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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 온 산
시온산은 예루살렘 서쪽 산등성이로 예루살렘 성 밖에 위치해 있다 힌놈계곡에 의해 서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 계곡에 의해서 삼면이 경사를 이루고 있는 해발 765m의 등성이 산지이다.
성경에 의하면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이곳 시온산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성경에 언급된 처음 시온산은 모리아산의 성전산을 의미했다. 오늘날의 시온산은 구약시대에 부르던 곳과는 다른 곳에 있다. 왜 현재의 장소가 시온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후 4세기경에 지형학적인 실수로 인해 현재까지 시온산으로 불려지고 있는 듯하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의해서 잘못된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2000년 가까이 시온산이라고 불러 왔기에, 지금도 유대인은 물론, 회교도와 기독교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다.
시온산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예루살렘과 성지 전체를 대표하는 시적인 이름으로 쓰여 왔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온산은 그들의 정신적인 고향이요,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온주의의 “시온으로”라고 하는 것은 이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킬 수 있는 표어가 되어왔다.
1267년 람반(Ramban)이 시온산에 회당을 세움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에서의 유대인 공동체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근거는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다윗무덤이 이곳에 생겼고, 유대인들의 다윗무덤 순례는 12세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주후 15세기에 기독교인들은, 다윗무덤 윗층에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이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시온산에서 추방되었고, 건물은 회교도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시온산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방문을 위해 시온산으로 오르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교황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시온산 지역에는 마가의 다락방, 마리아 무덤 교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베드로 통곡 교회 등이 있다 .
2.. 마가의 다락방
시나클룸(Cenaculum, 식당)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곳이며, 성만찬식의 기원이 된 곳이다. (막 14:12-16, 눅 22:7-13). 같은 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행 2:4-1).
초대 기독교인들은 본부를 시온산으로 삼았고, 1세기에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는 군사작전 지역의 바깥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주후 70년과 135년의 파괴 위기를 면하였다.
비잔틴들에 의해 교회는 확대되었고, 이사야의 예언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와 관련지어 성 시온 이라 일컸는 이름의 유래가 된 것 같다.
614년에 페르시아군이 교회를 파괴한 것을, 십자군들이 12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1176년에 다윗 왕의 무덤이 아래 층에 모셔지고, 윗 층은 회교도가 뽀족탑과 기도 장소를 간단히 세워, 회교 사원으로 변형시켰다.
3. 다윗의 무덤
이 곳은 이스라엘에서 서쪽 벽 다음으로 최고 성지 중의 하나이다.
1172년에 투델라의 랍비 벤자민이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 이 묘를 모시었다. 묘는 돌로 되었고, 아름다운 수를 놓은 천으로 씌어져 있으며, 아름다운 은관에 보관된 유대교의 성경 토라로 치장되어 있다.
4. 감람산과 겟세마네 교회(만국교회)
예수님의 고뇌와 기도의 성소로 된 이곳에 비잔틴들이 379년에 예배당을 지었다. 이 예배당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제일 먼저 파괴된 교회중의 하나이다. 12세기의 십자군들이 교회를 재건한 후, 다시 파괴 되었다. 현재의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하나로서 1919~24년에 완성되었고 16개 국가가 헌금을 모아 지었기 때문에 만국교회라 불리 운다.
교회의 천정에 그 여러 나라의 표지가 새겨져 있다. 교회 안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보라색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어두운 빛과 내부장식은 조용한 기도 시간을 갖는데 적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 중앙에는 예수께서 고뇌했다는 바위가 놓여져 있다.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바닥의 일부분이 발견되었다. 새 모자이크는 원래의 것의 복사이다.
정면에는 네 명의 상이 각각 글귀가 새겨진 책을 들고 서 있다. 벽에는 예수의 고뇌와 세상의 고통을 하나님께 바치는 정교한 모자이크가 있다.
(1). 겟세마네 동산
올리브산 아래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은 성지에서 가장 감동 깊은 장소 중의 하나이다. 현재에도 이 동산은 20세기 전처럼 보여진다. 기드론 골짜기의 반대편에 위치하며 예수 당시 때처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곳의 올리브 나무들은 아마도 그때의 것인지도 모른다. 세례 요한은 이곳을 기드론 시내 근처의 동산이라 했다. 예수께서 즐겨 찾으셨던 곳이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이르러 (눅 22:39). 이곳이 바로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를 순종하는 그의 생애의 최대의 간곡한 시간이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 22:42)"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의 하인들과 와서 그의 선생을 배반하였다.(마 26:7, 막 14:44, 눅 22:47, 요 18:2). 모든 제자들은 도망가고 예수님은 홀로 남아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슥 13:7)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예수는 체포되고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 그 다음날 십자가의 형을 선고 받았다.
