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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많은 도시 가운데 종교적으로 가장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곳은 예루살렘이다.
역사적으로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었다.그래서 15∼16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보면, 으레 지구의 중심에 예루살렘을 그려놓았다.오늘날도 전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지상의 어느 곳보다 가장 거룩하고 특별한 곳으로 생각한다.19억이 넘는 기독교인들, 12억에 달하는 모슬렘(이슬람교 교도)들, 그리고 16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한결같이 예루살렘을 그들 종교에 있어서 성도(聖都) 중의 특별한 성도로 여긴다.
주전 6세기초 당시 세계를 제패했던 바빌로니아 제국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1년반에 걸친 포위 공격 끝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정복자들은 불을 질러 예루살렘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다.이렇게 해서 400년동안 계속되었던 유다왕국은 막을 내렸다(주전 587년께).
이렇게 유다왕국이 몰락하는 와중에, 예루살렘은 초토화되는 비운을 맞았다.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전개될 예루살렘의 기나긴 수난의 역사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후 예루살렘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제국들과 군왕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되었다.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희랍, 로마, 비잔틴, 이슬람, 십자군, 마멜루크, 오스만 튀르크, 영국 등 세계를 주름잡던 세력들은 예루살렘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되었고, 그들의 족적은 지금도 예루살렘 도처에 남아 있다.
예루살렘이 역사적으로 복잡한 과거를 지나온 것처럼, 지리적으로도 그리 단순한 곳이 아니다. 우선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크게 동쪽과 서쪽지역으로 나누어진다.즉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이다. 면적으로는 동예루살렘이 약 70㎢이며, 서예루살렘은 이보다 작은 45㎢ 정도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과 함께 일어났던 1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 동예루살렘은 아랍 사람들이,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관할하는 구역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동예루살렘은 소위 ‘요단강 서안지역’(West Bank)의 일부가 되었고,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국토에 속하게 된 것이다.이렇게 예루살렘은 동서로 확연히 분할되고, 서로 왕래조차 금지된 상태가 1967년까지 계속되었다.
동과 서로 구분된 예루살렘에는, 제3의 구역이 되는 ‘구 예루살렘’(Old Jerusalem)이 있다. 구 예루살렘이야말로 예루살렘 전체에서 그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 오랜 역사의 묵은 때가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다.구 예루살렘은 높이가 14m에 달하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도(古都) 예루살렘의 풍모를 엿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벽은 30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예루살렘으로서는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이 성벽은 지금으로부터 약 460년전이 되는 1540년, 오스만튀르크의 술레이만 황제 때 축성된 것으로, 성의 총 길이는 4㎞ 정도이다.성벽으로 둘러싸인 구 예루살렘의 면적은 1㎢밖에 되지 않아, 오늘날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그러나 이곳이 바로 구약시대 다윗 왕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정했던 역사적 예루살렘으로, 그후 파란만장한 역사가 펼쳐졌던 역사의 무대이다.
20개월전 지금은 이스라엘 총리가 된 샤론의 방문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성전산도 구 예루살렘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구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동예루살렘에 속해 있어, 오늘날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지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왜 예루살렘이 오늘날 중동문제 태풍의 핵이 되는지를 살펴보겠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1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했다.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분리되어 있어, 이스라엘의 주권은 서예루살렘 지역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염원은 동서 예루살렘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1967년 ‘6일전쟁’(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스라엘측의 제일 목표는 동예루살렘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6일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났고, 이스라엘측은 즉시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토에 합병한다고 선언했다.그리고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 동예루살렘에 ‘길로’‘라못’과 같은 대규모 단위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동예루살렘에 들어가 살게 했다.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점령한 지역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갈등의 요인이 되었고, 결국 1980년 유엔 총회는 이스라엘에 대해, 6일전쟁에서 점령한 지역으로부터 모두 철수하라고 결의했다.이 유엔결의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기하고 그곳으로부터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즉각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스라엘 의회는 즉각 동서 예루살렘을 합한 전체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포했다.이러한 이스라엘측의 입장은 지금도 변함없이 고수되고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인들의 꿈은 그들의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요, 나아가 앞으로 수립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는 동예루살렘이라고 확정해놓고 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입장도 확고부동하다.
