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예루살렘(종합)

예루살렘 성지-성화사랑

영국신사77 2006. 8. 5. 12:52

 

                        예루살렘 성지
                                                           출처 블로그 > 성화사랑
                                                           원본 http://blog.naver.com/bss2079/60013519721

 

 

                             1. 시  온  산

 

   시온산은 예루살렘 서쪽 산등성이로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해 있다 힌놈계곡에 의해 서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 계곡에 의해서 삼면이 경사를 이루고 있는 해발 765m의 등성이 산지이다.

 

   성경에 의하면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이곳 시온산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성경에 언급된 처음 시온산은 모리아산의 성전산을 의미했다. 오늘날의 시온산은 구약시대에 부르던 곳과는 다른 곳에 있다. 왜 현재의 장소가 시온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후 4세기경에 지형학적인 실수로 인해 현재까지 시온산으로 불려지고 있는 듯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의해서 잘못된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2000년 가까이 시온산이라고 불러 왔기에, 지금도 유대인은 물론, 회교도와 기독교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다.

 

   시온산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예루살렘과 성지 전체를 대표하는 시적인 이름으로 쓰여 왔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온산은 그들의 정신적인 고향이요,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온주의의 “시온으로”라고 하는 것은 이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킬 수 있는 표어가 되어왔다.

 

   1267년 람반(Ramban)이 시온산에 회당을 세움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의 유대인 공동체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근거는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다윗무덤이 이곳에 생겼고, 유대인들의 다윗무덤 순례는 12세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주후 15세기에 기독교인들은, 다윗무덤 윗층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이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시온산에서 추방되었고, 건물은 회교도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시온산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방문을 위해 시온산으로 오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교황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시온산 지역에는 마가의 다락방, 마리아 무덤 교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베드로 통곡 교회 등이 있다 .

 

 

 

 

 

 

 


 

                                            2.. 마가의 다락방

 

   시나클룸(Cenaculum, 식당)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곳이며, 성만찬식의 기원이 된 곳이다. (막 14:12-16, 눅 22:7-13). 같은 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행 2:4-1).

 

   초대 기독교인들은 본부를 시온산으로 삼았고, 1세기에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는 군사작전 지역의 바깥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주후 70년과 135년의 파괴 위기를 면하였다.

 

   비잔틴들에 의해 교회는 확대되었고, 이사야의 예언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와 관련지어  성 시온 이라 일컸는 이름의 유래가 된 것 같다.

 

   614년에 페르시아군이 교회를 파괴한 것을,   십자군들이 12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1176년에 다윗 왕의 무덤이 아래 층에 모셔지고, 윗 층은 회교도가 뽀족탑과 기도 장소를 간단히 세워, 회교 사원으로 변형시켰다.

 

 

 

 

 

 

 

                         3. 다윗의 무덤

 

   이 곳은 이스라엘에서 서쪽 벽 다음으로 최고 성지 중의 하나이다.

 

   1172년에 투델라의 랍비 벤자민이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 이 묘를 모시었다. 묘는 돌로 되었고, 아름다운 수를 놓은 천으로 씌어져 있으며, 아름다운 은관에 보관된 유대교의 성경 토라로 치장되어 있다.

 

 

 

 

 

 


 

         4. 감람산과 겟세마네 교회(만국교회)

 

   예수님의 고뇌와 기도의 성소로 된 이곳에 비잔틴들이 379년에 예배당을 지었다. 이 예배당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제일 먼저 파괴된 교회중의 하나이다. 12세기의 십자군들이 교회를 재건한 후, 다시 파괴 되었다. 현재의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하나로서 1919~24년에 완성되었고 16개 국가가 헌금을 모아 지었기 때문에 만국교회라 불리 운다.

