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ding/결혼(wedding)이야기

그 분이 주신 최고의 보석

영국신사77 2006. 12. 4. 13:28
  그 분이 주신 최고의 보석
 
                                유정옥 사모

내가 시집 갔을 때 막내 시누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나를 얼마나 따랐는지 혹시 오빠가 지방에라도 가면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건너와서 너무 좋아서 잠도 못자고
나를 껴안고 내 손을 만지곤 했다.
"언니! 언니는 다 좋은데 그 예수 좀 안 믿으면 안돼?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언니가 식구들에게 구박 받는 것이
나는 정말 싫어."
그러던 시누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집에서 기도하면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우리 둘은 한 사람은 망을 보고
한 사람은 방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몇 겹의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기도했다.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방에서 나오면
문 앞에 지키고 있던 아버님이
양동이에 물을 우리에게 퍼붓는다.
그래서 주일 아침이면 문을 열기 전 시누이와 나는 실랑이를 벌인다.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먼저 나간 사람이 양동이 물을 뒤집어 쓰면
그 뒤에 나오는 사람은 괜찮기 때문이다.
시누이는 교사 임용고사 보는 날이 주일이여서 임용고사를 포기 했고,
우리 교회 무료 탁아소 교사로 봉사했다.
무료 탁아소 아이들을 돌보며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스물 여덟살이 되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데이트 한 번 안해 보았으니 결혼은 어떻게 하나?
스물 일곱은 가볍고 상큼하게 들리는데,
한 살 차이인 스물 여덟은 왜 무겁고 우울하게 들려오는지...
시누이도 내색은 안해도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아 보였다.
"여보! 오늘은 학교에서 고모 신랑감 좀 물색해 와요."
내가 아무리 졸라도 남편도 시큰둥이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3일동안 단식을 하기로 했다.
단식 기도 제목은 단순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신실하고 충성된 종을
우리 고모의 신랑으로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단식 첫 날. 남편이 무슨 맘이 들었는지 시누이 사진 중에
가장 예쁘고 잘 나온 것으로 두 장을 달라고 한다.
단식 둘째날. 남편이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여보! 신랑감이 나타났으니
우리 순이 미장원도 보내고
좋은 옷도 한 벌 사 입혀."
"예~ 알았어요."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유명 의류점에 가서
고모에게 멋진 옷을 사 입혔다.
저녁에 우리집에 남편과 함께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그 청년은 다 낡은 신발에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나님! 우리 서로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 청년은 비록 외모는 호화롭게 치장되지 않았지만,
꼭 살아있는 예수님 같아 보였다.
우리는 그 청년에게 저녁을 융숭히 대접했다.
청년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남편은 "만일 동생이 마음에 들면
내일 그 청년이 전화를 할 것 이야."라고 한다.
그 이튿 날. 단식 3일째 날.
나는 전화기 옆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저녁 때가 되자 시누이는 나에게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고 화를 낸다.
잘못 오는 전화도 한 통 없이 그 하루가 다 가고 말았다.
시누이의 신경이 날카로와졌다.
나는 그 청년에게 전화를 했다.
"저~ 엊그제는 제대로 음식을 마련치 못해서 대접이 소홀했어요.
그래서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우리 고모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우리 고모가 왜 싫은지 뭔가 실마리가 나올 것 같았다.
"저~ 사모님! 동생은 제가 맘에 안든다고 하는가 보군요.
제가 마음에 들면 어제 전화 주신다고 해서
하루 종일 전화기 옆에서 꼼짝 못하고 지켰어요."
"그럼 전도사님은 우리 고모가 마음에 드세요?."
"예."
와!
나는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 하였지만
우아하게 내숭을 떨었다.
"그러셨어요. 그럼 고모에게 다시 잘 말해 볼께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엇갈리게 생각하게 해서,
고모에게는 그 청년을, 그 청년에게는 고모를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게 만들어,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한 것이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중매 실력을 누가 당할 것인가?
하나님이 중매 선 것이니 이 결혼은 무조건 성사되는 것이야!
다시 만나게 된 자리에서 나는
결혼 날짜를 결정하게 하라고 남편에게 종용했다.
남편은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사귀어 보고 데이트도 해보고 해야지" 한다.
"여보 안돼요. 그 청년 놓치면 고모는 그런 사람 다시는 못 만나요.
결혼할 마음만 있다고 하면 무조건 결혼시키는 거예요."
결혼할 마음이 있다고 그 청년이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저~ 그런데 사모님! 저는 결혼할 아무 것도 준비되지 못했어요.
결혼은 마음 뿐이고 현재는 할 형편이 아니예요."
전도사님! 결혼 준비가 따로 있나요. 결혼 할 몸이 있으면 됐지요.
전도사님은 아무 걱정 마세요. 내가 다 알아서 준비 할께요."
첫 선을 본 날짜는 6월 4일 이었으니 선 본지 19일 만의 결혼이다.
나는 친정 언니에게 얼마의 빚을 얻어 달라고 해서
바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석계역 근처에 10평짜리 아파트를 얻고 살림 장만을 했다.
결혼식장은 우리 교회에 꾸몄는데,
인천에서 꽃꽂이 사범을 하고 있는 소꼽 친구가
예식장 전체를 꽃으로 장식해 주었다.
결혼식에 필요한 웨딩드레스, 폐백복, 신부 화장도
주님은 오래 전에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통하여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 음식은 우리 교회 여전도회에서
즐거워 하며 기뻐하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풍성히 준비를 했다.
"고모! 그 전도사님이 부자가 아니여서
우리랑 결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 멋진 전도사님에게 돈까지 있어봐.
우리는 쳐다보지도 못해."
"그 사람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서두르면서 야단이야.
내 의견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지?
나를 쫓아 보내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해."
고모는 몹시 마음이 상해 있었다.
"글쎄 나만 믿으라니까.
그 사람은 두고 볼 것도 없어.
나중에 언니 고마워 하게 될 걸."
결혼 준비 기간 19일 중
청년의 학기말 고사 기간이 일주일이 끼어 있었으니
두 사람이 만남은 거의 없었다.
결혼식 일주일전 어렵게 두 사람이 데이트를 나섰다.