예루살렘 문제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화합과 평화공존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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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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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로그 : _-_꼴까닥님의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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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에 있다. 예루살렘이란 '평화의 도시'란 뜻이고, 이스라엘 왕국을 연 다윗 왕의 후예인 유태인들은 해발 800m 구릉 위의 고도 예루살렘을 일러, '세계의 중심이자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면 심장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들의 아픈 역사가 이 작은 공간 속에 배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통곡의 벽이란 서기 70년 로마군이 유태인들의 거센 항거를 참다못해 그들의 기를 죽이려고 불 질러버린 예루살렘 성전 가운데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벽으로, 유태인들이 이곳을 다시 차지한 뒤로 그 벽에다 머리를 대고 통곡하면서 기도를 올린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황금빛을 발하는 '바위 위의 돔'은 무슬림의 3대 성지이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베푼 곳이 시온 산의 다락방이었고, 로마 관헌에 붙들려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역시 성내의
골고다 언덕이었다. 지금은 그곳에 있는 예수의 빈 무덤을 보려는 사람들로 늘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는'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평화와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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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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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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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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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만 2091명(199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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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아스 수라스키
고고학 정원 / 올드시티의 다비드 타워는 시타델로 정복 역사에 따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예루살렘의 역사 박물관이다. 유대인, 이슬람인, 십자군, 맘루크, 비잔틴 등의 흔적이 혼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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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인구는 62만 2091명(1997)이다. 아라비아인은 이 도시를 쿠드스(신성한 도시)라고 부른다.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야파이다. 동부는 요르단령이며, 서쪽은 1948년부터 이스라엘령이 되었고, 1950년에는 그 수도가 되었다. 1967년 6월 중동전쟁 이후로 유대교도·그리스도교도·이슬람교도가 저마다 성지(聖地)로 받들고 있는 동쪽 지역도 이스라엘의 점령지이다.
사해(死海)로부터 25km,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55km, 높이 790m 가량의 팔레스타인 중앙산맥의 분수령상에 있는데, 지중해성기후와 사막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북위 31°41'에 위치하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고 봄·가을에는 이따금 37℃의 더위를 겪는다.
동(東)예루살렘에는 사적(史蹟)·성적(聖蹟)이 많으며, 통곡의 벽(유대교), 성묘(聖墓)교회(그리스도교), 오마르사원(이슬람교)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호텔·레스토랑·상점 등이 많다.
서(西)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며, 정부 청사와 헤브라이대학·국립박물관·미술관 등이 있다. 또 금속·담배·플라스틱·신발·전기기구 공장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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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BC 3000년대 말경에 에브스(여부스)라는 가나안인(人)의 한 부족이 그 동부에 성시(城市)를 지어 거주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우루살림이라고 불렀는데,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BC 2000년대 중엽부터 이집트의 파라오(王)의 세력하에 들어갔으며, BC 1000년 무렵까지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뒤 헤브라이인이 이곳을 점령하였고, 다윗왕이 에브스인을 쫓아내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다음에는 솔로몬왕이 지금의 아크사 이슬람교사원이 있는 지점에 궁전을 지었고, 그 북쪽, 지금의 바위사원(쿠바트 앗사흐라)이 있는 곳이며 일찍이 다윗이 건립한 이스라엘의 하느님 제단 앞에 야훼의 성전을 건립하였다. 이 무렵에는 주민들도 늘어났고, 도시 둘레에 성벽도 만들었다.
BC 935년 왕국이 이스라엘과 유대로 양분되자 예루살렘은 유대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586년 신(新)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가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으며, 시민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서 BC 538년까지 억류하였다(바빌론의 포로). 그뒤 페르시아 왕 키루스(고레스)가 이들을 석방해 줌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야훼의 성전도 재건하였으나, 옛날의 번영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뒤 여러 차례 파란을 겪은 끝에 BC 63년 폼페이우스가 거느린 로마군이 성벽을 파괴하고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BC 37년부터 헤로데스(헤롯)왕이 이곳을 점령하고 야훼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솔로몬왕 이래의 번영을 되찾았다.
그러나 헬레니즘 문화의 색채가 농후한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무렵(AD 30년 4월)에는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과 매장지가 북서부의 성벽 밖에 있었는데, 10여 년 뒤에는 이 지역을 둘러싼 새 성벽이 만들어졌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70∼71년에 이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헤로데스 시대의 번영은 사라졌다. 유대교도들은 헤로데스가 지은 성전의 벽, 나중에는 그 성벽을 ‘통곡의 벽’이라 이름짓고 이곳을 찾아가서 통탄하는 풍습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뒤에도 유대교도의 반란이 거듭되었기 때문에 로마인은 135년 야훼의 성전을 파괴했으며, 예루살렘을 콜로니아 아이리아 카피토리나라 부르고 직속지로 삼아 유대교도들을 몰아냈다. 로마가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자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순례자로 붐비었으며,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의 성묘(聖墓) 등에 최초의 교회가 건립되었다.
614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비잔틴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 많은 교회를 불사르고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갔다.