 

   교회의 천정에 그 여러 나라의 표지가 새겨져 있다. 교회 안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보라색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어두운 빛과 내부장식은 조용한 기도 시간을 갖는데 적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 중앙에는 예수께서 고뇌했다는 바위가 놓여져 있다.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바닥의 일부분이 발견되었다. 새 모자이크는 원래의 것의 복사이다.

 

   정면에는 네 명의 상이 각각 글귀가 새겨진 책을 들고 서 있다. 벽에는 예수의 고뇌와 세상의 고통을 하나님께 바치는 정교한 모자이크가 있다.

 

 

 

 

 

                           (1).  겟세마네 동산

 

   올리브산 아래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은 성지에서 가장 감동 깊은 장소 중의 하나이다. 현재에도 이 동산은 20세기 전처럼 보여진다. 기드론 골짜기의 반대편에 위치하며 예수 당시 때처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곳의 올리브 나무들은 아마도 그때의 것인지도 모른다. 세례 요한은 이곳을 기드론 시내 근처의 동산이라 했다. 예수께서 즐겨 찾으셨던 곳이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이르러 (눅 22:39). 이곳이 바로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를 순종하는 그의 생애의 최대의 간곡한 시간이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 22:42)"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의 하인들과 와서 그의 선생을 배반하였다.(마 26:7, 막 14:44, 눅 22:47, 요 18:2). 모든 제자들은 도망가고 예수님은 홀로 남아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슥 13:7)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예수는 체포되고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 그 다음날 십자가의 형을 선고 받았다.

 

   겟세마네 동산에는 8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는데, 그들의 나이는 확실치 않다. 몇몇 식물학자들은 올리브 나무들이 약 3000년 됐다고 주장한다. 요세푸스는 디도 장군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파괴하면서 모든 나무들도 함께 없앴다고 서술하고 있다. 만약, 이 나무들이 그 때의 파괴를 살아 남았으면 예수 당시의 나무인 것은 분명하다. 아니면, 예수께서 고뇌의 밤을 기도로 보내셨을 때의 나무들의 새싹임이 분명하다.   올리브나무는 죽지 않는다(Pliny).  아직도 이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있다.

 


   

                            만  국  교  회

 

 

 

 

 

 


 

                         5. 베  데  스  다  못

 

  예루살렘 동북 편에 위치한 양문(洋門) 곁에 있던 못(요 5:2)으로, 이곳에서 예수께서 38년 동안 앓아오던 중풍병자를 낫게 해주셨다(요 5:8~9).

 

   오늘날의 베데스다는 1914년에 발견한 성 엔느 교회(St. Anne's Church) 안에 있는 못으로 밝혀졌다[출처:아가페 성경사전].

 

 

 

 

 

 


                         

                                  6.  실로암 못

 

   이 못은 히스기야 왕이 지었는데, 기혼샘으로부터 물을 받는 물 저장소이다. 이 못은 기독교인 들에게는 성지인데, 예수께서 소경에게 눈을 바른 진흙을 씻으라고 한 장소이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7)."  

 

   5세기에 실로암 못 위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 된 후 현재까지 재건되지 않았다.

 

 

-----------------------------------------------------------------

                          실로암 못 
http://blog.naver.com/acasia/10181056


 

 

실로암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원지인 기혼샘으로부터 520m의 물줄기에 이르는

실로암 못은

앗시리아의 포위 공격에 대비해 지하에 판 수로 끝에 있다.

 

 

기혼샘에서부터 실로암 못까지는 직선거리로 315 m에 불과한데,

왜 적이 쳐들어 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당시 유대인들은 구불구불하게

525 m나 되는 긴 터널을 팠을까 하는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터널의 지상 부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유대 왕들의 무덤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지만, 1978년부터 다윗성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을

시도한 후 지질학자인 단 길(Dan Gill)은, 조사 끝에 이 터널지역이 원래

4만년 전부터 형성된 바위 틈새로 이어져 있었음을 밝혀냈다.

