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經Bible말씀敎會예배 * 선교사

이유 없는 고난(고후 4:11)

영국신사77 2018. 5. 7. 23:54

2011. 3. 6. 성찬주일설교

이유 없는 고난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1)

내 말을 한번 따라해 주십시오. 

나는 오늘 행복합니다. 

나는 오늘 평안합니다. 

나는 오늘 건강합니다. 

나는 오늘 만사형통합니다. 

옆에 계신 분보고 

오늘 교회 잘 오셨습니다.


<서론>

저는 “이유 없는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게 되면 으레 하는 것이 

무슨 죄를 저질러서 보응을 받고 있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저 말은 안하지만 

숨은 죄를 지어가지고서 이 고난을 당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가 없이 

고난을 당하면 당황하게 됩니다. 

내가 아무 이유도 없는데 고난을 당하게 되나.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하게 되나요?


<본론>

1. 주님의 구원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

첫째로, 주님의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유 없어도 고난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거리를 걸어가는데 맹인이 앉아서 구걸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전통적인 생각으로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이 맹인이 되어서 구걸하고 있는 것은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조상의 죄 때문입니까?” 

대개 안되면 조상탓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 보고 

“이 사람의 죄도 아니고 조상의 죄도 아니다.” 

“그럼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려고 이렇게 작정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연출하려고 하시는데 

배경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배고픈 사람에게야 “ 밥퍼!”가 효과 있지 

배가 부른 사람에게 밥퍼는 효과 없어요. 

우리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하시는 참 거룩한 일이지만 

노숙자들이나 배고픈 사람에게 밥퍼가 필요하지 내게는 밥퍼가 필요 없어요. 

아무리 밥퍼 밥퍼해도 나는 바뻐서 안받아 먹겠다고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퍼가 효과가 있습니다. 그때 사진은 그때 찍어야 되요. 

그때 찍어야 아 정말 훌륭한 일을 한다. 

배 안고픈 사람에게는 사진도 못 찍어요. 안 받아 먹으니까. 


주님께서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사람에게야 쓸데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원이 나 병고쳐 주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어요. 안 아프니까. 

그런데 이 성경은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날 때부터 맹인된 이 사람은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맹인의 눈도 뜨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조금 안되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사람을 그릇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천당가면은 아마 하나님이 보상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 장님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오늘날 예배 보면서 제가 강단에서 설교할 재료가 있어요. 

이것 없었으면 뭘 설교합니까? 

장님을 눈뜨게 한 하나님이 계십니다. 

와~ 하나님 장님을 눈뜨게 하셨으니 나의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겠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1절로 12절에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자기의 죄나 조상의 죄로 인하여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료의 영광이 나타나기 위하여 맹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유 없는 고난 아닙니까? 맹인 될만한 이유가 없어요. 죄를 짓지 않았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그릇으로 태어났으니까 

틀림없이 하늘에 대한 보상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의 삶 속에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다가와야 예수님이 살리는 영광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해외 선교를 나가서 한참 선교해야 되는 때에 

몸이 굉장히 아플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열이 나고 몸이 아픕니다. 

당장 제일 먼저 생각하지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 내가 하나님께 매를 맞느냐. 

생각해 봐도 죄지은 것이 없어요. 

죄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다고 말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특별히 무슨 열을 나게 하고 얻어맞게 할 죄를 지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열이 고침을 받고 몸이 나아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느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의지하는데 

건강할 때는 의지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있다가 

성경책 들고 설교하러 가는데 아프니까 

설교하다가 넘어지면 안되겠으므로 결사적으로 기도하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력도 나타나고 은혜도 쏟아집니다. 


병자 위한 기도할 때 많은 병자들이 나았다고 손들 때 

나도 속으로 늘 말하기를 

하나님 저도요, 저도요! 

지나지 마시고 저도 고쳐 주시옵소서.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난 다음 

호텔에 돌아오면 병도 낫고 

그날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난 것은 

내가 약할 때 하나님께 의지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빛이 나타나려면 무슨 배경이 있어야 됩니까? 