638년 이슬람교로 단결한 아랍인이 이곳을 함락시켰으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도 비잔틴제국에서 이탈하여 이슬람교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 바위사원에 있는 큰 바위는 마호메트가 꿈에 대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로 제7천에 있는 알라신(神) 앞까지 갔다는 승천(미라지)의 장소로서 신성시되고 있다. 아랍인들은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곳에 ‘아득한 회교사원(아크사의 마스지드)’을 지었으며, 우마이야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재위 685∼705) 때에는 다윗이 제단을 마련한 곳에 바위사원을 건립하였다.
이때부터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는 서로 상대편의 성지를 존중하였다. 예외로는 이집트의 파티마왕조의 칼리프 하킴(재위 996∼1021)이 그리스도의 성묘를 비롯하여 그리스도교도의 몇몇 성지를 파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비잔틴제국의 도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1099년에는 제1차 십자군이 성시(聖市)를 침략하였으며,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곳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187년 이집트에 아이유브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이를 탈환하였다. 그뒤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1229년 2월에서 1244년 8월까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의 화의(和議)로 이 땅을 회복한 적이 있을 뿐, 성지 탈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 땅은 맘루크왕조의 세력하에 들어갔으며, 다마스쿠스 총독이 이를 관할하였다.
그러나 1516년 12월 말에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셀림 1세가 시리아에 있는 맘루크왕조의 세력을 꺾고 예루살렘을 그 지배하에 두었다. 현존하는 성벽의 대부분은 투르크령이 되고 난 뒤 쉴레이만 1세(재위 1520∼1566) 때 축조된 것인데, 투르크령 시대에는 차차 쇠퇴하여 19세기 전반에는 인구가 1만 1000명 정도로 감소하였다.
한편, 19세기 중엽부터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이 투르크에 압력을 가하여 이곳의 성지 보호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투르크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들어가자 그 수도가 되었다.
그뒤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밸푸어선언에 따라 유대교도의 이민이 격증하였으며, 아랍족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
1948년 팔레스타인의 유대교도와 아랍 각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이듬해 2월에 이스라엘국이 성립하였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하여 각각 한 쪽을 영유하였는데, 1967년 6월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의 동부마저 점령하였다. | |
네이버 백과사전 |
◇ 예루살렘의 역사
다윗 이래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성지인 예루살렘은 과거의 성스러움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예수께서 탄생한 베들레헴과 함께 순례자의 발길이 그치지 않습니다.
1000 BEC |
다윗이 예루살렘에 도읍을 정하다. |
969 BEC |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다. |
701 BEC |
앗수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 포위 공격 |
586 BEC |
바빌론의 느부갓네 살이 예루살렘 함락 |
538 BEC |
바사의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스룹바벨이 예루살렘 성 재건 |
515 BEC |
예루살렘 성전 정화 |
445 BEC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과 성벽을 정비함 |
332 BEC |
알렉산더 대왕 예루살렘 방문 그리스 시대가 시작 |
169 BEC |
그리스 후예인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 약탈, 유대교 금지 |
167 BEC |
마카비 형제의 하스모니아 유대 왕국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정화 |
63 BEC |
로마 제국의 폼페이 장군 예루살렘 점령 |
37 BEC |
로마 제국의 비호아래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 확장 공사 |
22 BEC |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확장, 미화함 |
4 BEC(?) |
예수님 탄생 |
70 CE |
로마의 디도 장군 예루살렘 함락. 성전 파괴 |
135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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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 코흐바의 지도로 유대인 독립 운동. 하드리안 로마 황제 유대인 국외 추방 예루살렘을 알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부름 |
324~640CE |
비잔틴 시대의 도래.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들이 세워짐 |
614 CE |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산을 중심으로 이슬람 성지화 함. |
1099 CE |
십자군의 예루살렘을 점령 |
1187 CE |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이 예루살렘 점령. |
1267 CE |
이슬람교인 이집트의 마렐루크 왕조가 예루살렘 점령 |
1516 CE |
이슬람교인 오스만 터키 제국이 예루살렘 점령 |
1538 CE |
오스만 제국의 슐레이만 대제 11세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
현재의 예루살렘 성벽으로 보존되어 옴 |
1917 CE |
영국의 예루살렘 점령 및 신탁 통치 |
1947 CE |
이스라엘 독립,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됨 |
◈ 성경 모음 : 예루살렘의 아름다움(Beauty of the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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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48
시 122
시 125
시 87
시 134
시 137
시 76:2
사 54:11~17
사 62:1~12 |
아름다운 봉우리
여호와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화의 소리 외쳐라
산들이 예루살렘을 에워 감싸주듯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을 감싸주리라
여호와께서 택하시어 '이 곳은 영원한 나의 안식처'
시온에서 내리시는 복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예루살렘에 초막을 치시고 시온에 처소를 마련하시다.
새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구원을 촉구
그리워 찾는 도시, 버릴 수 없는 도시 |
출처 http://www.startour.pe.kr/local/christ/jerusalem_wall.htm
★ 스타투어(Star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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