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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을 패션 모델로… "날 좀 보소" 벌써 2000명/'시니어 모델교실' 인기 폭발

영국신사77 2018. 3. 1. 22:28

인생 2막을 패션 모델로… "날 좀 보소" 벌써 2000명

  • 곽래건 기자

  • 입력 : 2018.02.02 03:00 

    ['시니어 모델교실' 인기 폭발]
    평균 60대 중반부터 92세까지… 음악·박자에 맞춰 '턴, 턴, 워킹'
    패션쇼 153번, 해외공연도 18번 "굽은 허리 펴지자 자신감 충만"

    "턴, 턴! 혼자 너무 빨리 나오면 뒷사람이 못 따라와요. 조금만 더 천천히요."

    지난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인근 한 빌딩 지하 1층. 400㎡(약 120평) 넓이의 공간에는 패션쇼에서 볼 수 있는 런웨이가 설치돼 있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워킹 연습을 하는 모델 20여명은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지긋한 시니어 세대였다. 무대 뒤 벽면엔 '노을빛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이곳은 2007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뉴시니어라이프의 모델 교육센터. 매달 15만원 수강료를 받고 시니어 세대에게 모델 강습을 하는데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교육생을 배출했다.

    지난 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뉴시니어라이프 교육센터에서 수강생들이 모델 포즈 교육을 받고 있다.
    ▲ 지난 3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뉴시니어라이프 교육센터에서 수강생들이 모델 포즈 교육을 받고 있다. 수강생 평균 나이는 60대 중·후반, 최고령은 92세다. 수강생들은 한목소리로“모델 교육을 받고 나서 삶이 전보다 즐거워졌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교육생의 나이는 평균 60세 중·후반이고 올해 92세인 회원도 있다. 변호사·공무원·사업가·직장인 등 출신도 다양하다. 정건범(64)씨는 경기도 화성에서 벼와 고추 등을 재배하는 농사꾼이다. 정씨는 "이곳에 오면 농부 옷을 벗고, 화려한 모델로 변신한다"며 "패션쇼장에서 조명을 받고 걸으면 짜릿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장거리 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복순(73)씨는 이날 충남 당진에서 새벽에 나와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등을 갈아타며 교육센터에 왔다. 이씨는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예전과 달리 몸매도 망가지고 구부정한 것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며 "7달 넘게 모델 교육을 받아보니 허리도 펴지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말했다. 사업에서 은퇴해 모델 교육을 받는 김현기(65)씨도 "주변에서 '늘그막에 뭘 그런 걸 하냐'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나만의 당당한 취미가 있다는 게 너무 든든하다"고 했다. 교육생들은 저마다 "구부정했던 어깨와 등도 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사업에 실패해 수년간 집에만 있다가 모델 교육을 받고 우울증을 치료한 회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교육장에서 만난 회원들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날 강사로 나선 모델 차하나(33)씨는 "회원들을 가르치면서 실제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며 "현역으로 활동할 때는 근엄했던 분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새로운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삶을 사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 일부는 모델 교육을 받고 아예 시니어 모델로 일자리를 찾았다. 보청기나 화장품 등 시니어 전용 상품이나 홈쇼핑 의류 모델로 활동하는 것이다.

    교육과 패션쇼에 사용되는 옷은 뉴시니어라이프가 직접 제작한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회장도 디자이너 출신이다. 이날도 교육센터에서 봉제사 등 직원들이 옷을 만들고 있었고, 무대 뒤엔 새로 만든 옷 500여벌이 빼곡했다. 조윤호 뉴시니어라이프 상임고문은 "원래는 노인용품을 판매했는데, 시범적으로 해본 실버 패션쇼의 호응이 너무 좋아 모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회적 기업이 됐다"며 "의도했다기보다 시니어 계층의 수요를 따라가다 보니 사업 모델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시니어 모델과 함께 총 153번의 패션쇼를 열었다. 18번은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해외 공연이다. 일본 오키나와와 규슈를 오가는 유람선에서 선상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작년 7월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노년학·노인의학회(IAGG) 총회 개막 행사에 초청돼 패션쇼를 진행했다.

    패션쇼와 모델 교육을 요청하는 수요가 많아져 교육 장소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노인종합복지관을 비롯해 서울 구로동과 경기도 분당의 'AK플라자' 백화점에서도 모델 교육을 진행 중이다. 경기 고양과 전북 익산에선 모델 교육을 받은 회원이 따로 교육장을 차리기도 했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회장은 "시니어 패션쇼는 옷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패션쇼"라며 "패션쇼를 통해 위축되기 쉬운 노후의 삶을 변화시키고 밝고 당당한 노인 문화를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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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1/2018020103000.html#csidxc3ccf8df6c66303905ad2c4c62b9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