저 대신 설교 한번 해 보십시오. 

빛이 나타나려면 뭐가 있어야 돼요? 어둠이 있어야 돼요. 

어두워야 빛이 나면 야~ 빛이다. 

항상 밝으면 빛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도 못 알아 듣습니다. 

그리고 낮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 설명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밤이 있어야지요. 

밤이 있으면 그 다음 낮이 밤으로 말미암아 증명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잘사는 사람입니까? 

배가 고파봐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 때 고마운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에 미국의 TYK그룹 김태연 회장님 일행이 참석을 했습니다. 

난 김태연 회장님의 생애에 관해서 옛날부터 이야기를 듣고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건너갈 때 빈손 들고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느냐. 남의 집 식모살이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수십개의 회사를 거느린 회장이요,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김태연 회장을 보면 존경을 합니다. 

가난한 헐벗고 굶주린 자리에서 오늘날 회사를 수십개 거느린 회장이 되었다. 

입지적인 인물이다. 야~ 훌륭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부자로 갔으면 그런 것 할 재간이 없어요. 

왜냐면 부자로 있는 사람이 뭘 칭찬 받아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은 지가 부모 덕분에 부자로 있었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우리 김회장 한번 일어나 보십시오. 여기 어디 있을거야. 고맙습니다. 

부자로 미국 갔었으면 여기 와서 제가 일어나라고도 말 안해요. 

무일푼으로 가서 큰 사업을 일으킨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즈니스 우먼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가난도 필요할 때가 있어요. 

아름다운 삶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삶의 고난이 있어야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평안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안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해야 평안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반드시 어둠이 있어야 빛이 드러나고 

배고픔이 있어야 배부름의 축복을 알게 되고 

추운 사람에게 따뜻한 기후와 따뜻한 의복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삶의 고난이 있어야 

평안을 주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데 우리를 도와줄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다 편안하게 사는데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말씀하시면 

혼자서 수고 하십시오 나는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할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렵고 고난스러운데 

주님이 오셔서 손을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감사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이 지금 필요합니다. 

왜, 고난이 있을 때 

고난에서 도와주는 예수님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1절로 12절에 보면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항상 누구를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진다. 

예수님은 위대한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의 임금이신데 

그 생명이 나타나려면 여러분이 죽어줘야 돼요. 

안 죽어주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요.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를 살려서 천천 만세에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영광의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사로가 죽어줘야 돼요. 

다 살아만 있고 나는 안죽겠다고 하면은 주님의 영광은 나타나지 못하지요. 


여러분 생각하기에는 그것 불공평하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고난을 당한 무대에 올라가야 되느냐. 

그렇게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그러나 반드시 주님은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삼고 

나중에 크나큰 보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고난 당한 사람 

주님께서 빈손 들고 가도록 만들어 놓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2부, 3부에 우리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이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저는 텔레비를 통해서 내 방에 앉아서 보고 듣고 크게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기를 

참~ 옛날에 제자들이 풍랑 만난 것 잘했구나. 

그때 풍랑 만난 사건이 없었으면 

오늘 저런 설교를 할 재료가 없을 것인데 

다행히 풍랑을 만났기 때문에 

이 목사님이 그것을 가지고 설교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큰 축복과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50년 목회를 한 조용기에게 도움이 되는데 

평신도에게 도움이 안될 턱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때 열 두 제자가 풍랑 만난 것 잘 만났어요. 

내가 나중에 천당가면 

베드로를 위시해서 열 두 제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내가 할 것이에요.


마가복음 4장 35절로 39절에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여러분의 인생의 배가 풍랑을 만나도 예수님만 계시면 오케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 안계신 것이 문제지 

예수님이 같이 계시는데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데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왜 풍랑을 만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 보십시오. 

예수님을 모시고 있어도 예수님이 주무시고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에 재미가 있어서 

예수님 주무시도록 내버려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하고 이야기를 해줘야지요. 

