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와 셀류코스제국 | |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애굽이 로마제국의 한 지방으로 편입(BC 30년)되기까지 로마 지배하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
셀류코스 1세 안티오쿠스 1세 안티오쿠스 2세 셀류코스 2세
셀류코스 4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안티오쿠스 5세 데메트리우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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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 3세의 야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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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부터 강요된 중재로 인해, 시리아와의 조약을 맺은 이집트의 조약내용은 이러하였다.
"로마가 요구한 데로 정복한 지역들을 내주는 대신, 자기의 딸 클레오파트라 1세를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 결혼시킨다." 안티오코스 3세는 명의상으로만 양도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유대를 비롯한 몇몇 속주를 신부 지참금으로 내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클레오파트라 1세(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아님)를 정략결혼으로 자신의 심복을 세우려 했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5세에게 넘어가 아버지의 의도대로 되진 않았다. 그것을 알려주는 단적인 예가, 기원전 191년에 벌어진 그리스와 로마간의 전쟁인것이다. 아버지인 안티오코스 3세가 당했을 때도,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따라 로마의 편에 섰던 것이다. 로마와 대립을 하게 된 문제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간의 전쟁을 들 수 있다. 기원전 197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는 그리스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 아니, 자신을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란 생각을 품었던 것이 맞을 듯하다. 그리하여 그리스를 공략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쪽에서는 이미 강국이었던 마케도니아를 막을 힘이 없었고, 대신 상대해줄 나라였던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게된다. 로마측에서는 그리스 문화에 대한 애착때문에 나서게 되었고, 마케도니아 또한 그리스의 한 국가였기때문에, 아니 알렉산더대왕이 살아서 제국을 통치한 메카였기 때문에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 중부에 살면서 마케도니아 왕국과 북쪽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아이톨리아인은, 기원전 197년에 마케도니아와 강화를 맺을 당시부터 불만이 높았다. 그들은 로마가 마케도니아를 고스란히 놓아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것 같다. 그것은 로마군에 참가하여, 함께 싸운 자기들에 대한 로마의 배신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마케도니아를 당해낼수 없었기때문에, 시리아에 군사요청을 하게된다. 안티오코스 3세도, 마케도니아 세력이 쇠퇴한 지금이야말로 오랜 경쟁자인 마케도니아를 공격하고, 그리스에 자국의 세력을 진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동료의 힘이 약해지자 마자 당장 그 기회를 이용하는 것은 헬레니즘 국가들이 늘 써먹는 방식이었던데다, 이무렵 시리아에는 한니발이 있었다. 기원전 202년 자마회전에서 패해 도망을 나온 한니발을 기쁘게 받아준 나라가 시리아였던 것이다. 한니발과 안티오코스 3세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마케도니아및 그리스에대한 공략과 전략을 계획하게 된다. 한니발에게 100척의 군선과 1만보병 및 1천기병을 제공하여 이탈리아 반도를 목표로 공략키로 하고, 안티오코스는 그리스 및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을 공략할 것을 계획한다. 또한 한니발은, 자신의 나라였던 카르타고와의 외교를 통해, 지원 요청까지 하였다. 안티오코스 3세는 6만에 이르는 병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문제가 한니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전에 얻은 젊은 왕비로 인하여, 긴급성을 깨닫지 못했던 안티오코스는 로마와의 외교를 했던것이다. 로마에서는 이미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다시금 그리스쪽으로 지원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로 해결하려 하였던 것이다. 로마에서는 3명의 원로원을 파견하게 돼는데, 그중의 한명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였다. 시리아와 로마간의 대면은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페수스에서 이루어졌다. 시리아측의 한니발과 로마측의 스키피오의 대면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스키피오는, 한니발에게 '누가 최고의 장수인가'를 물어봤다고 한다. 어쨌건 두나라의 외교전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을 맺게 되었다. 때는 기원전 191년, 시리아군대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191년, 그리스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안티오코스 3세는 그리스로 가게 되었다. 그리스에서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려는 시리아 왕의 시도를 불쾌하게 여긴 로마는, 그에게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리하여 로마와 시리아간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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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몰락의 징조 마그네시아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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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의 마지막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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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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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베오 전쟁(하스몬 왕조의 성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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