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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무대로 뛰는 ACTS(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출신 교회 지도자들]<1> -<6>

영국신사77 2020. 4. 23. 12:38

한국서 배운 신앙·신학이 파키스탄 선교 주춧돌

[세계를 무대로 뛰는 ACTS(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출신 교회 지도자들] 

<1> 인천 동춘교회가 후원한 파키스탄 나시르 민하스 목사

입력 : 2020-03-23 00:06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출신인 나시르 민하스 목사와 파키스탄 성도들이 지난해 12월 파키스탄 구즈란왈라시에서 성탄절 기념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ACTS 제공

매년 성탄절이 되면 나시르 민하스 목사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성탄절 퍼레이드를 통해 복음전도지를 나누며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민하스 목사는 1997~99년 한국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AIGS(Acts International Graduate School)에서 선교학을 전공하고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턴 파키스탄에서 복음전도와 목회자 교육 및 어린이 교육에 힘쓰며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에서 훈련받은 대로 복음주의와 신본주의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민하스 목사는 ACTS에 보낸 편지에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잘 인도할 수 있는지 리더의 자세를 배울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면서 “ACTS야말로 아시아의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데 최적지”라고 밝혔다. 이어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ACTS에서 받은 신앙과 신학 교육의 영향력이, 어려운 선교현장에서 지금까지도 저를 일깨워주는 주춧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파키스탄 복음화를 위해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교회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하스 목사는 ACTS에서 공부할 때 파키스탄선교연구원 연구교수였던 정흥호 총장와 비전을 나눴다.

“교수님, 파키스탄 복음화를 위해 제가 품고 있는 사역지인 구즈란왈라(Gujranwala)시에 선교센터를 건립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신학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역하는 파키스탄 목회자들을 교육하는 게 꿈입니다. 핍박받으며 자라는 어린이들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교육하고 싶습니다.”

그 비전은 당시 박사과정에 있던 윤석호 인천 동춘교회 목사에게 알려졌다. 민하스 목사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간 후 윤 목사는 파키스탄선교연구원 원장에 임명됐다. 2002년 정 총장과 함께 파키스탄을 방문했고 2004년부터 복음 사역을 위해 ‘진리의 집’ 건축을 후원했다.

인천 동춘교회 단기선교팀이 2006년 구즈란왈라시에서 성극을 공연하는 장면. ACTS 제공

2006년에는 동춘교회 성도들이 민하스 목사가 담임하는 파키스탄 구즈란왈라교회에 단기선교를 왔다. 동춘교회 중직과 청년으로 구성된 단기선교팀은 코이노니아 선교와 기도선교를 실천했다. 2007년 동춘교회의 후원으로 진리의 집을 준공했는데, 현재 이곳에선 목회자 신학교육원과 기독교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의사가 꿈이었지만, 파키스탄에선 의학을 공부할 수 없었던 한 형제의 유학비도 동춘교회에서 지원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그 형제는 진리의 집에서 의료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단기선교팀의 일원으로 파키스탄 선교지를 체험한 양일현 장로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선교지의 열악한 상황을 보며 당황스러웠다”면서 “지붕도 없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파키스탄 사람들, 이슬람문화의 영향으로 남녀가 유별한 교회 입구, 열악한 교통수단 등은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양 장로는 “한국교회에선 무작정 선교를 위해 기도했는데, 선교지의 현실을 직접 체험한 뒤 그곳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ACTS가 선교의 비전을 발견하게 도와줬으며, 기도사역의 범위를 넓혀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ACTS에 입학한 후 선교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코이노니아 선교가 무엇인지, 기도 선교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면서 “선교학 교수님이었던 정 총장님과 함께 파키스탄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선교비전에 감동받아 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파키스탄 선교연구원장 자리를 선뜻 수락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ACTS에서 받았던 기도 선교와 코이노니아 선교의 열정이 목회에서 선교 등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ACTS에서 구체적인 선교비전을 발견했다”면서 “한국교회에 선교 열정이 회복되고 선교지에서 복음이 힘 있게 증거될 수 있도록 ACTS가 계속 선교의 통로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민하스 목사도 편지에서 파키스탄의 복음화를 위해 사역할 수 있도록 힘이 돼준 ACTS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파키스탄에 관심을 갖고 후원·협력할 수 있도록 통로가 돼준 모교 ACTS에 감사하다”면서 “더 많은 선교 동원이 이뤄지도록 하나님이 ACTS를 크게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ACTS는 1974년 국내 최초로 외국인 유학생을 교육하기 시작한 교육기관으로 2019년 교육부가 주관하는 ‘2019년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 및 외국인 유학생 유치, 관리 실태조사’에서 교육국제화역량 인증대학으로 선정됐다. 2020학년도에는 9개국에서 19명의 외국인 학생을 선발했다.



