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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주는 평범한 삶…대권, 사주 아닌 시대정신이 좌우 / 사주란 무엇인가

영국신사77 2020. 5. 11. 11:19

 좋은 사주는 평범한 삶…대권, 사주 아닌 시대정신이 좌우


5월은 가정의 달, 사주란 무엇인가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우리는 답답하면 무엇을 하는가. 신앙인이라면 기도를 할 것이다. 침잠(沈潛)을 위해 명상을 할 것이다. 역술인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사주명리학 핵심은 음양오행론
결혼 등 우리 풍습과 밀접한 관련

총리 공관 터는 좋은데 대권 좌절
시대가 원하는 걸 못 읽었기 때문

사주는 자신 없을때 마지막 ‘신탁’
자신을 객관화하는 수단 되기도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람의 생년·월·일·시의 네 가지로 이루어진 사주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하여 운명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렇다. 사주명리학은 어엿한 ‘학문’이다. 하지만 학문은커녕 혹세무민하는 ‘미신’이라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 풍습에서 가정은 신랑집에서 신붓집으로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냄으로써 탄생한다. 그만큼 우리 전통문화에서 사주는 굉장히 중요하다. 또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의 창제 원리 중 하나는 사주명리학의 중심인 음양오행론이다. 예컨대 같은 목(木)의 소리인 ㄱ ㅋ ㄲ, 같은 수(水)의 소리인 ㅁ ㅂ ㅍ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만큼 사주는 우리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주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두규 우석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독일 뮌스터대 박사학위를 받은 독문학자이지만 운명의 힘에 의해 풍수학·사주학을 연구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2020년 운명을 읽는다』(2019)·『김두규 교수의 풍수강의』(2008) 등이 있다. 그를 중앙SUNDAY 대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대통령과 사주 같은 사람이 이장하기도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사주와 풍수를 공부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사주와 풍수를 공부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2020년 운명을 읽는다』의 집필 동기는?
“일본·독일·미국 등의 나라에서 신년의 운세를 예측한 책들이 나온다. ‘풍수 달력’ 같은 책도 있다. 살펴보니 내용이 좀 빈약하다. 올해 경자년 내내 참조할 수 있는, 내용이 충실한 ‘운명 연감’을 쓰려고 했다.”
 
책의 방법론은?
“역사관에는 선형설·주기설이 있는데, 동양은 60년 주기설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경자년에 일어난 사건과 경자년에 태어난 동서양 인물들을 분석·정리했다. 최고지도자들이 한 나라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아베 총리,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의 사주로 각국의 전망과 국제정세를 짚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역술인들이 후보들의 사주로 당선자를 예측한다. 역대 대통령과 총리의 생애를 살펴보면 총리 팔자가 더 좋은 것 같다. 사주가 상대적으로 더 좋으면 총리, 더 나쁘면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닌가?
“저는 원래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풍수에는 사주 이론도 들어가 있다. 풍수사들을 보면 사주를 겸업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대해 ‘풍수냐 사주냐’ 논란이 있다. 저는 풍수와 사주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과 사주가 같은 사람도 어떤 사람은 시골에서 이장을 하고 있다. 대통령도 이장도 한 조직체의 우두머리다. 잠재력은 같다. 잠재력의 실현이 다를 뿐이다”
 
차이 나는 원천은 무엇일까.
“첫째는 ‘터’의 문제, 장소의 문제다. 처신(處身)의 문제다. 내 몸을 어떤 곳에 둘 것인가. 아무리 사주가 좋아도 장소가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군의원들을 만나 보면, 국회의원보다 말도 잘하고 사물에 대한 인식·판단이 더 정확하다. 그분들이 서울로 갔다면, 여의도에서 놀았다면, 더 큰 가능성이 열렸을 것이다. 지방에서 공부하는 제 제자들은 기가 죽었다. 똑똑해도 전주에 남아 자리 잡으려고 한다. 저는 학생들에게 ‘그러지 말고 서울로 가라’고 한다. 왜 서울이냐. 서울은 돈이 많다. 정보가 많다. 둘째는 시대정신을 어떻게 독해하느냐다.”
 
