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차례
디도서 1장 (1 ~ 3)
(1) 바울의 사도직(디도서 1:1-4)
(2) 장로와 감독의 자격 요건(디도서 1:5-9)
(3) 할례당의 거역(디도서 1:10-16)
디도서 2장 (4 ~ 5)
(4) 각 계층에게 주는 교훈(디도서 2:1-10)
(5) 은혜를 주신 목적(디도서 2:11-15)
디도서 3장 (6 ~ 8)
(6) 목회자의 권위(디도서 3:1-2)
(7)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디도서 3:3-7)
(8) 미쁘신 하나님의 은혜(디도서 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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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장
◆ 밤중소리 11-06 | VIEW : 3,261
(1) 바울의 사도직
(디도서 1:1-4)
디도서는 디모데 전 . 후와 함께 바울의 목회 서신으로 불려지는 성경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서신이 디도서의 내용입니다. 디도는 헬라 사람으로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50년경 예루살렘 총회에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갈2:1-5). 또한 디도는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이후 바울과 계속 동행했으며 바울에 의해 고린도에 파송된 일도 있었습니다(고후7:6 ; 8:6).
디도는 바울에게 있어서 참아들, 동무, 동역자라고 불려질 정도로 바울의 사랑과 신임을 받은 충성된 일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서가 기록된 정확한 연대나 장소에 대하여는 아직 밝혀진바 없지만 주후 66년 초에 디모데 전서가 기록된 곳인 마게도냐에서 써서 보낸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본 디도서의 주제는 '선한 생활'이라고 보겠습니다. 본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생활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
사도 바울은 1절에서 자신의 직분을 두 가지 견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고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는데 종이란 말은 소유물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피로 값 주고 사셔서 그의 소유가 되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종이란 말은 죄의 종이란 말과는 전혀 개념이 다른 의미의 말입니다. 여기서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란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로운 신분을 의미합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자세에 대하여 인간사회에서의 주인과 종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란 할 일을 다하고도 '나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란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자세로 이에 대하여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은 주인에게 '나에게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는 자세로 주인의 뜻을 기다리며 그 뜻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란 말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사도란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일꾼이란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니'란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가 복음의 일꾼으로 일한다면 그 일꾼으로 보내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2.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
바울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일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1절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자들의 믿음은 반드시 사람에 의하여 전달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의 경우에 그의 부르심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보아야 합니다. 초기 교회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계시로 받은 서신은 오늘날 성경으로 수많은 인류들에게 읽혀져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한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이같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확신하고 이런 소명에 의해 복음의 일꾼으로 충성한 것입니다. 다음 둘째로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이란 말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애를 말합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를 바울을 통해서 배운 바가 많은 것입니다.
다음 2절에서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시려는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생은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받은 영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에 대하여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정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실 때에 그의 말씀으로 그가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결론 : 바울 한 명의 존재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이처럼 크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바울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나에게도 동일한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말하기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종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적인 사명을 가진 일꾼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장로와 감독의 자격 요건
(디도서 1:5-9)
교회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직분의 이름도 약간의 변경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여러 가지 직분으로 불려지지만 그 당시에는 교회를 관장하고 지도하는 직분자로 장로와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장로와 감독이 구분해서 불려지지만 실인즉 이 두가지 직분이 구분 없이 같이 사용된 동일한 직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장로의 자격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란 곳에 떨어뜨려 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와 함께 이곳에서 교회를 섬겼었는데 바울은 떠나고 디도만을 그곳에 남겨 두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에 대하여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디도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1) 책망할 것이 없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행위가 온전하여 흠을 잡힐 만한 점이 없는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2)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남성 우위 사상으로 축첩을 다반사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로가 되려면 한 아내의 남편으로 여자 문제에 있어서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합니다.