인도에 교회 3곳 개척… 한국적 영성 있었기에 가능

[세계를 무대로 뛰는 ACTS 출신 교회 지도자들] 

<2> 과천약수교회가 후원한 인도 양가 목사

입력 : 2020-03-30 00:05
양가 목사가 설립한 하베스트 인디아 미니스트리 소속 사역자들이 인도 저소득층 어린이를 대상으로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양가 목사는 현재 인도 동북부에 있는 나갈랜드 커버넌트신학대학원 학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커버넌트교회도 담임하고 있는데, 하베스트 인디아 미니스트리(Harvest India Ministry)를 통해 교회 개척과 리더 훈련, 청소년 캠프 개최, 부흥회 인도로 인도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1997년부터 99년까지 아세아연합신학대(ACTS)에서 AIGS(ACTS International Graduate School)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ACTS에 보낸 편지에서 “한국에서 공부하며 기독교인의 영성과 선교에 관해 큰 도전을 받았다”며 “신학을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 영성과 복음 전도의 열정을 배우고 훈련받았다”고 말했다.

양가 목사는 “인도로 돌아가 목회하면서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회 개척 및 지도자를 훈련하는 다양한 사역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남다른 훈련을 한국교회에서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양가 목사(가운데)가 2013년 인도 북동부에서 열린 청소년 캠프에 참석한 지역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한 모습.

그가 ACTS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과천약수교회(설동주 목사)가 후원했던 덕분이다. 그는 99년 신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과천약수교회에서 영어예배를 담당했다. 이때 한국 부교역자와 똑같이 새벽기도와 밤샘 철야를 하면서 영성훈련을 받았다. 그는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의 근본이 되는 영성을 실제로 체험하고 훈련받았다”면서 “나갈랜드로 돌아와 지금까지 신학교와 교회에서 새벽기도와 철야를 실천하고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설동주 목사는 양가 목사가 한국교회의 영성과 복음 전도의 열정을 제대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 내 22개 대표적 교회를 방문하도록 돕고 교회 성장 비결을 연구하도록 기회를 줬다.

설 목사는 “한국으로 유학 온 신학생들이 세계적인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의 영성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이론적인 신학 공부 이상으로 중요하다”면서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 성장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2명의 필리핀 사역자들이 과천약수교회 부교역자와 사역하면서 영성훈련을 받고 있다. 향후 ACTS와 업무 협약을 체결해 5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할 예정이다. 교회는 양가 목사와 마찬가지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2년간 한국교회 현장에서 목회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설 목사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선교지에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면서 “나 역시 ACTS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한철하 박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한 박사님은 늘 목회 현장이 없는 이론적 신학은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 박사님은 ‘서양 신학이 사변적으로 변하면서 서양교회가 쇠퇴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면서 “한국교회는 서구의 신학을 일방적으로 추종할 게 아니라 복음 전도와 선교의 영성을 중시하는 신학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천약수교회는 쉐마교육을 진행하며 신앙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예배와 수련회를 진행하며 다음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모델 교회로 손꼽힌다. 지난 10년간 4600여명이 쉐마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했으며, 8개국 교회 지도자들이 훈련을 받았다. 교회 성장이 둔화하는 현실에서도 다음세대 교육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교회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재교육과 이를 감당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비전 아래 비전센터 건축에 집중하고 있다. 이곳이 완공되면 개척교회 목회를 하다가 좌절하고 낙심한 목회자와 교회 성장을 갈망하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영성훈련과 목회훈련을 할 예정이다.