배를 타고 주님하고 재미있는 하나님의 나라 말씀을 나눴더라면 

예수님이 풍랑에 이르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 내버려 놓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날 예수 안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그러나 주일날 한번 와서 인사만 하고 가고 

집에 들어가면 예수님 온데간데 없고 

일주일 내내 자기 혼자 가족들과 사업이나 하고 

생활이나 하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나 예수 믿는데 왜 풍랑 만났느냐.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서 보니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으므로 그 집에서 주님은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깨워 일으켜야 돼요. 어떻게 깨워 일으키느냐.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해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깨워 일으키면 

주님이 풍랑을 꾸짖으시고 풍랑이 잠잠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건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성경을 읽고 교훈을 받고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지만 

주무시면 안되겠구나. 

예수님, 주무시지 마세요. 

매일 새벽기도도 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하고 성경도 읽고 찬송도 하니까 

주님 주무시지 말고 나와 함께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을 주무시지 않게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을 간절히 찾게 하기 위해

둘째로, 고난이 왜 이유 없이도 다가 오느냐면은 

주님을 간절히 찾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등따수고 배부르면 하나님 안 찾잖아요. 

삶의 해답을 누가 갖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고통당해야 삶의 해답을 가진 예수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알고 

우리가 그 은혜의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있는 사람은 중생의 복음을 주시는 예수님께 찾아가서 

용서와 의를 얻게 되고 

성결과 성령충만을 원하는 사람은 

성령충만의 복음을 주신 예수님께 찾아가서 

기도하고 구하면 거룩하고 성령충만을 얻게 되고 

신유의 복음을 치료받고 건강을 원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가서 구하면 신유를 얻게 되고 

축복의 복음은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가면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얻게 되는 것이고 

재림의 복음을 원하는 사람은 

부활 영생 천국을 간절히 찾고 예수님께 나가면 

주님 앞에서 부활 영생 천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당해야 해답을 사람은 찾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없는데 왜 하나님을 찾아요? 문제가 있으니까 찾지..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손들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 하셨는데 

여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오는 것이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는 사람은 

짐을 벗겨주는 예수님께 찾아오지 않습니다. 

내가 짐이 없는데 뭘 주님 찾아가서 짐 벗겨 달라고 하겠습니까? 

무거운 짐이 있으니까 짐 벗겨 달라고 하지요.


예레미야 29장 12절로 13절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기도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구하고 찾으면 

주님을 만나게 될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고 찾는 사람은 

답답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기 집 우물이 마른 사람이 물 구하러 가지 

자기집 우물에 물이 콸콸 솟아 오르는데 

물 구하러 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을 당해야 기도하지 고난 안당하면 기도 안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시험을 피하고 시험을 이기고 시험을 감당한다는 것은 

시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시험이 없으면 피할 필요도 없고 

감당하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학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왜 밤을 새워가며 

머리띠 두르고 열심히 공부했습니까? 시험 치려고... 

시험이 없으면 공부 안해요. 

그러나 시험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시험을 잘치려고 

애를 쓰고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고난이 많아야 하나님이 건지시는 은혜도 

많이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해요.


제가 어느 큰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면서 

제가 17살에 폐병 걸려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의사가 여섯 달밖에 못 산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집에 와서 추운 냉돌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 때 

그때 비통한 심경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6.25사변으로 부산만 남았는데 

언제 부산도 함락될지 모르는 그러한 처지에 있었는데 

폐병까지 걸렸으니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렇게 되니까 내가 예수를 안 찾을 도리가 없어요. 

살려면 찾아야 돼요. 

아무도 도와줄 자 없어요. 

다 자기 살기에 바쁘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부르짖고 찾아서 예수를 믿게 되고 

우리가 대대 불교신자 집안인데 

절대로 우리 아버지께서 예수 믿는 것 허락 안할 것인데 

자식이 죽게 되어서 마지막 부르짖으니까 말할 수가 없어요. 