(3)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로는 자기 집안을 믿음으로 다스려 그 가정의 자녀에 이르기까지 신앙적 본이 되는 가정이라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2. 감독의 자격
다음 감독의 자격에 대하여 바울은 7절 이하에서 몇 가지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먼저 감독은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청지기란 다른 집 살림을 맡아 주관하는 사람으로 그 집의 종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2)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소유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의 뜻을 받들어 그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3) 급히 분내지 아니하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분은 분쟁과 다툼을 가져옵니다. 특히 급한 분노는 이상을 잃게 하고 당장에 죄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하게 하는 것입니다. 잠29:22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 함이 많다'고 했습니다. 가인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분하는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뇨'하고 책망하셨습니다.
(4) 술을 즐기지 아니하는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술은 즐기는 사람들이 마시기 때문에 이 말씀은 술을 관습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은 감독의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5) 구타하는 사람은 감독의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때리는 일은 자기 아내이건 자기 자식이건 이웃이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6) 다음에 감독은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러운 이란 부당한 방법으로 얻는 이득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얻는 이익, 저울을 속이는 일,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일 등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8절에서 감독될 사람의 적극적인 면을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감독에게 이런 자질을 가져야 할 이유에 대하여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감독은 교회에서 바른 교훈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하는 입장에서 교회를 다스릴 사람들입니다. 이런 위치에 있을 사람이 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지 못하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신앙적인 지도를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권면할 수 있을 것입니까? 또한 감독은 교회에서 '거슬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입장에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들로 그 당시 여러 교회에 이같은 거짓 선생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책망하여 다른 사람들로 이들의 미혹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살필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올바른 교훈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장로나 감독은 교회를 지도하고 가르치며 관장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이 진실하지 못하고 성실하므로 교회를 섬기지 못한다면 교회는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들의 지도자를 선출할 때 이런 자격자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3) 할례당의 거역
(디도서 1:10-16)
초대 교회에서 말썽을 부린 무리들이 교회 안에 들어온 할례당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하면서도 복음의 가장 큰 원수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걸림돌이 된 자들입니다. 할례당 이란 교회 안에 있는 할례주의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바울을 가장 괴롭혔습니다.
1. 할례당의 신앙
할례당이란 교회 안에 있는 일종의 율법주의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복음과 율법을 접목시켜 하나의 기형적인 기독교를 형성하여 복음의 길을 막고 교인들에게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지게 한 것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교리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예수를 믿지 않고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을 받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할례당의 기원은 복음 초기로부터 있었으며 예루살렘 교회 안에도 이 세력이 만만치 않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 대해 다른 복음이라고 정죄하면서 결사적으로 투쟁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로 규정하고 다른 복음을 없다고 단언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으라고 선언했습니다. 행15:5-11( ). 바리새파 중에 믿는 자가 많았는데 그들이 주장한 바를 보면 '이방인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사도들 앞에서 강변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도처에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만 안식일을 지켜야 온전한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안식 교도들이 그들입니다. 안식일의 규례는 분명히 율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말은 바울 당시 바울을 괴롭히고 교회를 어지럽히며 복음의 장애물이 되었던 율법주의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에 대하여 바울은 10절에서 '복종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진리를 거역하며 복종치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하여 바울은 헛된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안식일, 음식 문제, 장로의 유전 등으로 헛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속임수의 수법을 쓴다고 했습니다. 이런 비복음적인 주장은 진리를 속이는 일입니다. 14절을 보면 이들은 허탄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허탄하다는 말은 아무 쓸모 없는 이야기란 뜻입니다. 구원이나 믿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하여 진리를 배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지만 사실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며 이들을 영적으로 조종하는 자는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11절에서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친다'고 했습니다.