설 목사는 ACTS에서 목회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유학 온 신학생들에게 이론적 신학을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현장에서 목회 실습과 훈련을 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세계 복음화에 실제로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가 목사처럼 ACTS에서 추천한 AIGS 학생을 후원하고 교회에서 직접 목회자 훈련을 시킨 계기도 여기에 있다”면서 “20년 전 ACTS에서 시작한 영성훈련이 나갈랜드 복음화와 교회 성장의 발판이 됐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양가 목사는 ACTS와 과천약수교회에서 한국교회의 영성과 신학적 성찰의 깊이를 체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 이론에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한국교회의 영성을 훈련받을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된 ACTS에 감사하다”면서 “귀국 후 나갈랜드에 3개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영성의 뿌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천약수교회는 나갈랜드 교회를 위해 이곳 지도자들에게 쉐마프로그램을 전수하고 있다.


성도들 고국으로 선교여행… 베트남 이주민 교회 역사 쓰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ACTS 출신 교회 지도자들] <3> 서울 장석교회가 후원한 울산 베트남교회 뚜안 목사

입력 : 2020-04-06 00:05
뚜안 목사(강대상 부근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남성)가 지난해 12월 울산 베트남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린 뒤 성도들과 함께했다.

뚜안(Kieu Cong Thuan) 목사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울산장로교회에서 베트남 이주민을 위한 목회를 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 지난해 1월엔 베트남 이주민을 위한 교회인 베트남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국내 베트남 이주민 교회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뚜안 목사는 “베트남교회에선 오프라인 예배뿐만 아니라 온라인 예배와 성경공부도 활발하다”면서 “전 성도가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이주민의 특성상 한국에서 교회에 나와 성경공부할 여건이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온라인 성경공부도 인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새신자 관리에 거리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새신자들은 물론이고 베트남 이주민들의 이동에 따라 말레이시아, 대만으로 흩어진 성도들까지 영적으로 돌본다. 여름과 겨울방학이면 베트남교회 성도들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으로 복음 전도를 위해 선교여행을 간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유튜브, 줌(ZOOM), 페이스북에서 영상으로 성도들과 만나 예배하고 기도회를 열고 성경공부도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만 150명이다.

뚜안 목사는 19살이던 1992년 목회 소명을 받았다. 신학 공부를 위해 기도하다 2000년 목회학석사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AIGS(Acts International Graduate School) 과정에 입학했다. 2003년 졸업 후 베트남으로 돌아가 2006년까지 비엔호아교회를 섬겼다. 2008년 베트남 이주민 사역을 위한 울산장로교회 부교역자로 청빙을 받았다. 2009년에는 한국독립교회단체연합회(KAICAM)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한국교회 내 베트남 이주민 선교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뚜안 목사는 대표적 ‘글로컬(글로벌+로컬) 사역자’인 셈이다.

서울 장석교회 성도들이 2002년 베트남 선교지를 방문한 모습.