풍수만 따지면, 총리공관 터가 청와대보다 더 좋은가.
“지난번에 총리 공관을 답사했는데 터가 좋다. 많은 총리가 대권에 접근하다가 좌절했다. 반복하자면 역대 총리들은 이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못 읽어냈다. 또 대권을 쥐려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 결기(決起)가 필요하다.”
 
현재 대권 선호도 1위인 이낙연 전 총리의 풍수는?
“이낙연 선영을 저는 ‘막걸리 풍수’라고 표현한다. 썩 좋은 터는 아니다. 하지만 동네 지관이 지나가면 막걸리 한잔 사주면서 ‘좋은 자리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하며 얻은 터다. 최선을 다해 쓸 만한 자리를 정성스럽게 썼다. 그게 조상의 음덕으로 작용한다.”
 
높은 IQ, 낮은 IQ가 있듯이 좋은 사주, 나쁜 사주가 있는가. 예컨대 IQ가 160이면, 노벨 과학상을 받는 학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태만해 공부 안하면 대학도 못 간다. IQ가 100이라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대학도 가고 박사도 되고 대학교수도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의미에서 남자는 아내·직장·자식이 있는 것을 가장 좋은 사주로 본다. 목화토금수 오행이 다 갖춰줬다는 이야기다. 큰 사건 사고 질병이 없다는 이야기다. 좋은 여자 사주는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 것이다. 평범한 삶이다. 옛날 우리 부모들이 원했던 삶이다. 또 조선시대나 1960년대까지는 남자들이 큰 벼슬을 하는 것이 좋은 사주다. 지금은 돈이 많아야 좋은 사주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때라 좋은 사주의 의미도 바뀐다.” 
 
사주에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골고루 다 있는 게 균형 잡힌 좋은 사주다. 원칙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목화토금수를 모두 갖추기도 힘들다. 일반인들은 사주에 ‘목이 없다’ ‘화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내 사주가 나쁘다’는 뜻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주에 따라 특정 오행이 없는 게 더 좋은 사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 사주에 특정 오행이 부족하면, 콤플렉스가 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없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노력을 배가한다. 굉장히 악착같다. 사주가 불균형하면 집중력이 강하다. 사주가 불균형하면 좀 삐딱하다. 대신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학자가 될 수도 있다. 사주에 나타난 자신의 운명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 사람은 더 크게 된다.”
 
이상적으로는 점술은 우리가 자신의 현 위치를 점검하는 계기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에 승진이 되느냐 마느냐, 자식이 대학에 붙느냐 안 붙느냐, 이번 임신이 아들이냐 딸이냐에 관심이 많다.
“만약 운명으로 모든 게 결정돼 있다면, 사실 점을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자기 자신의 ‘값’은 나와 있다. 사주는 자신이 이미 답을 갖고 있으나 자신감이 없을 때, 결단이 필요할 때, 저지를 때의 마지막 ‘신탁’이다. 사주 풀이는 희망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과 인연이 깊었던 설송(雪松) 스님(1918~2009)은 모든 정치인에게 ‘당선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왜 그러셨을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사회과학·철학적 관점서 사주 논의해야
 
사주는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K사주도 가능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태어난 시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순간이 특별하다고 여기기에 생시까지 정확하게 안다. 국내 10조 시장을 너머 국제적인 100조 시장이 될 수도 있다.
“100% 동의한다. 현재 한류가 한정돼 있다. 홍대 앞에 외국인들이 사주 보러 많이 와서 통역을 둔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영어·일본어·독일어 등에 능숙한 학생이 사주를 공부하면, 사주라는 새로운 컨설팅 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 점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게 생각하고 자신을 객관화해 보는 계기 삼는다면, 건강한 산업 분야가 활성화될 수 있다.”
 
사주를 어떻게 대하는 게 바람직할까.
“사회과학적·철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누가 ‘용하다 용하지 않다’만 따진다면, 사주가 끊임없이 신비주의로 빠진다. ‘사주 시장’이 10조원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비롯해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지만, 거리에서는 동양철학관이 문전성시다. 사주를 대학의 철학과에서 논의해야 한다. 사주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다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식이나 종교는 운명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 못한다. 사주는 구체적, 개별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애정·돈·직장 문제, 실존적 불안 등 미래에 대한 부분은 누구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내년에 된다’ ‘자신감을 가져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주는 희망을 전파하는 기능을 한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