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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김영훈] 불행한 결혼, 예측 가능할까

영국신사77 2019. 12. 25. 23:24

[청사초롱-김영훈] 불행한 결혼, 예측 가능할까

입력 2019-12-25 04:02      



“이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연애를 잘하고 있지만 결혼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혹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결혼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은 탓도 있지만,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에 결혼한 사람들만 봐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을 먼저 해 본 사람들과 결혼생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참고해 행복한 결혼의 조건들을 꼼꼼히 살펴본다. 경제적 능력과 외모를 넘어서 성격은 좋은지, 가정 환경은 화목한지, 결혼과 가정에 대한 태도는 합리적이고 건강한지, 과거의 연애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따져본다.

정말로 이러한 조건들이 미래의 결혼생활을 잘 예측할 수 있을까? 그런 조건들을 갖추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할까? 그 많은 조건 중에 더 특별히 중요한 조건들은 무엇일까? 아니면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만 머무르는 우려와 걱정일 뿐이고 결혼생활의 질은 그러한 조건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는 흥미로운 심리학 연구가 하나 있다. 이 연구는 로웰 켈리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것으로, 약혼 중에 있던 300쌍의 커플을 45년간 추적해 (결혼 전부터 결혼 후 노인 시기까지) 위에서 언급한 조건들이 결혼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했다. 45년간 진행된 연구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결혼 전의 배우자 특성으로부터 결혼 후의 삶을 예측했다는 점이다. 특별히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이혼을 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지, (나)이혼하지는 않지만 불행하게 사는지, (다)이혼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결혼 전에 측정한 각 배우자의 특성으로는 네 가지 성격 특질(신경증, 사회적 외향성, 충동 절제력, 원만성과 친화성), 가정환경(아버지의 관계, 어머니의 관계, 가정 화목 정도), 결혼에 대한 태도(성 역할, 성 평등), 과거의 연애 경험과 성 경험 횟수 등이 있었다. 또한 결혼 후에 처한 환경적 어려움이 결혼 전의 상황보다 결혼생활에 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각 배우자가 결혼생활 중에 겪은 어려움(경제적 문제, 실직, 질병, 외도, 임신, 건강 문제, 빚, 중독)을 조사했다.

이 수많은 결혼 전과 후의 조건들 중에서 결혼생활의 행복과 불행을 갈랐던 범인은 누구였을까? 어렸을 때의 가정환경이었을까? 결혼생활을 대하는 배우자의 태도였을까? 결혼 후에 처한 수많은 환경적 어려움이었을까? 범인은 다름 아닌 각 배우자의 성격적 특질이었다. 특별히 남편의 높은 신경증과 낮은 충동절제력 그리고 아내의 높은 신경증이 이혼의 주된 범인이었다. 하지만, 높은 신경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충동절제력을 지닌 남편은 불만스러운 결혼생활을 할지언정 이혼은 하지 않았다.

켈리 교수는 이 결과를 정리하며 높은 신경증은 결혼생활에 괴로움을 불러올 수 있고, 이 괴로움이 이혼으로 이어지는지는 (특히 남자의) 충동억제력 정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결혼 전과 후의 환경적 요인들은 사람들이 믿는 것만큼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결정한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성격 차이가 아니라 본인과 배우자의 특정한 성격 특질이 결혼생활에 고통과 아픔을 안겨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성격 특질이 결혼 전부터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낙담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한 상황과 환경만큼 성격 특질이 결혼생활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도리어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배려를 이끌어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지혜로운 대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김영훈(연세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