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남정미 기자의 정말] 겨울왕국1·2 감독 겸 작가제니퍼 리 디즈니 CCO
괴롭힘 당할 때마다 모험담 상상 - 안나처럼 나만의 이야기에 몰두
머리도 안 빗고 옷엔 얼룩 묻어있고… 완벽한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사람들 위로하는 얘기 쓰겠다 다짐 - 역경 속 인내하는 신데렐라 좋아해
언니는 책임감 강한 엘사 같은 존재… 나는 반대로 야생마 같은 안나
"학창 시절, 매일같이 다른 아이들이 놀렸습니다. 그때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는 신데렐라를 보며 견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신데렐라가 나를 위로한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쓸 거야.'"
그는 30여년 전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것도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넨 이야기로. 전 세계 역대 최고 흥행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1'이 그의 작품이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첫 여성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Chief Creative Officer). 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인수하면서, 공동 회장 아래 디즈니와 픽사 각각 1명씩 CCO를 두고 있다. 그중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놀림받았던 소녀. 겨울왕국1·2의 감독 겸 작가 제니퍼 리(48)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제니퍼 리를 만났다.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를 신고 한 방에 신분 상승한 얘기를 예상했는데, 그녀는 동화의 무대 뒤 이야기를 들고나왔다.
신데렐라
2014년 5월, 모교 뉴햄프셔 대학 졸업식 연설장. 겨울왕국으로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리던 그녀가 축하 연설의 영예를 얻었다. '겨울왕국1'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연단에 선 그녀는 어린 시절 당한 괴롭힘에 대해 말했다.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요?
"어릴 적 저는 매우 창의적인 아이였다고 생각해요. 저만의 이야기에 몰두했습니다. 겨울왕국의 안나처럼요. 그러면서 어수선하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고, 머리도 제대로 안 빗고 다닐 때도 있었어요. 이런 모습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놀림거리가 됐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고, 어머니는 두 딸과 로드 아일랜드주(州) 이스트 프로비던스로 이사했다. 동네는 부자였지만 제니퍼네 집은 가난했다. 머리는 엉켜 있고, 옷에는 늘 얼룩이 묻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녀를 밀치면서 지나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시작된 괴롭힘은 3년 내내 이어졌다.
―어떻게 극복했나요?
"엄청난 모험담을 혼자 상상했습니다.
정의가 승리하고,
온갖 역경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이 있는 모험담을요.
디즈니 만화, 특히 신데렐라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힘들 때면 매일같이 신데렐라를 보며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성장통을 겪는 이야기,
남과 달라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
두려움에 맞서는 이야기….
이 이야기들이 제가 힘들 때 힘이 돼 줬습니다.
나도 이렇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가 창작의 토대가 된 셈이군요.
"괴롭힘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
내면의 힘을 일깨워서 견뎌내는 것 등은
겨울왕국 안나 캐릭터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 경험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리(Lee)라는 그녀의 성씨는 한국에서 종종 한국계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 그녀는 미국인. 리는 그녀가 24세 때, 어머니의 처녀 적 성을 따서 바꾼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의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어머니입니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가 딸 둘을 혼자 키우셨습니다. 간호사셨는데, 생계 때문에 종종 투잡도 뛰셨죠.
그럼에도 저희를 위해서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셨습니다.
돈은 많이 없었지만, 집은 항상 책으로 가득했습니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저희에게 심어주셨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양육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싱글맘으로서 그렇게 해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믿음대로 두 자녀는 모두 대학원까지 마쳤다.
언니인 에이미는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영어 교사로 일한다.
그녀는 뉴햄프셔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 컬럼비아대학교 예술대학원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무척 공평하고 엄하셨지만,
또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믿어주셨습니다."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어릴 적 그녀는 ADHD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종종 말한다.
그러나 간호사이기도 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약물치료 대신 댄스 수업을 받게 했다.
그녀는 '어머니는 내가 단지 할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겨울왕국은 자매애가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제게는 언니가 엘사(겨울왕국 주인공) 같은 존재입니다.
책임감도 강하고, 모범생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훌륭한 본보기였습니다.
반대로 저는 야생마 같은 안나(엘사의 동생)였습니다.
성격은 정반대였어요. 언니가 저를 지켜줬습니다."
"각본팀 모두가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왕국은 디즈니의 전형적 동화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제가 겨울왕국 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크리스는
―여전히 신데렐라를 좋아하나요?
"디즈니 영화 중 가장 좋아합니다.
엄마 작가
시나리오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커리어 전환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책에 대한 애정으로 출판계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느낌은 적중했다.
―대학원에 다니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다들 아이가 태어날 때 '액션!'이라고 외치며 태어날 거라고 농담했습니다.
그녀는 컬럼비아 대학원 동기이자 디즈니에서 근무하던 필 존스턴과 인연으로
―최초 타이틀이 많습니다.
"미국 LA, 특히 할리우드의 분위기는 뉴욕 출판계와 전혀 달랐습니다.
실제 남가주대(USC) 연구팀이 2014년 할리우드 흥행작 100편을 분석한 결과,
"일로 보여줘야죠.
―동시에 10대 딸을 둔 엄마입니다.
"딸이 16세입니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나요?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대처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겨울왕국
―'겨울왕국2' 개봉으로 바쁜 일정 중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관객들은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실제 제니퍼 리를 비롯한
―어떤 면이 특별한가요?
"한국 팬들과는 동질감이 있습니다.
―CCO로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디즈니 사람들이 최대한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디즈니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최근 한국에서 이 프로덕션 베이비스가 화제가 됐습니다.
"디즈니는 '가족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를 최우선 가치로 삼습니다.
―어릴 때 디즈니를 보고 자란 세대가, 다시 디즈니를 보며 감동받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중에 다시 봤을 때도
―새로 준비하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당분간은 시나리오도 쉬고, 감독 일도 일단 그만하려고 해요.
―겨울왕국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겨울왕국2의 마지막 장면요.
그가 옆자리 디즈니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