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의 세계' 파헤쳐온 애덤 투즈 美 컬럼비아大 교수]
-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세계 경제 성장 패턴
돈을 아무리 뿌려대도 성장 안해… 예전 방식 먹히지 않는 시대 됐다
- 중국이 '글로벌 위기 진앙'으로 떠오른 까닭
거대한 그림자 금융 시장에 불안… 엄청난 기업 부채 해결기미 없어
- 美·中 쪼개졌을때 한국이 대응해야할 방안
유럽·日과 전략적 관계 강화를… 최악 상황은 韓日분쟁 일어나는것
미국 컬럼비아대 애덤 투즈(Tooze) 교수는 지난해(한국 기준) 나온 책 '붕괴'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 동안의 세계를 속속들이 해부했다. 혼란스러웠던 10년, 세계사적 사건들을 꼼꼼히 짚어가는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이제 세상은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21세기의 둘째 10년이 저물어가던 지난해 12월, 고향인 영국에 잠시 머물고 있는 투즈 교수와 인터뷰했다. 투즈 교수는 현대 경제사 연구 분야의 대가로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 예일대를 거쳐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포린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지난해 뽑혔다. 투즈 교수는 인터뷰에서 "돈을 계속 뿌려대도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예전 방식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몇 년 동안 사람들은 '이제 곧 정상으로 돌아가겠지'라고 믿었다. '안정화'라고 부르는 그 무엇, 이전 수십 년 동안 겪었던 친숙한 그 세상으로 돌아가리라는 기대가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10년의 기대가 이제는 완전히 접혔다고 생각한다. 우리 미래는 앞으로도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나아가리라 기대했던 1990년대 서방 자유주의 신봉자들의 믿음이 사라진 시기란 뜻이다."
―성장과 풍요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단 뜻인가.
"아니다. 희망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미래가 앞으로 정말 극단적으로 다르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우리가 놓였다는 뜻이다. 첨단 기술이 발달하는 모습이나 국제 정세에서 중국의 역할 변화 등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앞으로 세상은 미국, 그리고 한국·독일·영국·일본 등 미국의 아군들이 설계해온 세상에 깔끔하게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에 발생할 여러 문제는 기존 체제로는 통제가 불가능할 수 있다."
―금융 위기에 버금가는 또 다른 충격을 예상하는가.
"가까운 미래에 그 정도 파괴력이 있는 충격이 발생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작은 충격은 계속 이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2014~2015년 남미 브라질·아르헨티나에서 연이어 발생한 경제 위기나 2018~2019년 미·중 무역 분쟁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일본·독일 등이 연쇄 타격을 받은 일이 대표적이다. 혹시라도 '심장마비'급 충격이 다시 온다면 중국발(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중국은 왜 위험한가.
"2008년 이후 막대하게 불어난 중국 각 분야의 부채는 해소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거대한 그림자 금융(규제 밖 금융회사) 시장 등 불안한 금융 시스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 금융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촘촘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중국의 금융이 무너지면 대단히 큰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진앙(震央) 후보는 기업들의 막대한 부채다. 나는 이 두 가지(중국 금융 불안정, 기업 부채) 문제가 2008년급은 아니더라도 꽤 큰 수준의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무역 전쟁을 특히 우려한다.
"미·중 관계엔 두 가지 층(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이는 다툼이다. 세부 사항에 대한 고려 없이 수사(修辭)로만 이뤄지는 분쟁이다. 지금 양국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감도는 듯 보이는 것은 미국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정치적 이유가 크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깊은 곳' 즉 의회 등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중국과 적대적으로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보다는 안보 차원에서 중국을 다시 평가하려는 움직임 말이다. 그런 적대감은 당연히 중국에서 똑같은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런 흐름이 바뀔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분열은 앞으로 일어날 '디커플링'(분리)의 시작점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미·중 디커플링이 발생하면 다른 나라들은 서로 더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은 유럽과 일본 같은 곳과 전략적으로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중이 갈라섰을 때 최악 상황은 이들을 제외한 인접 국가들, 즉 한국과 일본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미래에 한·일 관계는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고, 일본보다는 한국에 더 그러하다."
―또 다른 충격이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가 대응할 도구가 남아 있나. 금리는 바닥 수준이라 더 낮추기 어렵고 양적 완화도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미 연방준비제도 등 중앙은행들은 '충격'에 꽤 잘 준비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은행에 단기 자금을 제공하거나 신속하게 국가 간 통화 스와프(교환)를 가동하고 속도감 있게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을 구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채비를 갖추었다. 예전처럼 머리를 긁적거릴 필요 없이 즉각 시행할 수 있는 조치다. 위기 대응 능력보다 우리가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은 완전히 바뀌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다시 성장할 방법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세상이 바뀌어버렸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리는 과연 성장을 촉진하고 경제성장을 이루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새로운 방법을 알고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그래서 걱정된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각국은 재정 확장 실험을 정말 많이 했다. 한국도 그랬다. 하지만 돈을 계속 뿌려대도 경제는 성장하지 않았다. 예전 방식이 먹히지 않는다.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속도감 있게 경제를 '수퍼 하이테크(첨단 기술)' 버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기차로 교통수단을 모두 바꾸는 것처럼 신기술을 통해 파격적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계층 간 이동을 활성화하는 식으로 지속 가능한 새로운 경제 모델을 갖춰야 한다.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정책의 대전환 없이 '성장이 최우선'이라고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앞으로 10년, 기후변화가 인류 가장 큰 문제… 대처방안 세울 마지막 기회"
투즈 교수 "저탄소 경제로 가면 새로운 경제 구조
만들 수 있어… 이 문제로 요즘 밤잠을 설친다"
애덤 투즈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앞으로 10년 동안 인류가 맞닥뜨릴 가장 큰 문제를 묻자 주저하지 않고 "기후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포린폴리시에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할 때'라는 내용의 칼럼을 쓰는 등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10년이 기후변화가 '대재앙'을 불러오기 전 인류가 대처할 방안을 세울 마지막 시기"라고 했다. 그는 "나는 몇 년 안에 기후변화가 엄청난 재난을 발생시킨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10년 내에 국제사회가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엔 연착륙(軟着陸)할 수 있는 기후변화 문제가 비행기 '추락' 수준의 큰 충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비교적 원활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극도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위기를 겪고 나서야 행동할 것인가를 판가름할 시기가 앞으로 10년이라는 뜻이다.
그는 첨단 기술을 통한 '친환경 경제' 전환이 미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촉진할 주요 후보라고도 전망했다. 그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세계경제가 고전하고 있다"며 "세계경제가 저탄소 경제로 지혜롭게 전환해 간다면, 그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많이 생겨나고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