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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교회(Sardis church) / 계시록 일곱교회[성화사랑]

영국신사77 2020. 4. 2. 22:21


성화사랑 2013.08.02 20:13

 

사데 토몰루스 산 요새                     (출처-cafe.daum.net/wansu63/1rUS/521 

 

고레스왕은 사데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크로이수스와 사데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문제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트몰루스산에 숨어있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데사람들을 가리키며 고레스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은 살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목숨이다.” 고레스는 14일간을 포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다음에“사데성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특별상을 주겠다고 했다. 어느 날 히에로에데스(Hyeroeddes)라고 불리는 한 군인이 사데성의 발포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사데 군병의 한 명이 실수하여 자기 철모를 성벽 총구 너머로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찾으려고 절벽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히에로에데스는 그 곳에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면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틈바구니가 바위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일단의 페르샤 군인들이 그 바위의 갈라진 틈바구니를 통해 사데성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발포대 위에 도달했을 때 그 곳에는 보초병 하나 없었다. 사데 사람들은 발포대에 보초가 깨어서 경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다 잠자고 있다가 사데는 함락된 것이다.. 

 

사데교회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사데는 사르디스라 하며 현재명은 살리히리이다. 사데 교회는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클레멘트’가 처음 사데 교회의 감독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데 교회는 이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크게 부흥했다가 나중에는 쇠퇴하게 되었다. 사데 교회의 영적인 상황은 서머나 교회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서머나 교회는 처음 시작은 미약했으나 차츰 영적으로 살아나 나중에 번영하는 교회인데 반해, 사데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 같이 뜨겁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 죽어가는 교회가 되었다. 주님은 순교하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던 교회가 이제는 몇 명 되지 않는 성도만이 남은 것을 상기시키면서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데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왜 그들은 처음의 그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사데 지역의 부유한 환경 때문이었다. 금화가 풍부한 세계적인 무역 도시요, 신전이 많은 도시여서 항상 축제가 있었고 미녀들과 오락이 있던 도시였다. 그러한 세상의 화려함 속에서 성도들은 나태해져서 쾌락을 추구하게 되고 신앙은 서서히 그 자리를 잃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에게 신앙을 버리게 하는 것은 돈과 쾌락과 권력이다. 사데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은 바로 죽은 신앙이었다. 사데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죽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돈을 사랑함과 세상을 사랑함에 있었다.

 

사데교회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사데교회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사데교회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사데교회                           (출처- http://blog.daum.net/leesungkook/154)

 

사데교회                           (출처- cafe.daum.net/jnseo/W1ZQ/23 )

 

사데교회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 http://blog.daum.net/leesungkook/154

 

사데에서는 지모신인 키벨레 여신을 숭배했다. 키벨라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Artemis여신과 같은 신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사모스, 에베소, 디딤에 있는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엄청난 규모로 지어졌다. 사데의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은 기원전 300년경 지어졌는데, 이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은 4번째로 큰 이오니아식 신전이었다. 신전의 안쪽 길이는 68m, 폭은 23m였으며, 68개의 원기둥을 새로 만들어 신전을 둘러쌌다. 주후 17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신전이 파괴되었을 때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138~161년) 보수를 했으며, 자신의 아내인 파우스티나Faustina가 죽자 그녀를 신격화 하여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신전의 기단은 제대로 남아 있어서 당시의 신전 규모를 실감할 수 있으며, 약 18m 높이의 이오니아식 원기둥 2개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주전 330년대 알렉산더대왕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된 이 신전은 ‘다산(多産)과 풍요의 여신’을 위한 것이었다. 전면의 폭이 50m, 길이가 100m, 78개의 석주가 늘어선 웅장한 규모이다. 지금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석주들이 도열해 있고 특별히 이오니아식의 석주 두 개가 18m나 되는 높이로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채 남쪽 끝 부분에 남아 있다

 

아데미신전                (출처-cafe.daum.net/wansu63/1rUS/521)

 

사데교회, 아데미신전               (출처- http://kjha0921.blog.me/100174613926

 

