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舊約]강해/◈구약성경 강해(舊約)[종합]

갈그미스(Carchaemish) 전쟁

영국신사77 2018. 9. 6. 21:20

 

 

갈그미스(Carchaemish) 전쟁 
 
              

< 역사 배경 > 
 
              

 본문 말씀 = 대하35:20~25 
 

요시야가 죽다(왕하 23:28-30)

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갈그미스 전쟁(戰爭)이란

B.C. 605년 경 앗수르의 동맹국인 

애굽(埃及) 왕(王) 바로 느고와 바벨론 느부갓네살 2세(歲)가  
              

갈그미스라는 지역에서 격돌(激突)한 전쟁(戰爭)을 가리킨다. 
 
              

이 전쟁은 직접적으로 남 유다 제16대 왕 요시야와

바로 느고와의 므깃도 전쟁과 연관되며,

간접적으로 요시야 사후

남 유다의 마지막 네 왕의 잦은 왕위(王位) 교체(交替) 사건(事件)과도

연관(聯關)된다. 
 
           

 

1. 갈그미스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 
 
             

고대 헷 족속과 수리아 복속의 성읍(城邑)이었던 갈그미스는 
             

지중해 부근 알렙포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제라블루스(Je-rablus)이다. 
 
             

이 성읍은 시리아 지역(地域)에서

유프라테스 지역으로 오가는  관문(關門)으로서,

전략적 요충지이며 교역(交易)의 중심지이다. 
 
             

이런 이유(理由)로 이 성읍(城邑)은

자주 열강의 각축지(角逐地)가  되었는데,

B.C. 15세기 경에는 애굽(埃及)의 왕(王) 투트모스 3세의  치하에 들어갔다가

B.C. 14세기 경에는

힛타이트의 수필룰리우마스  1세의 치하(治下)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B.C. 1200년 경 힛타이트 제국의 멸망(滅亡)과 함께

잠시  독립적(獨立的)인 도시로 존재하다가

B.C. 8~9세기 경 다시 앗수르의  속국(屬國)이 되어 조공(朝貢)을 바쳤다. 
 
             

그리고 B.C. 717년(年) 사르곤 2세에 의해 갈그미스는  
             

앗수르에 완전히 병합되어, 앗수르의 한 성읍이 되었다. 
 
             

그 후 다시 B.C. 605년(年) 갈그미스 전투(戰鬪)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2세가 앗수르 군대를 격파(擊破)하고

이 성읍(城邑)을  차지하게 되었다(렘46:2~12). 
 
 
           

2. 당시 국제 정세 
 
              

갈그미스 전쟁 발발 당시

B.C. 612년 바벨론에 의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성(城)의 함락과 함께

앗수르는 사실상 국가(國家)로서 거의 몰락(沒落)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대신 바벨론이 근동 북방(北方) 지역에서 
              

최대(最大) 강국(强國)으로 군림(君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동 남방의 강대국인 애굽(埃及)은

북방의 앗수르를  견제(牽制)하기 위(爲)하여

팔레스틴과 시리아 지역(地域)으로  
              

세력(勢力)을 확장(擴張)해 나갔다. 
 
              

또한 동시에 수도 니느웨 성을 잃고

거의 몰락(沒落) 상태에 처(處)한 앗수르를

통치(統治)하고 있던 앗수르발리트 2세(歲)와 동맹(同盟)을 맺고

바벨론의 남하(南下)를 공동(共同) 저지(沮止)코자 하였다. 
 
            

한편 B.C. 609년(年)에 발발한 유다 왕 요시야와

애굽 왕  바로느고간의 므깃도 전투(戰鬪)도

갈그미스 전쟁(戰爭)과  밀접(密接)한 연관(聯關)이 있다. 
 

즉 당시 수도 니느웨를 잃고 갈그미스 성(城)을 중심으로

다시금 세력을 정비하고 있던 앗수르는

바벨론의 집중(集中) 공격(攻擊)에  큰 고전(苦戰)을 겪고 있었다. 
 
이에 앗수르가 완전히 붕괴될 경우에

애굽의 운명도 위태하게 될 것을 우려한 애굽 왕 바로느고는

앗수르를 원조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을 지나 북쪽 갈그미스 성으로 진군(進軍)코자 하였다. 
 
