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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태환 뒤에는 ‘잡초조련사’가 있었다

영국신사77 2006. 12. 15. 17:40

          [인터뷰] 박태환 뒤에는 ‘잡초조련사’가 있었다

[한겨레 2006-12-13 16:21] 기사원문보기


[한겨레] 가난 속에서 피어난 ‘아시아의 물개’는 잡초 감독이 길러냈다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 최고의 사건은 한국 수영이다. 한국신기록 23개로 역대 아시아경기대회 최다 한국신 기록. 금(3개)·은(2개)·동메달(11개) 합쳐서 16개의 메달로 역대 아시아경기대회 최다 메달. ‘아시아의 물개’ 박태환(17·경기고2)의 금메달 3관왕과 7개의 개인메달. 척박하기로 소문난 기초종목에서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엄청난 성적이다.

그 현란한 영광 뒤에 조용히 미소짓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올 7월 한국 수영 사령탑에 오른 노민상(50) 총감독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해냈다. “빛은 선수들이 받고, 감독은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노 감독. 그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귀국한 지 이틀 만인 11일 서울 문정동 집에서 만났다. 7살 때부터 박태환을 가르친 그에게 박태환은 아들 이상의 존재였다.

가난 속에서 핀 꽃 박태환

“대표선수 되어 기쁜 것은 ‘이제 마음껏 먹어라’”

곱상하고 밝은 얼굴의 박태환. 티 하나 없는 그 얼굴에도 그늘은 있다. 노 감독은 태환이 중 3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대표선수가 돼 태릉에 들어갈 때입니다. 태환이하고 저하고 너무 기뻤습니다. 대표선수가 돼서 기뻤지만, 태릉의 좋은 식당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는게 너무 좋았습니다.” 당시 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마음껏 먹어라. 그리고 네 실력을 마음껏 펼쳐보라.”

박태환의 부모님은 넉넉지 못하다. 노 감독에 따르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울 개포동 15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자가가 아니란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쳐온 노 감독의 형편도 거의 비슷하다. 문정역 근처에 25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은행대출이 1억3천만원이 넘는다. 2남2녀의 자식들은 장성했고, 대학을 졸업한 막내아들은 같이 살고 있다. 노 감독의 부인은 찾아온 기자한테 “누추해서 어쩌나, 괞찮겠어요”라며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박태환은 배고프면 못뛴다

아시아 최고의 수영선수 박태환은 배고프면 못뛴다고 한다. 노 감독은 “제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그를 움직일 수 없다. 오직 배가 차야 한다”고 단언한다.

일단 먹는 게 엄청나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가릴 것 없이 고기를 좋아하고 밥, 빵 등 뭐든지 잘 먹는다. 아마 쇳덩어리도 소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태릉에 들어가서도 박태환의 식욕은 유명했다. 저녁 6시 밥을 먹으면 9시가 되면 허전함을 느낀다. 그래서 가능한 저녁을 늦게 먹으려고 한단다. 그래도 배가 고픈 것을 짐작한 노 감독은 빵 한보따리와 두유를 사들고 방에 찾아간다. 반가운 듯 눈을 번뜩이는 박태환은 그 자리에서 빵을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노 감독은 초코렛과 땅콩버터 크림 등 열량이 높은 비상식량을 한보따리 싸들고 갔다. 혹시라도 배가 고프다 싶으면 먹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살찔 걱정은 없을까? 노 감독은 박태환은 타고난 비지방성 체질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먹어도 배에 군살이 끼지 않는다. 워낙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타고난 체질 때문에 못 먹어서 걱정이지, 많이 먹어서 걱정은 아니라고 한다.

박태환은 화초다


박태환은 매우 민감한 화초와 같다. 천재과가 그렇듯이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조심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노 감독은 “꾸짖을 때는 몰아서 단 한번, 그것도 한달에 한번 정도해야지, 잔소리를 해서는 아이의 심정이 망가진다. 체벌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스타일인데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심성이 곱다.

노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이 되기 전에 태릉에서 훈련하던 박태환한테 전화가 왔다. 박태환은 대뜸 나오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코치가 달라지면서 지도 스타일이 달라지고, 아무래도 낯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태릉에서 이뤄지는 약간은 강압적인 훈련에 반감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노 감독은 강압으로 박태환을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한다. 박태환한테는 절대로 그런 게 통할 수 없다고 단언하다. 7월 대표팀 감독이 됐을 때 노 감독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얼차려를 없앤 것이다. 그 전에도 거의 없었지만, 노 감독은 분명하게 선언했다.

