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 때 스스로 타는 갈색지방
쥐에 주사 한 방 놨더니 지방 태워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소개
선선한 곳에만 있어도 자동 감량
찬 곳 살수록 ‘갈색’ 더 많고 장수
비만·2형 당뇨 치료 새 돌파구로
갓난아이 체중 5%가 갈색지방, 성인은 0.1%
2017년 미국 하버드 의대 당뇨센터 연구진은 쥐에게 주사 한 방을 놨다. 그러자 혈중 중성지방이 줄고 지방분해가 급격히 늘었다. 주사성분(12,13-diHOME)을 찾아낸 방법이 특이하다. 성인 9명에게 1시간 동안 14℃ 시원한 물이 흐르는 재킷을 입혔다. 그러자 혈액 속에서 ‘주사성분’이 급증했다. 즉 사람 피부온도를 떨어뜨리자 주사성분이 생산됐고 이 성분이 지방을 없앤 것이다. 그렇다면 피부를 차게 하면 ‘헉헉’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뱃살이 줄까. 답은 ‘그렇다’이다.
‘북극곰’ 수영이나 냉수마찰을 하는 사람은 찬물 자극이 몸에 좋다는 속설을 믿고 있다. 사우나 냉탕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 몸에 좋을까? 혈액순환은 좋아지겠지만 뱃속 지방까지 태울 수 있을까. ‘냉탕’이란 단어는 10년 전 만난 중국 지린대학 노교수를 떠올리게 한다. 60을 훌쩍 넘긴 그는 강물수영을 즐긴다. 강물, 바닷물은 여름철이라도 실내수영장보다 차다. 찬물 수영 덕일까. 그의 몸이 단단하다. 그가 살던 동네에서는 강물수영하는 ‘장수’ 어르신들이 많다. 그는 필자에게 이야기했다. “찬물 피부자극에 뭔가 과학적 비밀이 있을 거야. 한번 캐 봐.”
고대 그리스에서는 몸 단련 후 냉수마찰을 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강물수영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18세기 영국 빅토리아여왕 시대는 찬물 치료법 전성기였다. 진화론 대가 찰스 다윈도 치료차 자주 찬물 목욕을 했다. 찬물 피부자극이 몸에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고교 시절 야외수영장 수업에는 긴 대나무 막대가 늘 등장했다. 수영 도중 몸을 ‘부르르’ 떠는 놈들 머리 위에 어김없이 막대가 날아들었다. 수영장 찬물에서 뜨거운 소변을 방출하면 체온이 그만큼 쉽게 떨어진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근육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체온이 떨어지면 체온조절 중추는 비상이다.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보온방법이 없다면 최후 방법은 ‘근육을 움직여 열 발산하기’다. 한겨울에 반바지로 나서면 마음과 달리 몸이 저절로 덜덜 떨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건 성인 이야기다. 성인과 달리 신생아는 이런 기능이 완전치 않다. 추위에 노출된 신생아는 위험하다. 유일한 대비책은 몸속 갈색지방이다. 갈색지방은 몸속 비상보일러다. 흰색인 지방이 갈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지방세포 내 보일러(미토콘드리아)가 많기 때문이다. 신생아들은 근육을 떨지 않는 대신 이렇게 갈색지방을 태워 추위에 대응한다. 이 갈색지방은 성인이 되면 없어지는 것으로 그동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에게도 남아 있다.
93세까지 산 덩샤오핑, 바다수영 하루 8번도
2009년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성인에게도 갈색지방이 남아 있음을 밝혔다. 갈색지방은 유아시절에는 체중의 5%지만 성인이 되면서 0.1%까지 줄어든다. 갈색지방이 있는 부위는 가슴· 목·척추다. 갈색지방은 많은 보일러(미토콘드리아) 덕에 포도당을 금방 연소시킨다. PET-CT(양전자방출 단층촬영)로 촬영하면 포도당이 많이 분해되는 곳, 즉 갈색지방 크기·위치를 알 수 있다.
최근 ‘핵의학잡지’에 따르면 갈색지방이 남아 있는 성인은 전체의 3(남)~7%(여)밖에 안 된다. 나이 들면 더 줄어진다. 놀라운 사실은 갈색지방량이 사람에 따라 27배까지 차이 난다. 에너지소비량과 혈류량도 5배, 1.7배 차이가 난다. 갈색지방이 많은 사람은 많이 먹어도 지방을 자동 연소시킨다. 만약 백색지방을 갈색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뱃살 걱정은 없을 것이다. 바꾸는 방법이 있을까?