2. 음식 문제
바울은 15절에서 음식 문제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지라'고 말씀해 줍니다. 바울의 이 말은 할례당이 비단 할례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음식 문제까지 율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바울은 깨끗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말로 음식 문제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깨끗한 자란 말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목욕을 한자들을 말하며 이 사람은 중생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들은 깨끗해졌으니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양심과 마음이 이미 더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모두 선합니다. 율법에서 음식을 구별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성별 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열에 들어 왔으며 모두 깨끗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율법에 나오는 음식 문제는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복음의 진리를 믿지 않고 복음을 거역하는 자들은 실인즉 믿지 않는 자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구원의 도리를 대적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 오늘날에도 이같은 할례당이 존재합니다. 복음에 무엇인가 꼬리를 부치는 자들이 그들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행위로는 불순종하는 자들이 이들입니다. 진리에 서서 복음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디도서 2장
(4) 각 계층에게 주는 교훈
(디도서 2:1-10)
바울은 디도에게 목회자로서 교회 안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교훈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고 명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진리에 합당한 말로 교훈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레데 교회 안에 있는 각계각층의 성도들에게 교훈해 주어야 할 바를 자세히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1. 늙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교훈
먼저 늙은 남자들과 여자들에 대한 교훈을 들려주면서 늙은 남자들에 대하여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라'고 했습니다. 늙은 남자들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일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해이해 지면서 절제 생활이나, 경건 생활, 근신 생활에 등한히 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경주장은 쉬는 일이 없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일에 끝까지 달려가야 면류관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온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겉 사람은 쇠하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몸은 비록 늙어 가지만 신앙의 열매는 온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시73:26절에서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고 했습니다. 시92:14절에서 의인은 종료나무 같아서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한편 늙은 여자들에 대해서는 3절에서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행실이 거룩하라고 했습니다. 늙었다고 해이한 생각으로 흐트러진 생활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행실이 누구에게도 책잡히지 않도록 복음에 합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소치 말라고 했습니다. 대개 늙은이들이 주책 없이 남의 말을 이리 전하고 저리 전하여 상처를 입히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참소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술을 즐겨 마시는 술의 종이 되지 말고 오히려 선한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서 본을 보여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늙은 성도들은 대개 권사의 직분을 가지고 오랜 신앙생활의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 여자들을 신앙적으로 잘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로 자기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게 하며 근신하며 순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도록 교훈 해 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이처럼 말하는 것으로 보아 디도가 목회 하는 그레데 교회의 젊은 여자들의 신앙생활이 대단히 어린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런 생활은 주변의 불신자들로부터 비방을 받아 왔기 때문에 그런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 이런 교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5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2. 젊은 남자들에 대한 권면
바울은 6절 이하에서 젊은 남자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근신하는 생활이란 절제 생활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에나 행실에나 생활에 절제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제의 굴레를 벗으면 그의 인격이나 그의 생활이 방종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생활 전체가 헌신이어야 하며 그 생애 전부가 하나님께 봉헌되어야 합니다. 그의 전 생애가 쉴 새 없는 목회의 연속인 것입니다. 선한 일의 본을 보이는 생활은 어느 한정된 시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함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3. 종들에 대한 권면
다음에 바울은 9절 이하에서 종들에 대해 말씀해 줍니다. 그 당시 교회에는 하층 계류의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종들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종들은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전에게 거슬려 말하지 말고 즉 대항하지 말고 떼어먹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디도에게 교훈하는 이유는 범사에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교훈을 욕되게 하지 말고 복음의 빛을 가리우지 말고 오히려 복음의 진리를 빛나게 하기 위해 모든 일에 근신하며 모범적으로 생활해야 할 것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5) 은혜를 주신 목적
(디도서 2:11-15)
바울은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우리의 생활로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을 이루게 하며 복스러운 소망을 가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1. 성도들을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비단 구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가 구원을 주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신앙적으로 양육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도덕 율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랑의 계명이라고도 합니다. 이 사랑의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모든 율법적인 계명보다 더 온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인 들이 이 계명을 이루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사랑의 도덕율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도덕적 생활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율법을 준수하려는 생활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이런 생활과는 근본적인 두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생활은 그 순종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이 지키는 도덕적 생활이나 준법 정신 혹은 율법적 생활은 사회 질서 유지나 자신의 명예 또는 극기 생활,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생활은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생활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빌1: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선한 생활을 이루는 원동력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있으며 이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나타남이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역사를 하시는가?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생활에 어떤 역사를 이루게 하시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해 줍니다.
(1) 경건치 않은 것을 버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일이나 은밀한 부끄러운 일, 하나님 섬기기에 지장이 되는 일 등을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점점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은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 입었기 때문입니다.