뚜안 목사가 한국에 와 ACTS에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 교회는 서울 장석교회다. 장석교회는 1954년 성북구 석관동에 영락교회 여전도회의 헌신으로 천막교회를 세워 김평 전도사가 처음 사역을 시작했다. 66년 역사를 가진 장석교회는 현재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다. 이용남 원로목사가 담임하면서 선교와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목사는 은퇴 후에도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중남미 선교지를 방문해 한국인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수련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선교사들을 재충전하는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이 목사에게 선교 열정을 심어준 사람은 한철하 박사였다. 이 목사는 “당시 하루에도 수차례 한 박사님이 연락해서 ACTS에서 목회학박사 공부를 하라고 강권하셨다”면서 “1985년 장석교회에 부임해 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박사님의 제안대로 목회학박사 과정에 들어가 공부했고 198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 목사는 “ACTS에서 공부하며 선교에 대한 한 박사님의 열정과 집념에 큰 도전을 받았다”면서 “신본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의 원칙을 지키며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선교동원을 하셨던 한 박사님의 가르침은 장석교회가 선교중심적인 교회가 되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장석교회는 이후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 복음의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선교사역에 모든 성도가 헌신하는 선교공동체가 됐다”고 소개했다.

장석교회는 ACTS 베트남선교연구원을 맡아 박응규 연구교수와 함께 매월 교회에서 유학 온 베트남 신학생들과 기도회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성도들에게 선교비전을 나누고 베트남 신학생을 자연스럽게 후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도회에서 나눈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박 교수와 성도들이 함께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다.

선교중심적인 교회를 추구했던 장석교회는 베트남뿐만 아니라 몽골과 필리핀 이주민들을 위한 예배도 만들었다. 회심 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란 회심자를 뉴질랜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목회학석사 과정을 공부하며 후원교회에서 매월 기도회에 참석했던 뚜안 목사는 “다문화시대 이주민 선교에 있어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울산 베트남교회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교역사를 함께 쓰는 장석교회가 있었던 덕분”이라며 “울산 베트남교회도 열방을 섬기는 교회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인재 육성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뚜안 목사는 “장석교회가 심은 선교 씨앗이 베트남 이주민을 복음화하는 나무가 돼 자라고 있다. 베트남 선교의 전초기지 역할까지 하고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이런 선한 일을 지속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작은 밀알… “한국교회 선교 열정으로 채우겠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ACTS 출신 교회 지도자들] 

<4> 양평 상심리교회가 후원한 캄보디아 고영립 선교사

입력 : 2020-04-13 00:05
경기도 양평 상심리교회 성도들이 2018년 12월 캄보디아 포이펫교회가 위치한 동네에서 마을 전도집회를 열고 있다.

1996년 봄 경기도 양평 양서면 상심리교회에 인근 아세아연합신학대(ACTS) 신학생이 여럿 모였다. 가난한 신학생들은 교회의 배려로 이곳에서 거주하며 식사하고 공부도 했다. 24년이 지난 2020년 그들 중 한 명이 캄보디아 선교사가 됐다. 고영립 선교사 이야기다.

“상심리교회는 돈이 없어 기숙사조차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던 가난한 신학생들의 허기를 채워준 사랑방 같은 곳이었습니다. 가난한 신학대학원생 신혼부부의 신혼집이 되기도 했죠. 나눔관에서 신학생들은 세계선교를 향한 헌신을 다짐했습니다. 동역자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물건을 통용하고 돕는, 초대교회처럼 사랑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고 선교사는 1995년부터 2년간 ACTS 학부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상심리교회의 교육전도사로 봉사했다. 2008년에는 상심리교회 부교역자로 청빙을 받아 사역했다.

2014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상심리교회는 1호 파송 선교사로 고 선교사를 캄보디아에 파송했다. 고 선교사는 “한국교회에서 작은 밀알이 돼 반드시 한 교회를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소명을 잊은 적이 없다”면서 “96년 상심리에서 만나 비전을 나누던 ACTS 학생들과 필리핀 팔라완섬의 새부족선교회(NTM) 사역지에 단기 선교여행을 다녀오면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었다”고 회고했다.

