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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용서할 때...A. 카네기의 성공 비결은 진실한 인간관계

영국신사77 2006. 12. 26. 13:29
업데이트 : 2006.12.25 18:12:40
               [세상만사―김상길] 이제는 용서할 때

2006년이 ‘밀운불우(密雲不雨)’의 긴 그림자를 남긴 채 퇴장을 서두르고 있다. 시간이 왜 그렇게 빠른가. 구약시대 욥은 인생을 ‘베틀의 북,한낱 바람,사라지는 구름’으로 묘사했다. 그 말이 실감난다. 광속도의 시간에서 회한이 사무친다.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아 답답한 상황을 뜻하는 밀운불우를 올 해의 사자성어로 정한 교수신문이 208명의 교수를 대상으로 ‘2006년의 기쁜 일’을 물었다. 응답자의 절반(50%)이 없다고 하거나 답변하지 않았다.

밀운불우에 이은 사자성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였다. 어설픈 개혁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졌음을 뜻한다. 그러면서 교수들은 상생정치의 실종,지도자 리더십 위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치솟는 부동산 가격,북한 핵실험 등 난제에 따른 사회 각층의 불만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폭발 직전의 임계점’―.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이면에는 적개심이 있다.

만성적인 적개심이 공동체와 개인을 병들게 한다. 인터넷의 ‘저주카페’에는 6만여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다. 왜 축복의 단비가 내리지 않는 답답한 형국일까. 왜 구조적이고 개인적으로 상처투성이일까.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증오가 적체되었기 때문이다. 상처투성이인 이 연말에,이제는 용서로 지난 날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서로 용서할 때 매인 것이 풀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고 말씀하셨다. 원한을 풀면 축복의 단비가 내리고 융합의 소통이 뚫린다.

원한은 분열과 상처,절망과 고통을 심화시킨다. 그 치유의 해법이 용서다. 이 시대 가장 탁월한 용서 전문가인 루이스 스미디스는 ‘용서의 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서는 우리가 바꿀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용서는 쓰라린 기억을 감사의 기억으로,비겁한 기억을 용기 있는 기억으로,노예였던 기억을 자유로운 기억으로 바꾸어 놓는다… 용서할 때 긍정이 부정을 대체한다. 고통스러운 과거로 인해 닫혀 버린,보이지 않는 미래로의 문을 연다.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그 문을 통과해 걷게 되며,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가능성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된다.”(이여진 역)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성공 비결재물관리가 아닌 진실한 인간관계 있었다. 그 중심에 용서가 있다. 그가 평생 용서를 인생의 기반으로 삼게 된 배경에는 청년 때의 소중한 경험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거금의 공금이 든 가방을 기차 안에서 분실했다. 좌석이 없어 통로 바닥에 앉았는데 잠깐 조는 사이 가방이 밖으로 튕겨나갔던 것이다. 다급해진 그는 기관사에게 뛰어가 호소했다. 이해심 많았던 기관사는 어려운 일인데도 열차를 후진시켜 주었다. 이 때문에 카네기는 개울가에 떨어져 있던 거금의 가방을 찾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개울가에서 가방뿐 아니라 인생의 보석도 찾았다. 그것은 용서와 관용이었다. 의도적으로 저지르지 않는 한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의 실수를 품어주겠다고 그는 결심했다. 이후 그런 각오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경영을 풍요롭게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연말정산을 말한다. 진정한 정산은 미움을 거두고 용서하는 것이다. 증오의 비수를 들고 한 해를 정리할 수 없다. 그 비수에 먼저 다치는 건 자신뿐이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적은 용서에서 오는 ‘관계의 평화’다.

s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