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유채
369×245cm
1601~1605년
드농관 1층 8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미술은 르네상스에서 매너리즘을 거쳐 바로크 시대로 향한다.
바로크 시대 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명암의 차이를 극명하게 하여
훨씬 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3~1610)는 바로 이 테네브리즘의 대가로,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기법에 경도되었다.
<성모의 죽음>에서는 어디선가 인공조명이 비추는 듯한 탁월한 빛의 연출로 인해,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서의 위대함만큼이나 특이한 기행으로도 악명 높다.
어린 시절 페스트로 가족을 잃은 뒤부터 시작된 걷잡을 수 없는 방황과 방랑은,
로마에 체류하던 시절에 급기야 살인으로 이어진다.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손님과 시비 끝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 후 그는 나폴리, 몰타 등을 전전하며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워낙 뛰어난 그림 솜씨 때문에 많은 곳에서 그의 도피를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가는 곳마다 반복되는 행패와 시비로 말썽을 일으켰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한 로마에서 사면령을 논하던 중,
성급하게 로마로 향하다 병에 걸려 객사했는데, 그때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성모의 죽음>은 《성서》속 인물들을
저잣거리 소시민으로 묘사하는 카라바조 특유의 사실주의적 취향이 돋보인다.
숨을 거둔 성모부터 이를 슬퍼하는 제자들 모두
너무나 평범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성모는 카라바조가 알고 지내던 한 창녀를 모델로 하여 그린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그림을 주문한 교회 측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마치 배의 돛을 연상시키는 상단부의 커튼은 그림의 분위기를 더욱더 극적으로 연출한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평생 그린 그림 중 가장 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http://hublog.tistory.com/238?category=414158 [Hu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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