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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의 경이로움

영국신사77 2006. 12. 19. 22:44
                    섭리의 경이로움

 

 

 

  섭리란 말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우리 각자를 향한 계획과 인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이끄시는가 그 하나님의 절절한 심정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비에 대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섭리의 정의를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모든 것들이 그 창조된 목적이 성취되도록,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중 처음은 돌보시고, 그 다음은 보존하시고, 세 번째로 통치하신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에 나타난 큰 손길의 신비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아, 과거에 요셉이 고백한 대로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고 방해하고자 악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형들이 절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형들의 악한 행동까지 사용하셔서, 요셉이 그의 형들로부터 절을 받는 위치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삶의 애굽에 팔리고, 어떤 분들은 삶의 감옥에 갇히고, 어떤 분들은 노예처럼 삶이 힘들고 어려워질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팔리고, 상처받고, 갇히고 폄하당하고 할 때에, 그것들이 우리에게 짐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굴욕과 비참의 상황자체에 너무 억눌려 큰 그림을 못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처받다 보니, 오히려 마음 속에 쓴 뿌리가 나고 복수하고 싶어, 자연히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이 어두워집니다. 눈이 어두워지니 섭리의 신비 앞에 엎드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따라서 요셉처럼 총리의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5절에 있는 것처럼 형들이 요셉을 팔지만, 요셉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하시려고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선은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관심은 이런 어려움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그릇으로 준비되기 원하십니다. 사람들의 상처와 분노와 좌절과 회한도 다 담아낼 그릇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그릇만 준비되면, 하나님은 생명의 신비의 능력과 신비의 구원 역사를 펼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렇게 준비가 되어서 총리대신이 됨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 아버지와 온 가족들, 나아 가서는 애굽과  히브리 전체의 민족들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센 땅에서 430년 동안 요셉의 귀한 섭리의 신비를 경험함으로, 적어도 200여 만 명의 큰 민족을 이루고 출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나라로 삼으시고 그 이스라엘 민족을 보는 사람들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표현하도록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통 큰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섭리의 신비를 깨달으면, 어떤 고통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눈을 뜨게 됩니다. 또 하나는 이런 섭리의 신비를 믿으면, 내게 많은 축복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교만 없이 그 축복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섭리의 신비를 깨달으면, 영적으로 철이 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이런 모든 배경들과 방향을 가지고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익 세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섭리의 유익은 환난 속에서의 위로입니다. 실제적인 유익입니다. 환난과 두려움 속에서 참된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요셉의 감옥살이를 생각해봅시다. 아마 계속 상처만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위로가 없었다면 잠을 못 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 속에서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섬세하고도 미세한 인도가 있는 분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고 팔리는 것을 다 아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다. 이럴 때 환난 속의 위로를 받습니다.

 
  두 번째혼란 속의 안정니다. 지금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얼마나 빠른 속도혁명이 일어나고 있는지 휙휙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오늘의 세태도 곧 얼마있지 않아 또 다른 세태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하나님과 비길만한 그 누구도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혼란하고 불안하고 무질서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에게 주시는 섭리의 유익은,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가 있다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섭리의 신비가 주는 큰 축복입니다. 모호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시간낭비 하지 아니하고, 명확한 것들 향하는데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미래의 잘 모르는 것을 알려고 집착하는 대신에, 현재의 생활에 충실할 때 우리의 생활에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 내 일생 가운데서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든 어려운 일이 있든 미래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현재의기도 제목과, 현재에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 숨겨진 것을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이미 나타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최선을 다할 때, 즉 현재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함을 이뤄가는 과정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 현재의 순간을 붙잡을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길 때, 주님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물 붓듯 퍼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의 이 초청에 응하시고,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에 현재의 삶에 충실함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시간이 서산낙조의 시간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동터 오르는 은혜의 패기로 무장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붙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4.06.20)를 요약, 정리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