 

즉 히스기야의 공병대원들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기존의 바위 틈새를 따라 팠기 때문에,

구불거리는 수로를 따라간 것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실로암은 요한복음 9:7절에도 나오는 유명한 곳으로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

 

 

 

 

 

 

 

 


 

                           7. 감람산 예수님 승천교회

 

 


 

     승천교회 내 승천시 발자국

 

 

   사도행전 1:9-12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올리브산 위에 가셔서 축복을 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올리브산 정상은 승천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사도행전에, 제자들은 에루살렘을 떠나 안식일 여행을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안식일 여행은 약 900m에 한정하는데, 이 거리가 승천 장소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이기도 하다.  

 

   4세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2세기에 십자군들이 또 교회를 세웠다.

 

   현재의 예배당은 십자군 때의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승천 당시 발자국이

남아있는 바위가 안에 보존되어 있다.

 

   후에 모슬렘들이 바깥에 벽을 쌓고, 현재의 둥근 모양의 지붕을 만들었다.

 

 

 

 

 

 

 


 

                   8. 통곡의 벽

 

 


 

                                       통곡의 벽(2)

 

 


 

                                  통곡의 벽(3)

 

 

   유대교의 최고 성지이다. 제2성전의 마지막 유적이기 때문이다.

 

   서쪽 벽은 헤롯 대왕이 주전 20년 경에 지은 성벽의 일부분이다. 디도 장군은 주후 70년에 성전을 파괴한 후, 이 벽만 남기어 후세에게 로마군의 위력을 과시하려 했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한번씩 허락되어, 와서 성전 파괴와 방랑하는 유대민족을 위해 통곡하였으므로, 통곡의 벽이라 일컫는다.

 

   성전 벽에서 기도하는 전통은 수 세기를 이어왔다. 1948~1967년에는 서쪽 벽이 요르단 국가에 속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방문은 불가능 했었다.  

 

   그러나 6일 전쟁 후, 통곡의 벽은 예배와 함께 전 민족의 기쁨의 장소가 되었다. 큰 뜰이 건설되어 수천명의 순례 객을 수용할 수 있기도 하다

 

 

 

 

 


 

         9.  막달라 마리아 교회

 

   지붕이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모습이 이채롭다. 지붕이 금색이다. 이곳은 실제 러시아 황제의 어머니 마리아가 뭍혀 있고 막달라 마리아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10.   주기도문 교회

 


                                주기도문 교회

 

   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고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고 또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말씀하셨던 장소이다. (마 24:1-3, 눅 21:5-7). 아름다운 건물로써 베들레헴의 예수의 탄생장소와 예루살렘의 예수 무덤을 기념했던 콘스탄틴 황제는 이 올리브산 정상에 예수님의 예언과 재림에 관한 말씀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회를 지었다. 그러나 614년에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십자군에 의해 12세기에 재건 되었다. 십자군의 패배 후 교회는 다시 파괴되고 모슬렘들에게 점령되었다. 1868년에 Aureliade Bossi de la Tourd Auvergne 공주가 이 장소를 사고 프랑스에 기증을 했다. 1875년 공주는 갈멜(Garmel)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을 지었다. 교회의 복도 벽에는 78개국의 언어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공주는 이곳에 묻혀있다. 1910~1911년 초대 교회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한글 주기도문

 

 

 

 

 

 


 

                       11. 벳바게(Bethpage)

 

 

 

 

 

 

 

 

 

 

 

 

 

 

 

 

 

 

 

 

 

                                 벳바게교회

 

   승천교회와 주기도문교회 중간의 길로  내려가면 벳바게 교회가 나온다

 


                             벳바게 교회 성화

 

   벳바게란 말은 ''무화과나무의 집'' 또는 ‘무화과나무의 밭’이란 뜻을 갖고 있다. 현재 벳버게는 감람산 정상에서 동쪽 베다니쪽으로 10분 정도 걷게 되면 닿을 수 있다. 베바게에는 4세기와 십자군 시대 때에 교회가 있었고, 현재의 교회는 1883년 프란치스카 교회에서 건축한 것이다. 이곳 벳바게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출발하신 장소이며, 또한 나사로가 죽은 베다니로 가실 때 마르다와 마리아가 마중나왔던 곳이다.