고 선교사 일행은 당시 경비행기와 소형 모터보트를 타고 작은 섬들을 오가다 거센 풍랑을 만났다. 타고 있던 보트가 심하게 흔들려 생명을 잃을 뻔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 가운데 팔라완에서 목회하는 현지 사역자들을 만났다.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선교사가 돼 직접 선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 열정과 하나님에 대한 순수성이 급격히 사라져가는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 더 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해외 선교보다 국내 목회 사역에 초점을 맞췄다.

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그해 8월 선교에 관심 있던 장로님 한 분과 함께 교회의 허락을 받아 2개월간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순회했다. 상심리교회가 선교현장 상황을 바르게 파악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인도차이나반도를 돌아본 것이다. 고 선교사는 세 차례 선교 리서치를 다녀온 캄보디아 선교사의 요청에 순종해 2014년 5월 파송 선교사가 됐다.

고 선교사는 지난해 교회가 마련해준 부지에 교회와 선교센터를 건립했다. 성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복음 전도사역과 NGO 사역을 병행하면서 캄보디아의 다음세대를 복음으로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상심리교회 청년들이 2018년 8월 캄보디아에서 어린이 초청 전도집회를 개최한 모습.

상심리교회는 ‘하늘 마음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상심리에 있다. 116년 역사를 갖고 있는데 1905년 권서인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면서 시작됐다. 곽안련 선교사가 초대 당회장이 돼 초창기 10년간 부흥 발전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양평 복음화의 전초기지로서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있다.

담임 한종환 목사는 “상심리교회는 선교사가 세운 교회로 선교중심적 교회가 돼야 한다는 소명이 있다”면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선교적 소명에 따라 초교파 연합으로 세워진 ACTS가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상심리교회와 함께 선교 비전을 나누고 함께 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한 목사는 “ACTS에서 공부하는 신학생에게 교회 나눔관과 봉사관을 개방해 거주할 수 있게 하고 새벽기도 훈련과 사역자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초대교회 선교공동체의 삶을 경험하도록 돕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이어 “외국인 학생들이 명절 고국이 그리울 때는 초청해 식사도 함께했다”고 말했다.

상심리교회는 선교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교회 사명을 지키기 위해 재정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선교에 사용하고 있다. 해외선교뿐 아니라 북한선교에 관심을 갖고 통일한국을 준비하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 은퇴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하늘동산’도 마련했다.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영어공부를 접목해 다른 지역 어린이들이 상심리교회에서 예배하고 말씀으로 훈련받을 수 있도록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상심리교회는 매년 2명의 ACTS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곽안련 선교사처럼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 차세대 선교 리더를 세우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 5개국 선교 향한 비전을 키우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ACTS(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출신 교회 지도자들] 

<5> 인천교회가 후원한 에티오피아 인드리아스 목사

입력 : 2020-04-20 00:02
인드리아스 목사가 지난해 1월 에티오피아 남부지역에서 열린 기도콘퍼런스에서 1000여명의 성도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여년간 에티오피아 교회 사역을 해온 인드리아스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선교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해 구원받은 그는 교도소에서 다른 아프리카 목회자들과 수감생활을 하던 중 전임사역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인드리아스 목사는 2010년 케냐 북동부지역 이시올로 마을을 방문했다가 소말리 부족을 만났다. 그곳에서 소말리 모슬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봤고 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시올로 마을의 소말리 삼부루 투르카나 보란 메루 부족에게 복음을 전했고 5년간 사역해 5개 교회을 세웠다. HAEMS(Harvest Africa Evangelical Mission Seminary)라는 제자훈련을 3년간 매주 토요일 진행한 결과 23명의 교회개척자와 목회자가 배출됐다.