보고도 가만히 있어요. 눈만 깜빡깜빡 하시고... 

내가 건강했으면 절대로 예수 못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게 되니까 성경책도 읽고 내가 기도하고 

그리고 교회도 나가고 

여섯 달 만에 죽은 것이 아니라 여섯 달 만에 살아났어요.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고 

나로 말미암아 우리 가족들이 다 구원을 받고 

그 폐병 덕분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제가 세계를 116바퀴를 돌면서 천하만국에 복음을 증거 했고 

은퇴하고 난 다음 이제 쉬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꿔 먹었어요. 

안되겠다. 도로 또 온 천하만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해야 되겠다. 


그 이야기를 설교했더니만 

나중에 목사님이 내게 와서 꿇어앉아서 안수를 해달라고 그래요. 

무슨 안수를 해줍니까? 

나도 폐병 좀 걸리게 해주십시오. 

나는 우리 아버지가 교회를 세워서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세운 것에 후계자로 들어와서 

아무 고생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뼈 속에 체험도 못하고 

살아있는 하나님을 설교할 때 

증거 하려고 해도 체험 못했으니 증거를 못하니까 

죽지만 않게 해주시고 안 죽을 만큼 병이 들어서 

고생 좀 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렇다. 

정말로 폐병에 걸려서 숨을 쉴 수가 없고 

밤에 자다가도 화닥딱 일어나는 것은 

목이 콱 막히고 숨을 못 쉬어서 

일어나서 방안을 허덕이고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그래도 그 고통을 당하겠느냐고 하니까 

그리고 난 다음 목사님처럼 

큰 교회 목회하고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 증거 할 수 있다면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 아닙니까? 

내가 그날 그 사람에게 설교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구나. 

그 사람은 좋은 부모 만나서 팔자 좋은 것 부러워했더니만 

아니구나. 우리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해서 

내 팔자가 좋았으면 편안해서 살았으면 

저는 지금 목사도 안되고 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험과 고난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없이 어떻게 복을 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릇을 준비하고 난 다음에야 그 그릇에 복을 담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와 같이 있는 것을 주님이 나타내려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고

 원수가 나를 쳐들어와야 

주님이 내 머리에 기름 바르시고 잔이 넘치게 해주신다. 

원수가 안쳐들어 오는데 

그릇이 준비 안되는데 어떻게 잔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안 좋은 것은 주님이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까 좋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 당하면 

그 해답을 가지고 계신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 들면 치료의 주님을 찾고, 

실패하면 승리의 주님을 찾고, 

죽음 앞에서 부활의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삶의 해답을 갖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3. 강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셋째로, 강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또한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는 친히 온전하게 만드시고 

굳건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는 이 세상에 고난이 다가오면 

보이지 않는 천국이 마음 속에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질 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우리는 영원한 천국의 품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 통계를 보면 1996년 국민소득 1만 불이 넘으면서 

교회 출석률이 40%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사람들은 

주일에 산으로, 들로, 사업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기도원도 마찬가지여서 국민소득 1만 불이 된 다음 

기도원 출석률도 역시 30%로 떨어져서 

열악한 기도원들은 모두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교인이 출석률이 가장 좋았던 때는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전쟁으로 

온 국민이 어마어마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을 때 

교회 출석률은 95%였었습니다. 

고난이 닥치자 그 영혼에 구원의 불길이 타올랐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워 해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가까이 옵니다. 

좀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게 되면 

그만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이 식어지고 느슨하게 되고 

하나님을 뜨겁게 찾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고 

강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하여 고

난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수월찮게 먹었으니까 

젊은 의사들이 나를 벗겨놓고 난 다음 만져보고 

아~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근육이 꽤 붙었는데요? 

반드시 그 말을 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아령도 하고 무거운 역기도 들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근육이 붙습니다. 

꾸준히 하세요. 그것 보십시오. 

육체도 고난을 자꾸 가하면 근육이 붙어요. 