2018년 미국 카롤린스카 연구소팀은 쥐에게 주사를 놨다. 그러자 흰색지방이 갈색지방으로 변했다. 주사는 혈관생성 수용체(VGFR1)를 자극해서 구석구석 미세혈관을 촘촘히 만들었다. 즉 산소공급과 열 발산에 필요한 혈관들을 백색지방 곳곳에 설치해서 갈색지방으로 변신시킨 셈이다. 이 방법으로 신경망도 깔렸다. ‘피부가 차갑다’는 신호를 받은 두뇌는 교감신경을 통해 갈색지방 보일러를 작동시킨다. 단순 기름 창고였던 백색지방이 연소시설을 완벽히 갖춘 갈색지방으로 바뀐 셈이다. 그런데 갈색지방이 늘어나면 뱃살이 얼마나 빠질까. 갈색지방을 태우는 현실적인 방법은?
찬 공기를 쐬면 갈색지방은 스스로 탄다. 덕분에 기초대사량이 2~5% 증가하고 적응되면 15%까지도 늘어난다. 5%만 늘어도 1년이면 3.5㎏ 자동 감량된다. 그런데 갈색지방이 별로 없는 사람도 노력하면 될까. 일본 연구진은 원래 갈색지방이 없는 청년 12명을 하루 2시간씩 6주간 17℃ 선선한 방에서 지내도록 했다. 이것만으로 하루 108㎉를 더 소모했고 6주 후 적응되니 289㎉를 더 소비했다. 선선한 창가에서 1시간씩만 있어도 갈색지방 자체가 23% 늘어난다. 건강도 좋아진다. 실제 4011명을 조사하니 갈색지방이 많은 그룹은 적은 그룹보다 체중이 5㎏ 덜 나갔고 복부·피하지방·혈당·중성지방·나쁜 콜레스테롤(LDL)이 낮았다. 이제 힘들여 근육을 늘리지 않아도 살을 뺄 수 있는 묘책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갈색지방의 진가는 따로 있다. 바로 장수 열쇠다.
10℃ 방서 2시간 후 장수호르몬 70% 증가
93세 건강 장수한 덩샤오핑은 평소 바다수영을 즐겨 하루 8번 한 적도 있다. 선선한 바닷물 수영은 그에 말에 따르면 ‘기세(氣勢)를 높인다’ 했다. 냉수마찰은 한방 전통장수비법이다. 저온 장수에 도움을 주는 걸까.
캐나다 연구진은 건강 청년 6명을 2시간 동안 찬 방(10℃)에 머물게 했다. 그러자 혈중 ‘아디포넥틴’이 70% 증가했다. 이를 보던 연구진이 무릎을 쳤다. 아디포넥틴은 장수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실제 100세 장수노인 118명과 228명의 자손들을 조사해 보니 모두 이 호르몬이 36% 높았다. 더 조사했다. 피부를 차게 하면 늘어나는 호르몬들(FGF-21, Sirt1, Irisin)이 모두 장수노인에게서 높게 나타난다. 이 장수호르몬들은 인슐린 민감성을 높여 2형 당뇨를 줄이고 골다공증을 막고 혈관탄력을 유지한다. 피부저온요법과 장수와의 연결고리를 찾은 셈이다. 그럼 시원한 곳에서 사는 것이 장수할까? 동물들을 보자.
같은 동물 중에서도 유독 장수하는 회색다람쥐(24년/일반 다람쥐 14년), 누드쥐(32년/ 일반 쥐 3년)는 모두 갈색지방이 많고 활성화되어 있다. 고도가 같을 경우는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즉 더 찬 곳에 살수록 갈색지방이 많고 오래 산다. 모두 저온자극이 갈색지방을 늘리고 장수에 직결됨을 보여 주는 예다.
과학자들은 비만, 2형 당뇨 치료의 새로운 돌파구가 갈색지방이라 직감한다. 기존 당뇨치료약은 모두 약해진 췌장기능을
높이려 한다. 반면 갈색지방은 몸속 지방자체를 낮추는 근본치유법이다. 피부를 차게 자극하자. 운동자체도 장수호르몬(Irisin)을 내보내 갈색지방을 높인다. 과학자들이 저온자극물질을 찾아내서 알약으로 만들 때까지는 찬 공기가 피부스침을 즐기자. 그게 갓난아이가 다 큰 어른들에게 가르쳐 주는 장수노하우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서울대 졸업. 미국 조지아공대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창의재단 바이오 문화사업단장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를 통해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