사역이 점차 확장되자 인드리아스 목사에게 새로운 기도 제목이 생겼다.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지부티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로 HAEMS 사역을 확대하려면 선교학 공부가 절실했다. 그는 길을 열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한국의 ACTS를 알게 됐다. 10년이 지난 2015년 선교학·신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인드리아스 목사는 “ACTS에서 선교학·신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아프리카 5개국을 향한 선교 비전을 구체화했다”면서 “무엇보다 영적 멘토로서 아버지처럼 지도해준 정흥호 총장의 도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가 품은 아프리카 5개국 비전은 정 총장을 통해 인천교회 김진욱 목사에게 전달됐다. 김 목사는 인드리아스 목사가 방학 때마다 본국으로 돌아가 사역하면서 선교학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김 목사는 “인드리아스 목사를 만나 소말리아 모슬렘을 향한 선교비전을 나누고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5개국을 향한 사역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면서 “그가 사역하던 이시올로 마을에 센터를 세우기 위해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 건축비를 후원했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북동쪽으로 300㎞ 떨어진 소말리아 국경지대에 있다.

인천교회는 재정의 40%를 해외 선교에 투입하는 선교중심적 교회다. 김 목사는 1992년 ACTS에서 신약학 전공으로 신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선교 도전을 받고 선교적 교회를 꿈꾸기 시작했다. 선교지에 100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는데 지금까지 75개를 세웠다. 인천교회는 국내 8개 교회와 해외 21개국 32명의 선교사를 후원하는 선교적 교회의 모델로 손꼽힌다.

김 목사는 사회복지법인 아담의 이사장이며, ACTS 선교학 연구교수를 겸하고 있다. 인천교회에 부임해 28명의 성도와 함께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선교적 교회를 추구하다 보니 중대형 교회로 부흥했다.

복지와 선교라는 두 축을 갖고 선교적 목회를 하는 김 목사는 드로모스선교회와 ACTS 세계지역연구소 산하 오아시스연구원 이사장으로도 활동한다. 드로모스선교회는 선교사 파송, 교회·학교 설립을 목표로 하며 단기선교 지원 및 선교사 파송을 한다. 오아시스연구원은 2024년까지 아라비아반도에 20가정을 파송하고 문화원 설립 및 긍휼 사역을 통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회는 또 중증장애인생활관, 노인생활관 등 복지관 3개를 운영하며 인천지역 사회봉사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김 목사는 구원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구원의 확신’이라는 책도 썼다. 이 책은 영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 터키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돼 복음 사역에 활용되고 있다. HAEMS 사역을 위해 아프리카어로도 번역 중이다.

2018년 7월 에티오피아 성도들에게 강의를 하는 김진욱 인천교회 목사.

김 목사는 “100개의 해외교회를 세우는 운동은 중앙아시아를 시작으로 아시아와 중동지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면서 “요즘은 아프리카의 튀니지와 모로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년 중 6개월 이상 선교지를 발로 뛰며 선교지 상황을 살핀다”면서 “소말리아와 에리트레아 선교를 놓고 기도하던 중 정 총장을 통해 인드리아스 목사를 만나 선교현장을 섬기게 됐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기쁘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아프리카 현지를 방문해 HAEMS 신학생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인드리아스 목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복음의 불모지인 아프리카 모슬렘을 향한 선교 열정을 실천하고 있다.

인드리아스 목사는 “인천교회의 후원으로 선교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방학마다 사역지에서 현장실습을 통해 선교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선교자원이 ACTS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라면서 “교회의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선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론 마틴 목사(가운데)가 2016년 7월 방학 기간 인도를 방문해 지역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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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방학 기간 인도를 방문해 지역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복음봉사단은 1969년 11월 11일 11시 한양교회에서 애국지사 신의경 권사가 주도해 설립한 기독교 여성 봉사단체다. 2012년부터 신 권사의 딸인 박문희 권사가 이사장을 맡아 대를 이어 세계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매월 열리는 기도회에는 90여명이 참석해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한다. 80대 권사들이 주로 참여하는데, 최고령 회원은 95세 권사다.

박 권사는 한국인 선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후원했던 봉사단의 정책을 선교지 목회자 후보생들이 한국에 와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현지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으로 변경했다. 지난 30년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교회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힘썼다. 올해 1학기만 해도 2명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3명의 신학생에겐 소액 장학금을 후원했다.