 

   예루살렘과 베다니의 중간인 이곳 벳파게 교회는  순례객들이 비교적 없어 아주 한산해 보이며, 교회문도 늘 잠겨 있다. 방문코자 할 때는 문 주위에 있는 종이나 벨을 울리면 문을 열어준다.

 

   아랍인 지역에 있고 담에는 낙서가 있어 지저분하고 문도 잠겨 있어 애써서 찾아 온것에 비해 다소 실망하지만 일단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벽에 나사로의 부활 모습, 예수님의 입성모습, 그리고 입성행렬의 그림은 다소 흥분이 된다.

 

   교회안 제단 옆에 크기가 1m정도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실 때 딛었던 바위라고 한다. 현재에도 종려주일이면 경찰들의 호위와 보호를 받으며 수천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종려주일 행진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이 행진은 일찍이 4세기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전통이다.

 

 

 

 

 

 

 



                   12.  베다니(Bethany)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을 넘어 감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에 가는 길은 감람산을 넘어 벳파게를 지나 IKm정도 걸어 내려가든지, 아니면 아랍인 버스정류장에서 43번 버스를 타고 감람산 남쪽을 돌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재 베다니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1948년 이후에 정착한 아랍사람들이며 대부분이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베다니는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 건너편 지역으로써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한 곳이며(요1:28), 특히 예수님께 사랑받던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고향으로서 이곳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43-44). 나사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생긴 마을로서 아랍어로는 ''엘 아자리에'' (el-Azariye)라고불리고 있다. 이는 곧 ‘나사로의 고향’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라자리온’과 흡사한 호칭이라 하겠다. 베다니에는 다음과 같은 성지가 있다.

 


                              베다니 만찬 집

 

 

 

 

 

 

 


 

13. 베다니 나사로교회(Franciscan Church of St. Lazarus)

 

   나사로의 무덤을 나와 밑으로 20m정도를 내려가면 은색 둥근 지붕의 프란치스카 교회가 있다. 주후 4세기와 6세기에 있었으며 이때의 유적이 교회 뜰과 교회안의 모자이크 바닥에서 볼 수 있다.

 

   이 교회는 1954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발루지(Barluzzi)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발루지는 이외에도 많은 교회를 성지에 건축한 유명한 건축가이다. 교회의 전체구조는 가운데 둥근 지붕을 중심으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교회 앞 정면에는 장식된 모자이크가 있고 좌측에 종탑이 있다. 둥근 지붕 안에는 비둘기를 모자이크한 48개의 금도금한 접시가 장식되어 있다.

 

   교회 안에는 북쪽과 남쪽에 두개의 제단이 있는데, 관의 모양을 한 돌에는 나사로의 죽음과 부찰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윗벽에는 무덤에서 나오는 나사로의 모습,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의 발 아래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여자의 장면이 네벽에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교회앞 뜰에는 1964년에 이곳을 방문한 교황 피우스 6세(Pope Pius VI)을 기념해서 동상이 있다. 교회를 나와서 다시 나사로 무덤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좌측에 1965년에 십자군 시대의 교회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소속 나사로 교회가 있고 골목을 끼고 맞은편에는 교회와 고아원이 있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우뚝 솟은 십자군 시대의 탑이 있다.

 

 

 

 

 

 

 


  

                           14. 나사로 기념교회

 

   나사로의 무덤위에 두 교회가 서 있다. 첫번째 교회는 지진으로 무너지고 두 번째 교회는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2세기에 십자군들이 세 번째 교회를 세웠다. 라틴 왕국의 멸망 후 모슬렘들이 이 성소를 차지하였다. 19세기에 와서 겨우 프란치스칸들이 장소를 살 수가 있었다. 1949년에 오래된 집들을 재건한 후 4세기 때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십자군 교회의 버팀벽을 앞마당에서 볼 수 있다. 현재의 교회는 1952년 전 교회의 기초 위에 지어졌다.