(2) 이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정욕이란 육신의 유익을 도모하려는 육의 일입니다. 이런 것의 열매는 썩어질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성령께서는 이런 정욕을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3)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살아가게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부르시지만 항상 죄 가운데 사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사유해 주시지만 의의 열매가 없는 사람을 결코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은 우리로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게 하심이 아니요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시키시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가 자신을 주신 이유
바울은 14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유해 주시고 의롭다 하심을 주시며 거룩한 백성으로 인 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열심 있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 의의 생활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 바울은 디도에게 15절에서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말하는 것은 설교로 깨우쳐 주라는 것이고 권면하라는 말은 생활에 적용시키도록 하는 실천적 생활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고 했습니다. 주의 권위로 책망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신 일이 우리들로
하나님 앞에 선한 일에 열심 있는 백성이 되게 하심에 있다는 이 사실을 명심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디도서 3장
(6) 목회자의 권위
(디도서 3:1-2)
바울은 디도에게 권위를 가지고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고 엄히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에게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칠 일에 대하여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몇 가지 일
첫째로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그 나라의 법을 존중하게 하고 권세를 잡은 자들에게 복종히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권고는 바울의 서신에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그 같은 다스림과 복종은 하나님이 정하신 바이기 때문이며 또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자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의미에서의 사자인 것이 아니라 불신자일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각기 분야에 소임을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사자란 명칭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일은 빛으로 나타납니다. 빛이란 말과 선한 행실이란 말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마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목자는 성도들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권면 해야 하며 또 일거리를 줄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아무도 훼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훼방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헐뜯어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같은 일은 시기 모략으로 성도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삼가야 할 처신인 것입니다. 출23:1절 말씀을 보면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모함하여 비방하는 일은 가장 악랄한 인격의 소유자나 할 수 있는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성경에서 정죄하는 가장 무서운 훼방이 성령의 훼방인 것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금세나 내세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주님이 경종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요 구원의 바른 도리인 줄 성령의 끊임없는 감동을 받으면서도 악의적으로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이들에 속합니다. 훼방의 전문가는 마귀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계13:6절 말씀에서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구제 받을 길이 없는 저주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훼방하지 말아야 하며 또 아무에게서도 훼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나타내라
네 번째로 '다투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투는 일은 둘 다 망하는 일입니다. 잠17:14절에서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방축에서 물이 계속 새면 결국 그 방축이 터져 물에 휩쓸려 버리는 것입니다. 잠10:12절에서는 다툼은 미움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잠18:6절에서는 미련한 자들이 다툼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이 다투기 시작하면 사랑이 깨어지게 되고 그 다툼이 계속되면 결국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분열이 생기고 분열이 계속되면 교회가 갈라지거나 문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나 정당간의 분별없는 다툼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게 되며 혁명을 초래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다툼은 시기와 교만과 무지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툼을 피하려면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신앙생활의 비결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혹 반대 의견이 있을 때에라도 다투지 말고 서로 존경하며 이해하는 가운데 의견을 상충하여 좋은 결론을 추출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관용하라'고 했습니다. 관용이란 말은 너그러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마음과 죄를 용서해 주는 마음이 관용하는 마음입니다.
관용이 많은 사람은 큰그릇이 될 사람이요 관용이 적은 사람은 적은 그릇이 될 사람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만 좋아하고 허물을 끄집어내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이란 부드러운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마음은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인데 이런 마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 남을 섬기는 사람, 분을 내지 않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결론 :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많습니다. 이 열매를 내가 어떻게 맺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힘으로 하려고 하다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뢰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만이 이런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위해 늘 기도하고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7)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디도서 3:3-7)
바울은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명 깊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이전 우리의 생활이 어떠했는가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다'고 말씀해 주면서 이런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란 말은 우리에게는 구원을 받을 만한 아무런 선이나 의가 없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 같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긍휼이나 구원을 받을 만한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용납 하시여 불쌍히 여기심으로 구원을 주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구원을 주셨다면 그것은 은혜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바울은 롬4:4절에서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이전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전에는 어리석은 자였다고 했습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견해입니다. 우리는 그 때 하나님을 부인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십자가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세상일에만 열심을 냈습니다. 이런 일들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2) 순종치 아니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그 아들을 대적했으며 그 아들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일은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일입니다.