이것을 편안하게 놔주면 근육이 붙지 않아요. 


우리의 영혼도 고난을 당하면 믿음이 강해져요. 

고난을 당하지 아니하면 기도도 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게 되고 

영적으로 신앙이 약해져요. 


그러므로 하나님도 

정말 참 우리를 다스리기 힘드실 것입니다. 

좀 잘되게 만들어 놓으면 신앙이 떨어지고 

또 신앙이 떨어지면 못살겠다고 

또 온갖 몸부림을 치고 부르짖고 그러니 

잘되게 해도 큰 문제고 

안되게 해도 문제고 정말 

우리 아버지 하나님 고생 많이 하십니다. 

그래도 잘되게 해주십시오.


4.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하여 

고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만큼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 없습니다. 

아무리 건방져도 고난 당하면 깨어지고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육신의 가시에 대한 말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 선생은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은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아무리 안그런다고 해도 교만해져요. 

자랑을 하게 돼요. 

교만하고 자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가 다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은사가 바울선생에게 남게 하려면 

겸손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할 수 없이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줬습니다. 

사탄에게 허락해 가지고서 바울을 찔러라! 괴롭혀라! 

그래서 바울을 계속 괴롭히니까 

자기가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낮아져서 하나님 도와달라고 간구하지요. 

그러므로 바울선생이 끝까지 신령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의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낮아지게 하기 위해서 

고난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주님만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에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오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시편 107편 12절에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다.

고통이 와서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부드러운 인격을 갖도록 

훈련과 연단을 시키는 것은 고난인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깨어지고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겸손해지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완전한 인격자를 만들기 위해서 고난의 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 형상에 걸맞는 사람이 되게 

교육시키는 교육자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축제가 있는데 유월절이라는 축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모세를 따라 300만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데 

그때 대표적인 음식이 쓴나물과 무교병과 

삶은 달걀을 꼭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쓴나물을 왜 먹었느냐 하면은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던 생활이 쓰디쓴 삶이었다. 

잊지 말라. 종살이 할 때가 얼마나 썼다는 것을 잊지 말라. 

다시는 종살이 하지 말라. 

그리고 무교병은 발효되지 않은 떡입니다. 

그냥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인데 

빨리 밤에 애굽에서 나온다고 

그냥 떡반죽을 해가지고 보따리에 싸서 걸머지고 나왔지 

발효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그것을 먹으라. 

그 다음 계란을 먹었는데 

계란을 그냥 먹지 말고 삶아서 먹으라. 

왜 계란을 꼭 삶아서 먹어야 되느냐. 

여러분 다른 물건은 다 삶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부드러워 지지요? 

그런데 삶으면 삶을수록 단단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계란입니다. 

그것 왜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가면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 고생을 통해서 너희가 나왔다. 

그래서 너희가 믿음이 강해지고 신앙이 튼튼해진 것은 

고난을 통해서 된 것이다. 광야를 통해서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강한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란을 삶아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야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은 고난이란 교육과정을 통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됩니다. 

고난이 있어야 축복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적은 축복은 적은 고난을 통해서, 

중간쯤 축복은 중간쯤 고난을 통해서, 

많은 고난은 반드시 많은 축복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내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마침내 복을 주려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 고난을 받아들여서 변화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법학자요, 철학자인 힐티는 말하기를 

“대개 행복한 때보다도 

  고난의 때에 하나님은 더 가까이 계신다. 

  그래서 행복한 때보다 고난에 처한 때가 신앙에 더 좋다.”


칼빈은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틴 루터는 

“고난은 축복을 갖다 주는 지름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은 축복을 싸고 있는 보자기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축복이 따라오는 이유는 

축복을 싸서오는 보자기가 고난입니다. 

보자기를 싹 펼치면 축복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유 있는 고난도 좋고 이유 없는 고난도 좋습니다. 

고난 당할 때 원망, 불평, 탄식하지 마시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더 위대한 축복이 올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여의도순복음교회   http://www.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