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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개막식 날 기적처럼 풀린 한파… 롱패딩 벗어던졌죠"/평창조직위원장 이희범

영국신사77 2019. 1. 1. 00:05

"평창 개막식 날 기적처럼 풀린 한파… 롱패딩 벗어던졌죠"

조선일보


입력 2018.12.29 03:01

[2018 이 순간] [12·끝] 평창조직위원장 이희범

"개막식 전날 잠들기 전 하늘을 보면서 제발 도와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하루 전만 해도 영하 18도였던 기온이 개막식 당일 영하 11도까지 올랐어요. 물론 그 날씨도 추운 건 사실이지만 일부러 롱패딩을 벗어 던지고 개막식에 참석하는 오기를 부렸습니다. 날씨 문제 없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최근 서울 시내에서 만난 이희범(69)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얼굴엔 기쁨과 자부심, 그리고 아쉬움이 함께 묻어있었다. 그는 "평창올림픽 개막 직전까지 속을 태운 것은 숨죽이고 지켜봐야 했던 날씨였다"며 "그야말로 하늘을 믿고 치른 대사였기에 세상이 다 고마웠다"고 했다. 또 "김연아가 성화대에 최종 점화하면서 성화가 하늘로 불타오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고 했다. 그는 "2년여 조직위원장으로 나날은 겉으론 불도저 같은 인생이었지만 실제론 가시밭길이었다"며 "그래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은 큰 보람이었다"고 했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올림픽 당시를 회고하며 만감이 교차한 듯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 위원장은 “올림픽이 끝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올림픽에 대한 감동이 사라지는 듯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올림픽 시설에 대한 사후 활용에 정부가 좀 더 진지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올림픽 당시를 회고하며 만감이 교차한 듯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 위원장은 “올림픽이 끝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올림픽에 대한 감동이 사라지는 듯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올림픽 시설에 대한 사후 활용에 정부가 좀 더 진지한 노력을 했으면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남강호 기자
평창올림픽은 끝났지만, 조직위는 아직도 가동 중이다. 대신 한때 1800명이었던 대조직이 마지막 청산작업을 위해 관리·법무 관련 60여명의 소조직으로 줄었다. 이희범 위원장 역시 공식 임기가 내년 3월까지다. 이 위원장은 "공식적인 역할은 끝났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회계 정리도 남았고, 민사소송도 해야 한다"며 "수차례 사표를 냈지만 처리가 되지 않아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국제무대에서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 받은 올림픽이지만, 개막하기 이전 과정은 여의치 않았다. 경기장 건설 지연으로 인한 공기(工期) 압박, 북한의 핵개발 등 악재가 이어졌다.

"지난 1월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올림픽 참가 의사를 나타내는 순간, 이제 됐구나 했어요. 평창을 위협하는 외부 요인은 다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었거든요."

걱정하던 개막식 날씨 걱정이 사라지고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막했지만, 정작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2월 4일 IOC 집행위원과 저녁을 마치고 평창 가는 차에서 장염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 보고를 받았어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낌이었죠. 즉시 식약처 관련자 등과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숙소를 폐쇄하고, 군인 1000명을 대체 인력으로 즉시 투입했어요. 그것 말곤 큰 문제 없이 패럴림픽까지 순탄하게 흘러가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 것 같아 기분도 좋았고요."

하지만 지금 이 위원장은 당시 보람보다는 답답하고 허망한 느낌이 머릿속에 크게 남아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연아가 성화대에 최종 점화하기 전 특설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연아가 성화대에 최종 점화하기 전 특설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지금 보면 대한민국이 과연 동계올림픽을 치른 나라가 맞는가 싶어요. 세계의 주목을 받던 개폐막식장은 사라졌어요. 개막식 당시 문재인 대통령, 김여정, 트럼프 딸 이방카가 앉은 4층 VIP석마저 철거했더라고요. 이런 장소는 잘 유지해 밀랍인형을 만든다든가 해 보존해 교육적으로 활용해야는데…. 다른 곳에서도 올림픽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결산으로 5500만달러(614억원) 흑자분과 정부가 기금을 출연해 올림픽 시설들을 활용했으면 한다"며 "올림픽 박물관과 아카데미를 만들어 평창올림픽을 기억하도록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올림픽이 끝 났는데 여지껏 해단식도 못 해 조직위 사람들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요청하면 정부에 불평불만 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싫어 말을 아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조직위에서 일하던 민간인 전문가 500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라며 "88서울올림픽 때처럼 정부가 나서 취업을 알선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9/20181229001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