나는 좋은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특히 어머니는 우리 형제의 자랑이다.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 교육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어머니는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 몸이 아픈 사람들은 병원에 가기 전 어머니를 찾아왔다.

“권사님,저 좀 살려주세요. 몸이 너무 아파요.”

어머니는 아주 침착한 표정으로 환자들의 아픈 곳에 손을 얹고 기도 드렸다. 그러면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기도가 끝날 즈음,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멎었다. 우리집은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몸이 아프면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아주 인자하게 그들을 맞았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기도해주었다.

“자,이제 교회에 나가야 되겠지요? 예수를 믿어야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탁월한 전도자였다. 이런 방법으로 전도왕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대천은 내 신앙의 텃밭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모험과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1960년. 대천농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꿈과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삶의 한 부분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 나는 건국대에 지원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시골 소년을 위해 크고 비밀한 선물을 예비해놓으셨다.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다. 4년 동안의 학비가 단숨에 해결됐다.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낙원동에서 1학년을 보내고 2학년 때 성동구 모진동 캠퍼스로 옮겼다. 나는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을 도왔다. 어차피 3남3녀가 모두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장남 하나를 잘 가르쳐놓으면 그 덕을 형제들이 나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참 지혜로운 분이었다.

대학 2학년 때,학교 앞 천막교회에 출석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교회였다. 그곳이 바로 나의 영적 고향인 화양감리교회다. 나는 중고등부 교사와 성가대원,청년부장 등을 모두 맡아 열심히 봉사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단 배와 같았다. 거칠 것이 없는 인생이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인생의 로드맵에 따라 착착 앞길이 열렸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삼성에 입사,6년7개월을 근무하고 대우에 스카우트됐다.

나의 세 가지 꿈 중 가장 먼저 실현된 것이 대기업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1984년 대우 아메리카 사장을 맡았다. 이듬해 대의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부천에 크게 공장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았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거의 10의 3조를 드렸다.

“하나님,이제는 제 사업을 시작합니다. 교회를 100개 세우려면 사업이 잘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회사의 사장이 돼주세요.”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호사다마란 말이 있다. 회사를 설립한 해에 나는 큰 역경에 부닥쳤다. 참혹한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첫번째 아픔이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04 17:11:26
[역경의 열매] 채의숭 (4) 홍수로 기계 파손 망연자실

부천의 공장은 내 삶의 전부였다. 나의 열정과 물질을 모두 쏟아부었다. 공장은 직장생활 20여년의 결정체였다.

1985년 여름. 며칠째 장대비가 내렸다. 공장은 지대가 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공장에는 리스 자금으로 구입한 신형 기계들이 설치돼 있었다.

새벽 1시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낭보보다 비보가 많은 법. 불길한 예감. 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공장장의 전화였다. 그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흥분된 상태였다.

“사장님,공장이 바닷물에 잠겼어요. 기계가 떠내려가고 있어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급히 회사로 달려갔다. 그곳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기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폭우에 만조가 겹쳐 바닷물이 역류,공장을 덮친 것이다. 무릎까지 차올랐던 바닷물이 금세 가슴까지 올라왔다. 새벽엔 천장에 이르렀다. 직원들이 기계를 지키려고 발버둥쳤으나 허사였다. 이제는 직원들의 안전이 문제였다.

“모두 공장에서 철수한다.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직원들은 급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고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생산과장과 공장장이 울부짖으며 공장을 떠나지 않았다. 참으로 위험한 고집이었다.

“지금은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철수하자.”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장님이 먼저 피하십시오. 기계가 이렇게 둥둥 떠내려가는데 어찌 저희만 피한단 말입니까. 기계와 저는 한몸입니다. 끝까지 버텨볼 생각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눈물이 핑 돌았다. 월급을 받는 직원들이 회사를 이렇게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면 그 회사는 정말 가능성이 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회사를 지키려는 저 마음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나님,제가 과연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완전한 절망입니다. 회사를 세운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제게 역경을 주시지 않았잖아요. 첫 시험 치고는 너무도 혹독합니다. 제게 왜 이런 역경을 주십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침 8시. 상황 종료. 고가의 기계들이 모두 바다로 떠내려갔다. 공장은 기괴한 괴물처럼 축 늘어져 있다. 반제품들이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절망’이라는 제목의 풍경화였다. 4명의 직원들이 끝까지 공장에 남아 사투를 벌였으나 한계가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공격 앞에 인간은 그저 나약한 방관자일 뿐이었다.

“하나님,제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가요. 지금 저를 연단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연단이 너무 가혹해 이겨낼 힘이 없어요. 이제 저를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가요.”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망연자실.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납품계약을 한 회사들과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나는 지금까지 ‘신뢰’를 최고의 경영철학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

 

 

 

업데이트 : 2007.01.07 15:18:41
[역경의 열매] 채의숭 (5) “다시 일어설 힘과 희망 주소서”

자연은 마치 점령군처럼 땀과 노력의 결정체를 한순간에 산산이 깨뜨려버렸다. 인간의 무력함…. 회사의 구조물이 마치 괴물처럼 흉물스럽게 누워 있었다. 바닷물이 모든 기계의 작동을 정지시킨 것이다. 넋을 잃은 채 바다가 할퀴고 간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꿈과 희망과 비전들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시체로 변해 나뒹굴고 있었다.

수포(水泡). 그때 내 뇌리에 떠오른 단어였다. 도무지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희망은 물거품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 퍼뜩 잠언 16장 9절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 말씀을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인간의 계획들은 단지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여호아 라파. 치료의 하나님,마음의 절망을 치유해주옵소서. 제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희망을 주옵소서. 다시 비전을 품게 하옵소서.”

나는 직원들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전쟁터에서 지휘자가 절망하면 병졸들의 사기는 급격히 추락하는 법. 이 절망의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리라. 언젠가는 이 고통의 순간을 웃으면서 추억하는 날이 있으리라. 내가 잃은 것은 기계와 제품뿐,가슴 속 희망과 비전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 최남단을 ‘폭풍의 곶(Cape of Storm)’ 또는 ‘악마의 곶Cape of Devil)’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이곳을 항해한 후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잔잔한 바다가 있었다. 그래서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불렸다. 이 절망의 포구에서 나는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르리라. 하나님이 주신 그 영원한 희망의 노래를….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연일 수해현장을 보도했다. 우리 공장은 공단에 입주한 회사들 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컸다. 텔레비전 화면에 회사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 즈음,한 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대학동창 김성중이었다.

“채 사장,뭐라 위로할 말이 없네. 그러나 나는 자네의 능력을 믿네. 자네는 반드시 재기할 걸세. 사업을 하다보면 수없이 고난의 파도를 만나는 법이야. 자네가 처음 만나는 파도라서 그만큼 충격이 컸을거야.”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그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재기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네. 우정의 표시라네. 나중에 돈 벌면 갚게나.”

1억원짜리 수표. 거액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친구가 선뜻 1억원을 내민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내게 보내준 구호천사였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이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보란 듯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온상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제게 연단의 과정을 준비하신 것이군요.”

나는 직원들에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무너진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우선 깨끗하게 청소부터 하자. 사업을 하다보면 숱한 시련에 부닥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출발이다.”

우리는 ‘폭풍의 곶’을 ‘희망의 곶’으로 바꾸는 일을 시작했다.

정리=임한창 기자
hc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