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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기획] 어른 멜로·실버 예능… TV는 지금 ‘중장년 전성시대’

영국신사77 2018. 4. 16. 13:37

[세태기획] 어른 멜로·실버 예능… TV는 지금 ‘중장년 전성시대’


입력 : 2018-04-14 05:00

[세태기획] 어른 멜로·실버 예능… TV는 지금 ‘중장년 전성시대’ 기사의 사진

아줌마·아저씨… 조연에 머물다 ‘100세 시대’ 주인공으로 격상
이혼 증가 등 싱글 중년 늘면서 가족보다 중년 로맨스에 눈길
예능에선 ‘인생의 깊은 재미’ 탐구… 젊게 사는 노인들도 주목 받아

“오십이다 이제, 내일모레면. 너도 내가 늙었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는 넌 몇 살이니?” “저는 마치 서쪽 바람처럼 늙었으며 새로 태어난 애벌레만큼 어리기도 합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이혼남이 혼자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 인공지능(AI) 프로그램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 남자는 광고회사 이사로 잘나가지만 어느 날 혼자 사는 집에서 고독사한 채 발견될까 걱정하는 외로운 중년이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염색도 하지 않고, 아웃도어 패션으로 호텔 커피숍에 나타나는 이 남자는 멜로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SBS)의 주인공 손무한(감우성)이다.

멜로에서 ‘젊음’은 필수조건이었다. 기존의 공식을 따랐다면 손무한의 상대역으로는 띠동갑 정도로 젊은 여성이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폐경 오고, 갱년기 오면 독거노인이야. 독거노인이 언니 미래야”라는 잔소리를 동생에게 듣는 ‘꺾어진 구십’이자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하게 된 안순진(김선아)이 여주인공이다.

‘멜로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양념처럼 곁들여졌던 중년의 러브스토리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옮겨오면서 ‘어른 멜로’라 불리는 중년의 로맨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키스 먼저 할까요’뿐 아니라 ‘우리가 만난 기적’(SBS),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MBC)와 최근 종영한 ‘미스티’(JTBC)까지 색깔은 다르지만 본질은 ‘어른 멜로’인 드라마가 늘고 있다.

예능도 다르지 않다. ‘미운 우리 새끼’(SBS), ‘라디오 스타’(MBC), ‘아는 형님’(JTBC) 등 인기 예능의 주요 등장인물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다. 여기에 ‘윤식당’ ‘꽃보다 할배’(이상 tvN), ‘할머니네 똥강아지’(KBS)처럼 노년의 배우들이 주요 인물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나왔다. 노년 세대가 주인공인 ‘실버 예능’은 매번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호평을 받았다.

TV 드라마와 예능의 주인공이 40대 이상 중장년층으로 올라가게 된 건 왜일까. ‘100세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40대는 ‘아저씨’나 ‘아줌마’로 간단하게 설명되는 존재였다. 엄마, 아빠, 회사 임원, 장남, 며느리, 식당 주인 등 사회적 지위에 따른 칭호와 중년이라는 통칭이 40대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돌입한 요즘 40대는 더 이상 과거의 ‘중년’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수식어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되짚는 시기가 40대다. 존재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고민이 멜로나 예능 장르를 차용해 그려지는 것이다. 이혼율이 올라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 사는 중년이 늘어난 시대적 분위기도 중장년층의 이야기에 다양성을 불어넣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가족 위주의 사유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40대의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인생 고민이 ‘어른 멜로’와 같은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40대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과 달리 청춘 로맨스는 ‘위대한 유혹자’(MBC)처럼 다소 ‘뻔하다’는 한계를 여러 차례 보여줬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과거 중년의 로맨스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주어진 상황과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각한 취업난에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다는 20대의 청춘 멜로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어른 멜로’의 매력”이라고 짚었다.

예능에서 중장년층이 주요 인물로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20, 30대부터 인기를 끌었던 톱 예능인이 40대 중후반이 된 것도 있지만 이들이 가진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예능에서 계속 다뤄지는 것이다. 중장년층의 폭넓고 깊이 있는 인생 고민은 버라이어티쇼가 되기도 하고 블랙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웃음 소재로 변주가 가능하다.

‘실버 예능’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도 젊게 사는 노년층이 보여주는 색다른 재미 때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모습을 지금의 실버 세대가 보여주고 있다. 어르신들의 경륜과 의외로 젊게 사는 모습이 새로운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