              

 

이에 앗수르에 대해

강력한 반감(反感)을 가지고 있던 유다 왕  요시야가

애굽 군대의 진로(進路)를 차단코자 므깃도로 나아가  
              

전쟁(戰爭)을 벌였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 유다는 애굽에 크게 패하였고, 또 요시야도 전사했다. 
 
              

그리하여 유다는 애굽으로부터 잦은 내정 간섭을 받게 되었는데, 
              

제17대 유다 왕 여호와하스가 폐위(廢位)되고,

제18대 여호와김이 등극하게 된 것도

애굽의 내정(內政) 간섭(干涉)에 의해서였다. 
 
 
           

3. 전쟁의 경위 
 
              

므깃도에서 유다 왕 요시야 군대(軍隊)를 격파(擊破)한  
              

애굽 왕(王) 바로느고는 갈그미스로 진군(進軍)해 올라가                

앗수르 군대(軍隊)를 원조(援助)하여

바벨론의 공격(攻擊)을 
              

 일시적(一時的)으로 저지(沮止)시켰다.  
 
              

 그러나 립나 성에 군대(軍隊)를 주둔 시키고

계속해서 바벨론의 공격(攻擊)에 대비(對備)하였다(왕하23:31~34). 
 
              

그러다가 B.C. 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2세가

갈그미스 지역에 대한 대대적 공격을 감행하여

앗수르와 애굽 군대를 완전(完全)히 전멸(全滅)시켜 버렸다. 
 
             

이 당시 애굽 군대의 참패(慘敗) 상황(狀況)이

에레미아 46:1~12에 매우 장엄한 시적(詩的) 문체(文體)로

잘 묘사(描寫)되어 있다. 
 
*에레미아 46:1~12 

     

애굽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

1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애굽에 관한 것이라 

곧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유브라데 강 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패한 

애굽의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라

3 너희는 작은 방패와 큰 방패를 예비하고 

나가서 싸우라

4 너희 기병이여 말에 안장을 지워 타며 

투구를 쓰고 나서며 창을 갈며 갑옷을 입으라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본즉 그들이 놀라 물러가며 

그들의 용사는 패하여 황급히 도망하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함은 어찜이냐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음이로다

6 발이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며 

용사도 피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 북쪽에서 

유브라데 강 가에 넘어지며 엎드러지는도다

7 강의 물이 출렁임 같고 

나일 강이 불어남 같은 자가 누구냐

8 애굽은 나일 강이 불어남 같고 

강물이 출렁임 같도다 

그가 이르되 

내가 일어나 땅을 덮어 

성읍들과 그 주민을 멸할 것이라

9 말들아 달려라 

병거들아 정신 없이 달려라 

용사여 나오라 

방패 잡은 구스 사람과 붓 사람과 

활을 당기는 루딤 사람이여 

나올지니라 하거니와

10 그 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대적에게 원수 갚는 보복일이라 

칼이 배부르게 삼키며 

그들의 피를 넘치도록 마시리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북쪽 유브라데 강 가에서 

희생제물을 받으실 것임이로다

11 처녀 딸 애굽이여 

길르앗으로 올라가서 유향을 취하라 

네가 치료를 많이 받아도 

효력이 없어 낫지 못하리라

12 네 수치가 나라들에 들렸고 

네 부르짖음은 땅에 가득하였나니 

용사가 용사에게 걸려 넘어져 

둘이 함께 엎드러졌음이라

    

 

 

4. 전쟁의 결과 및 의의 
 
              

이 전쟁(戰爭)에 의해 애굽은

더 이상 팔레스틴과 시리아 지역에대(對)한 주도권을

완전(完全)히 상실(喪失)하게 되었다(왕하24:7). 
 
              

그리고 대신 바벨론이 이 지역에서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제18대, 제19대 유다 왕(王)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의해 폐위되고 유

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왕위(王位)에 앉혀졌다. 
 
              

 그리고 B.C. 586년 시드기야도 결국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됨으로써

사실상 남(南) 유다는  B.C. 586년에

이미 B.C. 722년 멸망한 북 이스라엘에 이어

완전(完全)히 멸망(滅亡)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갈그미스 전쟁을 통(通)하여

우리는 당시의  국제(國際) 정세(政勢)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범죄(犯罪)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같은 역사적 배경하(背景下)에서 시행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세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을

새삼 발견(發見)하게 된다. 


http://blog.daum.net/houseshk/729[굽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