겟세마네 동산에는 8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는데, 그들의 나이는 확실치 않다. 몇몇 식물학자들은 올리브 나무들이 약 3000년 됐다고 주장한다. 요세푸스는 디도 장군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파괴하면서 모든 나무들도 함께 없앴다고 서술하고 있다. 만약, 이 나무들이 그 때의 파괴를 살아 남았으면 예수 당시의 나무인 것은 분명하다. 아니면, 예수께서 고뇌의 밤을 기도로 보내셨을 때의 나무들의 새싹임이 분명하다. 올리브나무는 죽지 않는다(Pliny). 아직도 이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있다.
만 국 교 회
5. 베 데 스 다 못
예루살렘 동북 편에 위치한 양문(洋門) 곁에 있던 못(요 5:2)으로, 이곳에서 예수께서 38년 동안 앓아오던 중풍병자를 낫게 해주셨다(요 5:8~9).
오늘날의 베데스다는 1914년에 발견한 성 엔느 교회(St. Anne's Church) 안에 있는 못으로 밝혀졌다[출처:아가페 성경사전].
6. 실로암 못
이 못은 히스기야 왕이 지었는데, 기혼샘으로부터 물을 받는 물 저장소이다. 이 못은 기독교인 들에게는 성지인데, 예수께서 소경에게 눈을 바른 진흙을 씻으라고 한 장소이다.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 9:7)."
5세기에 실로암 못 위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 된 후 현재까지 재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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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원지인 기혼샘으로부터 520m의 물줄기에 이르는 실로암 못은 앗시리아의 포위 공격에 대비해 지하에 판 수로 끝에 있다. 기혼샘에서부터 실로암 못까지는 직선거리로 315 m에 불과한데, 왜 적이 쳐들어 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당시 유대인들은 구불구불하게 525 m나 되는 긴 터널을 팠을까 하는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터널의 지상 부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유대 왕들의 무덤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지만, 1978년부터 다윗성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을 시도한 후 지질학자인 단 길(Dan Gill)은, 조사 끝에 이 터널지역이 원래 4만년 전부터 형성된 바위 틈새로 이어져 있었음을 밝혀냈다. 즉 히스기야의 공병대원들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기존의 바위 틈새를 따라 팠기 때문에, 구불거리는 수로를 따라간 것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실로암은 요한복음 9:7절에도 나오는 유명한 곳으로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
7. 감람산 예수님 승천교회
승천교회 내 승천시 발자국
사도행전 1:9-12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올리브산 위에 가셔서 축복을 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올리브산 정상은 승천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사도행전에, 제자들은 에루살렘을 떠나 안식일 여행을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안식일 여행은 약 900m에 한정하는데, 이 거리가 승천 장소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이기도 하다.
4세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12세기에 십자군들이 또 교회를 세웠다.
현재의 예배당은 십자군 때의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승천 당시 발자국이 남아있는 바위가 안에 보존되어 있다.
후에 모슬렘들이 바깥에 벽을 쌓고, 현재의 둥근 모양의 지붕을 만들었다.
8. 통곡의 벽
통곡의 벽(2)
통곡의 벽(3)
유대교의 최고 성지이다. 제2성전의 마지막 유적이기 때문이다.
서쪽 벽은 헤롯 대왕이 주전 20년 경에 지은 성벽의 일부분이다. 디도 장군은 주후 70년에 성전을 파괴한 후, 이 벽만 남기어 후세에게 로마군의 위력을 과시하려 했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한번씩 허락되어, 와서 성전 파괴와 방랑하는 유대민족을 위해 통곡하였으므로, 통곡의 벽이라 일컫는다.
성전 벽에서 기도하는 전통은 수 세기를 이어왔다. 1948~1967년에는 서쪽 벽이 요르단 국가에 속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방문은 불가능 했었다.
그러나 6일 전쟁 후, 통곡의 벽은 예배와 함께 전 민족의 기쁨의 장소가 되었다. 큰 뜰이 건설되어 수천명의 순례 객을 수용할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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