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도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의 주요 배경은 중세 이탈리아 수도원의 장서관(藏書館)이다. 에코가 보여주는 장서관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은 미궁이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이런 장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번역하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세속의 이익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그림 21점을 반환한 독일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수도원 역시 문화재의 보고로 꼽히고 있다. 보관 중인 문화재 목록을 발표한 적은 없지만 여러 차례 희귀 자료를 외부에 공개했다. 1990년대 정선의 그림이 국제미술상들에게 알려진 이래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눈독을 들였고, 가상 경매가가 5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수도원의 문화재 기증은 이집트 남부 시나이산(시내산) 기슭에 있는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이 수도원은 양치기 시절의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로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았던 곳이라 하여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세운 작은 교회당이 모태가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찾는 수도원이지만 과거 1500년 동안 찾아온 사람이 1만 명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은수사(隱修士)들의 기도처였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하는 시나이 산에 오르는 순례자들의 입산허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수도원의 가장 큰 자산은 바티칸 성서 사본 다음으로 중요도가 높다는 종교적 필사본들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현존하는 성경 중 최고본인 시나이 판본(Godex Sinaiticus). 4세기 경 그리스어로 쓰여진 총 730장의 성경이다. 1400년 동안 보관됐던 이 필사본은 1844년 독일 학자 콘스탄틴 티센도르프가 베껴 쓰겠다며 석장을 빌려갔고,그후 15년에 걸쳐 네번을 방문한 끝에 1859년 원본을 모두 유럽으로 가지고 가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 수도원에는 ‘임대형식으로 가져간다’는 티센도르프의 편지 한 장이 남아있다. 시나이 판본은 러시아 알렉산더 2세의 손에 넘어갔다가 1933년 돈이 급해진 스탈린이 10만 파운드를 받고 영국에 팔아넘긴 후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겸재 화첩을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는 오틸리엔 수도원의 예레미아스 슈뢰더 원장의 말이 크게 울린다.
임순만 논설위원 soon@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