 

 

 

 

 

 

 


 

      15. 나사로 무덤(St. lazarus Tomb)

 

   나사로가 묻혔던 무덤을 중심으로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비잔틴 시대였다. 그러나 4세기 말엽에 지진으로 무너졌고 십자군 때 세워졌던 교회 역시 1187년 살라딘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고 14세기경에는 이 자리에 회교사원이 들어섰다.

 

   그 후 회교인들과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 간에 잦은 마찰로 인해 16세기경 프란치스카 교회에서 현재의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마치지붕을 뚫듯이 무덤위에 두껍게 덮여있는 바위를 파내어 만든 통로이다. 좁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옆에 부착된 손잡이를 잡고 27개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더라도 시신을 눕혔던 자리는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소나마 내려다 볼 수 있게 윗쪽에 조그마한 창구를 만들어 놓았다. 또한 밑에 포복자세를 해야 만이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입구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체구가 작아야만 가능하다.

 

   무덤 바로 옆에 회교사원과 첨탑이 있다  원래의 입구는 교회와 무덤 사이에 지은 회교 사원으로 인해 막혔다. 17세기는 프란치스칸들이 현재의 입구를 만들기 위한 허가를 받았다.

 


  

                    나사로 무덤내부

 

 

 

 

 

 

 


                           

                       16. 왕들의 무덤  골짜기


   예루살렘성은 유다의 해발 760m의 돌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성 서쪽과 남쪽으로는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며, 동쪽은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올리브산과 갈라져 있다. 기드론 골짜기 상류에 왕들의 무덤이 있어 왕들의 무덤 골짜기로도 불린다. 전면의 돌무덤은 스가랴 예언자의 것이며, 뒤쪽은 아랍인 공동묘지이다. 예루살렘 성벽을 둘러싸고 많은 무덤이 있는 것은 [최후의 날]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 육신과 함께 부활하겠다는 신앙심 때문이다.

 

 

 

 

 

 

 


 

                    17. 힌놈의 골짜기

 

   기드론 계곡은 올리브산과 예루살렘 시를 분리한다. 이 계곡을 예수께서 여러 번 지나다니신 곳이다. 미문을 통해 성전에 올라가실 때 겟세마네 동산이나 나사로의 집 베다니에서 밤을 새우실 때 올리브산을 오르기 위하여 이 계곡을 건너셨다. 목요일 밤에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로 가시기 위하여 이 계곡을 제자들과 함께 건너셨다. 기드론 계곡에는 네 개의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압살롬, 여호사밧, 야고보, 스가랴의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기드론 계곡에서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기드론 계곡에는 예부터 유대인, 모슬렘, 기독교인들의 큰 묘지가 형성되어 있다.

 

 

 

 

 

 

 


 

                   18. 기드론 골짜기

 

   '여호사밧의 골짜기' 라고도 하는데,기드론 골짜기는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성경에는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10분정도면 이곳에 다다를 수 있고 여기서 감람산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19. 기혼샘(히스기야 터널)

 


                          히스기야 터널 조감도

 

   기혼샘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샘으로 예루살렘에 있어서 중요한 물의 원천으로 오늘날은 '처녀의 샘' 이라고 불린다. 기혼(Gihon)이라고 하는 히브리 명칭은 원래 이 샘이 한 자연동굴로부터 매일 2-5회 정도 분출되는 간헐천이라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할 당시 그곳에 살고 있던 여부스족들이 지하에 만들어둔 수구 즉 기혼샘물을 끌어오는 도랑을 통해 침투하여 성을 정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삼하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