한국여성복음봉사단이 후원한 대표적 목회자는 인도 출신인 아론 마틴 목사다. 마틴 목사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으며 청소년 시절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뒤 사역자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했다. 현지 신학교를 나온 마틴 목사는 인도복음교회(Evangelical Church of India)에서 7년간 목회했으며 마드라스신학대학원에서 5년간 교수로도 사역했다. 주로 고아와 노숙자를 위한 사역을 펼쳤다.

그는 ACTS 출신인 오네시무 마드라스신학대학원 총장의 추천으로 ACTS에서 구약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마지막 논문 학기에 있는 마틴 목사는 “박사과정을 마치면 인도로 돌아가 매년 15명의 학생을 후원하며 인도 교회지도자로 세우고 10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할 것”이라며 “ACTS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한국여성복음봉사단 어머니들이 사랑으로 기도해주셨듯이 인도 거리에 방치된 어린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문희 한국여성복음봉사단 이사장(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해 11월 마틴 목사(오른쪽 두 번째) 등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후원 신학생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Copyright@국민일보 박문희 한국여성복음봉사단 이사장(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해 11월 마틴 목사(오른쪽 두 번째) 등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후원 신학생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그는 지난 학기 논문을 마치지 못해 이번 학기에도 한국에 머물고 있다. 한국여성복음봉사단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저보다 어려운 다른 학생을 후원해달라”고 해서 봉사단 관계자들이 감동했다.

마틴 목사는 “ACTS는 학문적인 공부 이상으로 자신이 처한 사역지 상황에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을지 끊임없이 해답을 찾도록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여성복음봉사단이 세계선교를 위해 뿌린 씨앗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라고 평가했다. 마틴 목사는 “인도에서 여성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리아처럼 기도만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면서 “반면 봉사단은 기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에 인도 신학생 입장에서 더욱 인상이 깊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 기독 여성들도 한국의 기독 여성처럼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한국여성복음봉사단의 선교 정신과 활동을 전수하고 싶다”고 했다.

신 권사가 ACTS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4월 19일 한철하 박사 초청으로 외국인 학생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면서부터다. 신 권사는 이후 ACTS 선교의 밤에 다시 초청돼 장학위원으로 피선됐으며 그때부터 선교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박 이사장은 “신 권사가 한 박사와 뜻을 같이하면서 한국여성복음봉사단과 ACTS가 해외와 국내 선교의 동반자가 됐고 40년 넘게 협력·연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봉사단 회원들이 어머니의 심정으로 ACTS 학생들을 사랑하고 돌봤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각국에서 온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게 복음봉사단 회원들의 임무인 줄 알고 정성껏 섬겼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회원들은 집으로 학생들을 초청해 선물도 주고 식사도 대접했다”면서 “열대지방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에게 강추위가 시작되는 성탄절에 맞춰 내복과 이불 등을 일일이 준비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여성복음봉사단과 ACTS의 긴밀한 관계는 학교 설립 초기부터 이어졌다. 설립 때는 부지를 마련하는 데 사용하라며 2000만원을 후원했다. 당시 공무원 평균 월급이 4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거액이다.

1978년부터 2005년까지 봉사단이 장학금을 지급하며 후원한 외국인 학생만 해도 인도 7명, 인도네시아 4명, 미얀마 3명, 네팔 2명, 탄자니아 2명, 파키스탄 2명, 나이지리아 러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사모아 수단 스리랑카 우간다 이집트 일본 케냐 태국 필리핀 각 1명씩 총 33명을 후원했다.

박 이사장은 9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선교 열정으로 소명이 넘친다. 그는 “한국여성복음봉사단의 선교 헌신이 한국교회에 귀감이 되고 선교의 열정이 다음세대에도 전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발간된 ‘한국여성복음봉사단 50년사’는 봉사단이 펼쳐온 감동적인 선교 활동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