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씨가 찍은 前대통령들… 박정희, 고독하면서도 섬세한 남자
전두환, 존경하기 보단 좋아할만한…
사진=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입력 : 2007.12.13 00:59 / 수정 : 2007.12.13 02:23
“이건 사진 만드는 기계가 아니라 매직 박스다.
이 매직 박스가 무슨 마술을 부리는지 방학 동안에 알아내라.”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 독일제 롤라이코드(Rolleicord) 카메라를 건넸다. 전쟁 끝난 1953년 여름, 아버지는 서울 을지로에서 하루 300그릇씩 곰탕을 팔았고 아들은 신나게 누항(陋巷)을 누비며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한강 얼음을 톱으로 쓱쓱 써는 얼음장수, ‘아이스케키’를 빨아 먹는 가족….
한국인 최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지(誌) 편집장을 지낸
사진가 김희중(67·미국 이름 에드워드 김)씨의 이력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근 낸 회고록 ‘집으로 가는 길’(한길아트)을 앞에 놓고 마주 앉은 김씨는어눌하지만 힘찬 말씨로
“나는 평생 인간의 삶에 관심이 있었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평생 사람을 찍을 거예요” 했다.
김씨는 회고록에서 간명한 문장으로1950년대의 서울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1960년 단돈 200달러를 들고 유학을 떠난 뒤
1985년 귀국하기까지의 악전고투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유학 첫 해에 그는 고독과 가난에 지쳐 모진 결심을 하고 손목을 그었다.간신히 살아나서 아버지에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애절한 편지를 보냈지만,
“네가 선택한 길이니 죽어도 거기서 죽으라”는 준엄한 답장이 돌아왔다.
대오각성한 김씨는 미주리 대학 언론대학원을 거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입사했고,
1973년 서방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28일간 북한을 취재해
미국 해외기자단 최우수 취재상을 탔다.
1976년 그는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급거 귀국했다.
황망히 집에 들어서니 푸치니의 아리아가 흐르고 있었다.
고인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주 세세한 유언장을 남기셨어요.
‘관(棺)은 시내에선 자동차로 운구하되
시외에선 꽃상여를 이용해라’는 식이었지요.
아버지는 중학교만 마친 분이에요.
인쇄소와 곰탕집을 하시면서도
서양 고전음악을 듣고 카메라를 다루셨어요.
자식들에게 ‘재물이건 지식이건
네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라’고 늘 말씀하셨지요.
인생을 엄정한 자세로 사는 분이셨어요. ”
김씨는 “내 인생과 사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바로 아버지”라고 말했다.
“사진은 무엇보다 삶을 담아야 합니다.
권력자들을 찍은 그의 후기작에선
이런 원숙한 통찰력이 물씬 풍긴다.
그는 담배를 피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흑백 사진을 들여다 보며
“고독하고도 섬세한 남자였다”고 평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에서는
‘존경할 순 없지만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조용히 스며 나온다.
대구 사진 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개인전도 하고 싶고, 찍고 싶은 것도 많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현역이에요” 했다.
- 12일 조선일보 미술관 뒷 뜰에서 사진가 김희중씨를 만났다. /최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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