사데는 헬라어로 ‘남은 자’또는 ‘남은 물건’이란 의미이다. 사데는 ‘이즈밀’에서 ‘아피온’으로 가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팍토루스라는 작은 강이 흐르고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데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다. 주전 700년경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왕국이 바로 리디아 왕국이었다. 리디아 왕국이 세계사에서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금과 은으로 만든 동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당시 리디아보다 문명이 앞서 있던 히타이트나 이집트에서도 동전을 만들어 사용하지는 않았다. 리디아 왕국의 동전에는 사데의 왕위 표시인 사자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53대 37의 구성 비율로 은과 금을 섞은 호박 색깔의 동전을 주조했다. 리다아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크로에수스’는 순수한 금과 은으로 동전 지폐를 만들어 전 세계에 급속히 보급함으로써 부로 명성을 떨쳤다. 이 금화는 현재 ‘보즈산’이라고 불리는 트모루스 산에서 작은 ‘팍토루스 강’으로 흘러 내려오는 사금을 채취한 후 녹여 만든 것이었다. 그리스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Thales가 사데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 유명한 법률학자였던 솔론이 이곳을 방문하여 얼마 동안 살았다고 한다. 금화로 갑부가 된 ‘크로에수스’왕은 어느 날 법률학자 솔론을 불러 놓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하고 물었다. 지혜로운 솔론은 ‘왕이시여!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라.’고 말하지 않고, ‘인간의 행복은 죽을 때에야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기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크로에수스의 말년은 평온하지 못했다. 아폴로의 신탁을 잘못 해석하여 고레스 왕이 통치하던 페르시아 제국의 세력을 알아보기 위해서 페르시아 영토를 침범한 후, 더 큰 세력을 규합하고자 리디아로 돌아왔지만, 고레스 왕의 대군이 먼저 리디아 왕국을 공격하여 사데 밖에서 크로에수스의 군대를 무찌르고 도시를 포위해 버렸다. 남쪽을 제외하고 암벽으로 둘러싸여 난공불락이었던 사데 성을 포위한 페르시아 군은 두 주가 되어도 정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사데 성에도 헛점은 있었다. 사데 성의 남쪽은 가파른 절벽에 맞닿아 있었기에 천혜의 요새로 방어할 필요가 없는 지형이었다. 어느 날 이곳에 철모를 떨어뜨린 리디아 병사가 그것을 주우려고 바위 쪽으로 기어 내려오는 것을 페르시아 병사가 보았던 것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방비를 허술하게 했던 성 남쪽으로 페르시아 군이 쳐들어와서 결국 사데 성은 기원전 546년에 페르시아에게 정복되고 말았다. 페르시아 고레스 왕은 크로에수스를 산 채로 불에 태우라고 명령했다. 장작더미 위에서 크로에수스는 세번이나 솔론의 이름을 불렀다. 호기심이 생긴 고레스 왕은 솔론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크로에수스는 솔론이 사데를 방문한 아테네 사람으로 왕의 부와 번영을 가볍게 보는 사람이었으며, 오래 사는 것만큼 인간은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말을 해 준 사람이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고레스 왕은 장작더미 위에 있던 크로에수스를 풀어주고 자기 옆에 앉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크로에수스는 ‘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요?’하고 물었을 때, 고레스 왕은 ‘당신의 도시를 약탈하고 있고 당신의 재산을 가져가고 있다.’라고 대답하자, 크로에수스는 ‘이 성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제 내 것이 아닙니다. 당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고레스 왕은 ‘즉시 약탈을 중지하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그 후에는 버가모 왕국에게 그리고 로마에 의해 점령되었다. 기원전 17년에 일어나 큰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원조로 도시를 재건했다.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출처-cafe.daum.net/yYeongwol./NVtv/41

 

사데교회, 아데미신전               (출처- http://kjha0921.blog.me/100174613926)

 

사데교회, 아데미신전               (출처- http://kjha0921.blog.me/100174613926)

 

사데교회, 아데미신전               (출처- http://kjha0921.blog.me/100174613926

 


사데 허무스강

 

사데는 허무스(Hermus)강 계곡 평야의 한 복판에 있다. 그 평야 북쪽으로는 트몰루스(Tmolus)의 긴 산맥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산맥에서 여러 구릉과 작은 산들이 톱니바퀴살 같이 뻗어나가고 있다. 산 줄기들은 각기 좁은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의 사데는 이들 산줄기 중 하나의 위에 있었다. 고도는 450m였다. 그런 위치 때문에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산맥의 양측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벼랑과 트몰루스 산맥이 만나는 그 곳에만 사데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것 마저도 경사가 급하고 험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