나는 두 쑥맥끼리 어떻게 데이트를 하려나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 나간지 1시간도 안 되어,
고모가 얼굴이 토라져서 집으로 되돌아 왔다.
나의 놀라는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이 건널목에서 내 손을 잡잤아!"
그래서 뿌리치고 되돌아 왔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조금 있으려니까 어색하고 쑥스러워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그 청년이 따라 들어 왔다.
"저 사모님! 건널목에서..."
그의 어쩔줄 모르는 변명을 막으며
"손만 잡으니까 화난 거예요.
꽉 끌어 안아 주어야지 화나지 않았을텐데요!
우리 고모가 토라지기도 잘하죠."
걱정이 되어 말하는 나에게 그는 빙그레 웃으며
"저는 토라지는 모습이 예뻐요" 란다.
"이그 벌써 팔불출 다 됐네. 천생 연분이니 걱정도 말자."
이런 웃기는 헤프닝 속에 드디어 결혼식날이 왔다.
그 날 양복을 잘 입은 그 신랑은 우리 모두의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그 준수함이, 그 고결함이 결혼식장 전체에 번져갔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찬양을 부를 때는
결혼 예식에 와 있는 모든 사람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고모는 총신대학 신학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여호와찬양단의 축가를 받았다.
성스러움과 웅장함이 부부로 합쳐지는 아름다운 한 쌍을 축복하였다.
고모는 시집 간지 일주일도 안되서
"언니! 고마워. 이렇게 좋은 남편과 결혼하게 해주어서.
언니! 이 사람은 살아 있는 예수야!." 한다.
주님은 그 때의 그 청년을,
돈이 없는 가난한 전도사로 위장해 놓으셨던 것이다.
가난이라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으로 덮혀 있어서,
그의 준수함도 그의 성실함도...
그의 최고의 가치를 꼭꼭 숨겨 놓았다가,
믿음이 신실한 우리 고모에게 최고의 선물로 주신 것이다.
지금 이들 부부는 서울 중앙 교회에서
충성되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고모는 얼굴이 뛰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몸매가 늘씬 한 것도 아니고, 탐나는 것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그토록 훌륭한 목사님 부인이 되고,
호강하고 존귀함을 받으며 사는 걸까요?
"모르는 말씀 마세요. 우리 고모의 믿음은 이 세상 여인 중 최고예요"
고모는 생활이 어려워도 목회자의 삶에서 단 1분도 이탈하는 일 없이충실하게 주의 종의 길에 서 있다. 청운동 낡은 빈민 아파트가 부교역자의 사택으로 주어질 때는, 자신들의 신혼집이었던 아파트 보증금을 다 교회에 헌금하고 들어 간 것이다. 주님이 집을 주셨는데, 살고 있는 집값은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신앙이었다.
지금은 서울 중앙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충실하고 성결하게 일하고 있다.
주님은 믿음이 신실한 우리 고모를 위해,
주님이 감추어 놓은 이 세상 최고의 보석을 발견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 보석을 발견하고, 혹시 누가 그 보석을 캐내어 갈까봐,
마음 졸이며 아주 빠르게 뛰어 다녔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보석은 날이 갈수록 더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