“감독은 선수를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지 않지만, 말 한마디로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감독이 무관심할 때 선수들은 가장 치명적입니다. 공부하는 지도자라면 체벌이나 얼차려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 아깝다 양고기

박태환의 주종목인 마지막 1500m 출전 전날인 7일. 노 감독은 영양많고 칼로리도 높은 특식을 찾아 거리를 나섰다. 100m 200m 400m까지 출전하면서 박태환의 체력이 고갈됐는데, 먹을 것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권도

감독을 통해서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양고기 집. 대꼬치에 양고기를 끼워 구운 아랍의 전통요리였다. 노 감독은 행여 식을까봐 은박지 랩에 싸고 헝겊에 둘둘 말아서 택시타고 총알처럼 선수촌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검문소가 문제였다. 선수촌 경비들은 음식을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배짱을 부렸고, 노 감독은 “너희들 장사해주는 거야, 너희들이 먹는 것 사왔는데 왜그러느냐”며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통과는 되지 않았다.

태환이가 이거 먹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노 감독은 지금도 가슴이 쓰리다. 혹시 그 양고기 먹었으면 1500m 기록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비 오면 기운 빠지는 태환에게 성급한 ‘선물’ 약속

먹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다. 천하의 박태환도 비가 오면 컨디션이 좋지 않다. 잘 뛰다가도 비만 오면 기운이 떨어진다고 한다. 근육이 굳는 영향도 있지만, 묘하게 비가 오면 좋지가 않다고 한다. 그런데 1500m가 열리기 전날 도하에는 10년간 내릴 비가 쏟아졌다.

걱정이 된 노 감독은 어떻게 태환의 기분을 끌어올릴까 고민하다가, 사고를 쳤다. “야! 태환아, 너 1500m에서 금메달 따면 내가 노트북 사줄께.” 정작 노 감독은 지난해 중고 노트북 사갖고 다니면서, 1백만원이 넘게 들어갈 노트북 선물 약속을 선뜻 해버렸다. 그런데 금메달을 땄다. 노 감독은 지금도 노트북을 사줘야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박태환, 아테네 올림픽 출전했다가 엄청난 유럽 관중 보고 물에 빠져 실격

과연 박태환은 어떤 점이 천재적일까? 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달랐다고 설명한다. 6학년 때 해군참모총장배 수영대회에서 박태환이 세운 400m 기록(4분22초)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중 3때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그의 능력을 방증한다. 그러나 생전 처음인 엄청난 유럽의 관중이 지켜보는 상황이 너무 낯설었던 모양이다. 노 감독은 “엄청난 관중을 처음 본 촌놈이 엉겁결에 물에 빠지면서 실격이 됐다. 한번만 부정출발해도 실격되는 규칙의 변화 때문에 희생자가 됐다”고 말했다.

중3때 400m 훈련시킬 때다. 노 감독은 100m마다 측정할 테니까 똑같은 페이스로 수영장을 돌라고 지시했다. 힘을 아껴두는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돌지만, 힘을 똑같이 나누어 가라는 것이다.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돌다보면 거리 측정에 어려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 박태환은 59초씩 정확하게 끊어서 들어왔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 이런 태환이를 보고 대표선수로 발탁했다.

8일 아시아경기대회 1500m 결승 때도 박태환의 영리한 플레이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 아시아기록을 갖고 있던 중국의 장린이 예상과 다르게 빠르게 치고 나갔다. 박태환은 그 때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바로 마음을 추스르고 침착하게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갔다. 노 감독은 “보통 그런 상황에서 선수들은 상대에 말려들어가기 쉬운데, 박태환은 순간적으로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보통 수준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경기를 뛰고 나면 보통 선수들은 정상 맥박까지 돌아오는데 4~5분이 걸린다. 그러나 박태환은 2~3분이면 충분하다. 타고난 회복력이다. 천재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박태환은 레이스를 지시하면 ‘못하겠어요’라는 핑계가 없다. 노 감독은 말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얼마나 이쁜가?”

중심이 가슴에 있다


노 감독은 “박태환의 수영은 완벽한 몸의 균형과 중심을 가슴에 두는 영법에 있다”고 말한다. 좌우 팔, 다리의 근육의 힘이 거의 같고, 7000cc에 이르는 엄청난 폐활량, 여기에 팔을 뻗고 물에 올라탄 상황에서 중심을 가슴쪽으로 끌어올리는 게 천부적이라고 말한다.

가령 보트가 빠른 속도로 달리면 앞 부분이 들리듯이, 박태환은 물의 저항을 적게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물살을 타면서 저항을 줄인다고 말한다.

노 감독은 “수영은 위에서 누르는 중력, 아래서 올리려는 부력, 뒤에서 잡아당기는 힘, 앞에서 막아서는 저항 4가지 힘을 잘 알아야 한다”며 “박태환은 이 힘에 대한 분석과 극복능력이 탁월하다”고 지적했다.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전진시 몸에 닿는 물의 부분을 줄이고, 턱도 조금 더 당기면서 속도를 낼 수 있다. 단거리에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는 것은 장거리의 막판 스퍼트나, 결정적인 순간의 속도를 낼 수 있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박태환은 단거리에서도 강하다.