(3) 속은자였다고 했습니다. 사탄의 미혹에 속은 자였습니다. 죄에 속아 살았고 지옥으로 달려가면서도 그것을 행복으로 속아 살아 왔으며 돈을 하나님으로 알고 살아온 것입니다.
(4) 다음에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였다고 했습니다. 육신이 시키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는 생애를 살아온 것입니다. 향락이 인생의 최고의 행복 인줄로 알고 그것을 따라가며 살았습니다.
(5) 악독과 투기로 지낸자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 시기, 모략, 싸움질, 미움 등으로 얼룩진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6) 가증스러운자였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외식하는 자처럼 속 다르고 겉 다른 자의 생활을 해 왔으며 그 마음이 만물의 찌끼보다 더 추하고 더러웠습니다.
(7) 피차 미워한 자였다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화합하는 일을 못했습니다. 서로간의 적은 이해타산을 가지고 마음으로 살아 왔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원수처럼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이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2.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구원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5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행한바 의로 한 구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의를 행하여 의인이 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우리의 구원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좇아 이루어졌다고 말씀해 줍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된 처지에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은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감정으로는 이해할 길이 없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어찌 큰지 독생자까지 보내시어 그의 진정한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어 증거 하셨습니다.
바울은 5절하 반절에서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중생의 씻음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가 어떻게 씻음 받았는가에 대한 해답입니다. 중생의 씻음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우리의 죄를 사유하여 주신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내주 하심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살리심으로 새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심으로 이 은혜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 영생의 소망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깨닫는 일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8) 미쁘신 하나님의 은혜
(디도서 3:8-15)
바울은 8절에서 '이 말이 미쁘도다'고 감격의 탄성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이루신 이 말이 참으로 믿음직하다는 것입니다. 미쁘다란 말은 믿음직스럽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도에게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 여러 것이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 일에 대하여 굳세게 말해야 합니다. 굳세게 말하라는 뜻은 담대하게 말하여 믿음에 흔들림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1. 이 말이 미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많은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의 선이나 의를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셨으니 이런 복음의 소식은 얼마나 미쁘신 말씀이냐고 감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의 소망을 얻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나 영생의 소망이 절대로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 의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서 나올 수 있는 소망도 아닌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나온 것이어서 나는 다만 그것을 선물로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선물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는 일입니다. 그 선물을 경히 여겨 잊어 버리거나 소홀히 알고 경망스럽게 취급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귀중히 여겨 끝까지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있는 선물인 것입니다. 이 은혜를 힘입어 살아갈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명령한 것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2.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조심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 행실, 몸가짐, 마음 가짐에 절제하고 근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선한 일을 힘쓰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선한 일에 힘써야 하며 목회자들은 성도들로 항상 선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힘쓸 수 있도록 말씀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헛된 일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 헛된 일에 대하여 몇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1) 어리석은 변론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변론은 곧 다툼과 영결되기 때문에 덕이 따르지 않고 유익이 없습니다. 결국은 철학적 논쟁이 되고 말쟁이들의 다툼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족보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족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늘의 족보가 중요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율법에 대한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할례당이 등장하여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음식 문제로 왈가왈부했습니다. 안식일 문제로 다투었습니다. 절기 문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문제 등으로 교회를 소란케 하였습니다. 이런 다툼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장차 나타날 일에 대한 그림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 성취된 것들입니다.
3. 이단자들에 대한 태도
바울은 10절 이하에서 이단자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성경 토의를 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훈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계속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두 번 한 후에 멀리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단자들은 우리의 형제들이 아니기 때문에 가까이하면 안됩니다. 이런 자들은 부패해 진다고 했습니다. 거짓 진리는 우리의 생명을 죽이기 때문에 부패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정죄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정죄에 이른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탄의 함정에서 돌이키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더러운 누룩 같습니다. 우리는 그 누룩이 혹 내 심령에 떨어질까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2서1:10절에서 이단자들에 대하여 집에 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론 :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순종하고 선한 일에 힘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뢰해야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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