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612/200612010440.html
다산 정약용의 학문이 위대하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밝혔다. 다산은 18년 유배기간 동안 경학(經學)과 예학(禮學), 역사와 교육, 정치와 행정, 과학과 의학, 건축과 토목, 문학과 지리 등에 걸쳐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한 사람이 베껴 쓰기만 해도 10년은 족히 걸리는 방대한 분량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정민 한양대 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은 그 비밀에 대한 해답이다. 정 교수는 다산의 ‘지식경영법’을 50가지로 분류했다. 모두 다산이 쓴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 “파 껍질을 벗겨내듯 문제를 드러내라”(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모아서 나누고 분류하여 모아라”(휘분류취법·彙分類聚法),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하라”(수사차록법·隨思箚錄法) 등이다.
“그동안 다산의 작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 가능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없었어요. 다산은 먼저 목차를 정하고, 관련 자료를 섭렵하여 카드 작업을 통해 분류한 뒤 각 목차에 해당하는 곳에 재배열해서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산은 ‘목민심서’를 쓸 때 우선 ‘부임(赴任)’부터 ‘해관(解官)’까지 12편으로 목차를 나눴다. 그리고 각 목차에 6개 항목을 두어 모두 72개 조목을 정한 뒤, 사료를 모두 섭렵하여 카드를 작성하고 각 목차에 해당하는 곳에 이를 배열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 관련 부분이 넘치자 이를 확대해 ‘흠흠신서’를 지었고, 국가의 체제 부분을 따로 모아 ‘경세유표’를 썼다. 정민 교수는 여기에서 다산의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을 끌어낸다. “물고기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리면 버리겠느냐?”고 다산이 아들에게 쓴 편지 글에서 빌려온 말이다. 다산은 사료를 읽다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친 어망에 뜻하지 않게 ‘기러기’가 걸리면 이를 다른 책을 저술하는데 이용하는 방식으로 7~8가지 책을 동시에 집필할 수 있었다. 정 교수는 이번 책을 쓰는데 다산의 방식을 따랐다고 한다. 지난 1년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먼저 목차를 구성하고 다산의 글에서 자료를 가려 뽑아 목차에 나누어 배치하여 책을 완성했다. 하지만 과연 200년 전 다산의 ‘지식경영법’이 현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정교수는 “유효하고 유효하다”고 답했다.
“넘치는 정보 중 진짜와 가짜를 판단하여 지식을 편집하는 다산의 방식은 오늘날 기업과 경영자들에게도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미쳐야 미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등 인문교양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 교수는 최근 불거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문화 콘텐츠에 목말라 하는 시대는 없었다”며 “오히려 ‘인문학의 기회’가 맞다”고 말했다.
입력 : 2006.12.01 20:37 57'
[BOOK책갈피] 행정가·법학자·건축가 … `멀티플레이어` 다산
[중앙일보]
그 비결은 동시다발 공부법
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어 말하자면 이 책은 '지식을 경영하는 법'에 관한 것이지, '지식을 경영에 활용하는 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 경영학의 새 흐름으로 등장한 '지식경영'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조선 후기 활약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정보관리.활용법에 관한 내용을 다뤘으니 당연하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지음, 김영사, 612쪽, 2만5000원
다산은 알다시피 실학자란 좁을 틀로 규정하기 힘든 큰 인물이다. 주자의 경전해석에 시비를 따진 경학자(經學者) 였음은 기본이다. 지방 행정관의 행동지침을 정리한 '목민심서'를 펴낸 행정가요, 조선의 형률을 정리한 '흠흠신서'를 엮은 법학자이면서, 수원 화성을 설계한 건축가, 기중기와 배다리(舟橋)를 제작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 뿐인가. 지리학, 역사학에도 뚜렷한 학문적 업적을 냈고 천연두 치료법을 다룬 '마과회통'을 썼으니 의학자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활약한 다산은 방대한 저작으로도 우리 역사상 으뜸이다.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중 '논어고금주' 등 경전에 관한 책 232권, '경세유표' 등 문집 260여 권을 썼다. 일년에 18권꼴의 저술이고 한 사람이 베껴쓰기만 해도 10년이 넘게 걸릴 분량이다.
이러니 후대에 다산 혹은 다산의 학문에 관한 책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양대 국문과 교수인 지은이는 다산이 언제나 7, 8 가지 이상의 저술작업을 병행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그의 학문세계보다 연구방법에 주목했다. 그렇게 '무엇을'보다 '어떻게'에 주목한 덕분에 다산의 동시다발적 연구작업의 비결을 갈래지어 설명한 것이 이 책이다.
다산의 연구방법론을 '단계별로 학습하라''정보를 조직하라' 등 10개의 큰 줄기로 나누고, 줄기마다 '부분을 들어 전체를 장악하라-거일반삼법(擧一反三法)' 등 다섯 가지의 방법론을 붙이고, 방법론마다 '문제를 파악하라''공부와 삶을 일치시켜라' 등 네 개의 소제목을 들어 설명했다. 그리고 각 비결은 다산의 글 중 적절한 것을 예로 들어 교훈을 이끌어내는 체제를 취했다.
예컨대'권위를 딛고 서라'편의 일반지도법(一反至道法.발상을 뒤집어 깨달음에 도달하라) 중 '타성을 걷어내라'를 보면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참뜻을 궁구하는 내용이 나온다. 시경(詩經)을 파고들어 명철보신의 참뜻이 어진 인사와 뛰어난 인재가 내 몸을 붙들고, 내 몸을 붙들어서 한 사람 임금을 섬기는 것이 대신의 직분이라는 뜻임을 밝힌 다산의 편지를 인용한 뒤'현명하게 처신해서 제 한 몸을 보전한다'는 뜻으로 잘못 쓰이는 현실에 도전한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지은이는 다산이 "정보를 필요에 따라 수집하고 배열해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시킬 줄 알았던 지식경영가"라며 그의 방법론이 오늘날에도 유용하다고 본다. 그러나 책에 실린 연구비결 200개는 대체로 비슷하고 추상적이어서 점수를 올리거나 학위논문을 쓰는 데 즉효를 기대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다산의 글을 종횡무진 인용해 이토록 읽는 맛이 뛰어나고 교훈적 주제의 에세이를 엮어내는 데는 다산의 방법이 유효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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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지음
오자성어로 본 정약용 공부법 |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면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는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을 써보라.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연쇄적으로 가르치는 학습법. 이를테면 맑을 청(淸)자로 흐릴 탁(濁)자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지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펴냄)은 다산 정약용의 치학(治學)전략, 즉 공부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18년의 유배생활 중 500여권의 저서를 낸 한국 지성사의 불가사의. 저자는 다산을 우리 역사의 전무후무한 지식편집자, 전방위적 지식경영인으로 규정한다.
이 책은 다산의 공부법을 다섯 글자의 핵심적인 한자성어로 정리해 눈길을 끈다.
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파 껍질을 벗겨내듯 문제를 드러내라),
공심공안법(公心公眼法, 선입견을 배제하고 주장을 펼쳐라),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 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속중득운법(俗中得韻法, 속된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라),
간난불최법(艱難不法, 좌절과 역경에도 근본을 잊지 말라)
등이 그것이다.
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서울신문]
기사일자 : 2006-12-02 13 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