줄 없고, 백 없는 ‘변방의 지도자’ 노민상

문정동 노 감독의 아파트 거실에는 수영관련 자료가 책장에 꽉 차 있다. 외국 서적을 번역해 파일로 만든 것도 20권이나 된다. 주로 외국갔다 돌아오는 선배나 지인을 통해 원서를 구한다.

모르는 영어 단어는 일일이 찾아가면서 번역을 한다. 중·고 기본단어라고 하더라도 모르는 게 나올 때는 시간이 걸리지만 꼭 찾아서 적어 넣는다.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자사전 보세요. 요즘처럼 좋은 환경이 어디있습니까”라는 반문이 돌아온다. 전문용어가 많이 있기 때문에 해득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박태환은 외국어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경기고쪽에 특별히 부탁을 해 1학년 때부터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아직 잘 하지는 못하지만 영어의 중요성은 박태환도 잘 알고 있다.

노 감독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이유는 잡초이기 때문이다. 잡초가 많지만 이건 왕잡초다. 수영 명문인 서울 용산 보광동의 오산중·오산고에서 수영선수를 한 것 빼놓고는 이렇다 할 배경이 없다. 고졸에다, 대표선수로 뛴 적이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의 수영 지도자가 됐으니,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을까? 노 감독은 “집념갖고 하면 재미있다”고 말한다.

지도자 외길, 길은 있었다.

대학을 가지 못한 노 감독은 직장을 대신 택했다가 군대에 들어간다. 수영 잘한다고 해병대에 간 것이 아니다. 육군 일반병으로 지원했고, 주로 행정병을 맡으면서 차트 만들기로 3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수영에 대한 미래를 그렸다. ‘선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한번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방향을 정했다.

제대후 수영클럽의 강사로 취직을 했고, 한때는 서울 반포의 반원초교 수영코치로도 있으면서 1년 반만에 전국대회에서 반원초를 우승시키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도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 노 감독은 말을 꺼렸다. 그러나 이후 야인이 되다시피했고, 수영클럽을 전전하면서 생활을 한다. 박태환은 한때 강남구 대치동 무궁화수영장 시절에 처음 만났다. 특이한 것은 박태환의 부모님이 태환이를 끝까지 노 감독에게 맡겼다는 점이다.

노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2001년부터 서울 잠실수영장의 코스만 임대해 윈앤윈 수영클럽을 운영하면서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동안 맺어온 수강생들과의 인연 때문인지, 그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실제 그가 배출한 대표급 선수만도 김태형, 김연미, 변지미, 이정형, 박경화, 최혜미, 권유리, 박태환까지 이른다.

감독의 심리학

노 감독은 지도자는 심리학자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한테 자신감 심어주는 것과 기운 빼는 것은 천지차이다. 만약 50m를 27초01로 들어오는 선수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노 감독은 거짓말을 한다. “26초대 끊었어. 26.99초야.” 이렇게 말하면 선수는 엄청난 힘을 받는다. 다음번에는 그것보다 더 잘하려고 하고, 결국 26초 벽을 깬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자기 것을 챙기면 잃는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 이루려면 자기 것은 다 포기해야 얻는다. 박태환도 마찬가지다. 클럽에 수영배우러 왔을 때, 그를 받아들이고 끝까지 지켰다. 태환이 어머니가 초등학교 5학년때 유방암 수술을 받았을 때는 집에 모셔와 병구완까지 했다.

노 감독의 꿈 “박태환의 올림픽 메달”

노 감독은 박태환을 통해서 꿈을 이루려고 한다. 선수로서 하지 못한 일, 아시아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 바로 남자 자유형에서 동양인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따는 일이다. 노 감독은 “박태환이 나이가 어려서 체격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고, 1500m 장거리에서는 해볼 만하다”며 “꾸준히 훈련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 12월달에는 박태환의 장단점을 다시한번 정밀하게 분석하고, 웨이트트레이닝 등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체력 부분을 보완할 방법을 연구할 생각이다. 영법이 발달된 미국 현지로 전지훈련을 통해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있다. 발바닥의 500원짜리 동전만한 사마귀는 턴할 때마다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12월중으로 수술해 제거할 계획이다.

내년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세계수영선수권은 동계훈련을 거치고 치르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또 내년 8월 일본에서 열리는 프레올림픽도 올림픽을 앞두고 중요한 경쟁무대가 될 전망이다.

노 감독은 “박태환은 성격이 좋고 스타의식이 없다. 또 겸손하기도 하다”며 “그러나 올림픽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아시아 수영의 영웅이 된 박태환이 혹시 CF 모델로 외도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것 참 좋은 일이다. CF에 나가서 대중들에게 더 친숙해지고 인기를 얻게되면 수영 전체로서도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환 선수가 돈을 벌어, 지난 시절의 배고픔에서 영영 벗어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글·사진 <한겨레>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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