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오숙자> 인터뷰기사
◆ 관리자 09-06
오페라 인터뷰
작곡가 오숙자
인터뷰어*신동욱
유유자적 음을 세공하는 예술가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 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의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하오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가득 피어나오
정태춘의 절창 ‘북한강에서’ 제1절 가사이다. 뜬금없이 이 노래가사를 첫머리에 언급한 이유는 오페라 작곡가 오숙자 선생을 만나기 위해 청량리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망우리, 구리, 남양주를 지나 마침내 오른쪽으로 북한강을 끼고 달릴 때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상으로 오후였지만, 새벽 강 위에 피어오르는 그 현기증 나는 운무(雲霧)의 자태가 머리 속 상상의 스케일을 단숨에 압도해버리는 듯하여 눈 앞이 어질어질해졌다. 이 푸른 강줄기가 서해에 다다르기 숙명처럼 지나야 할 ‘서울’이라는 공간이 노래 가사처럼 정말 그 순간만큼은 ‘아주 낯선 이름’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북한강과 나란히 흐르는 작은 능선들을 구불구불 거슬러 올라가 사람 발길이 뜸한 한적한 산 속에서 유유자적 음을 세공하며 살고 있는 작곡가 오숙자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낮은 대문을 제외하고는 담이라고 부를 만한 벽이 없는 열린 공간 위에 아담하고 예쁜 2층 집이 자리하고 있다. 3년 전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한 집이라 하니 음악 외에 다른 미적감각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관 바로 옆에 집을 얻어 살고 있는 갈색털의 진돗개 ‘블론디’가 전혀 짖지도 않고 낯선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위대한 음악가의 보살핌으로 벌써 득음(得音)의 경지에 올랐는지, 일체의 쓸데없는 ‘짖음’에서 초탈한 듯한 이윽한 눈길의 ‘블론디’가 여느 평범한 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그 불쾌감은 개답지 못한 개, 인간답지 못한 인간, 예술답지 못한 예술 등에서의 ‘~답지’라는 모호성을 향한 것이었다. 개, 인간, 예술에 대한 정의가 아까 머리 속에서 가득 넘쳐흘렀던 그 운무처럼 다시 어질머리를 앓게 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작곡에 사용하는 쿠르츠바일 디지털 그랜드 피아노와 매킨토시 G4 컴퓨터 시스템이 눈에 띄었다. 선생의 영화광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거실 중앙에 메인과 리어로 쓰이고 있는 KEF Q시리즈 스피커 시스템(센터 스피커는 B&W)과 파이오니어 DV-S6D DVD플레이어, 야마하의 DSP-AX2 AV센터, 소니 KL-43HDF8 모니터가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집 안팎에서 선생의 꼼꼼한 성품과 예술감각이 배어나왔다. 큼직하게 뚫린 창 밖으로 펼쳐진 초여름의 신록으로 자꾸 새어나가려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많은 기악곡과 관현악곡을 작곡하셨는데, 언제부터 성악작곡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 1973년도부터 성악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작곡가에겐 으례 예술가곡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과정으로 돼 있습니다. 작곡 기법에는 가요형식이라는 게 있는데, 교과 과정처럼 자연스럽게 가곡을 작곡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1983년에는 70년대에 작곡했던 가곡 10여 곡을 최종적으로 추스려내서 LP판으로 발매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98년에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CD 복각판을 내놓았습니다.
최근에 작곡하신 오페라가 황진이의 일생을 다룬 ‘동방의 가인’입니다. 그런데 오페라 황진이 하면 많은 애호가들이 이영조 선생님이 작곡하신 ‘황진이’를 먼저 떠올립니다. 이영조 선생님의 ‘황진이’와 선생님이 작곡하신 ‘동방의 가인’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 실존했던 인물을 다뤘기 때문에 극의 내용면에서는 이영조 선생님의 ‘황진이’와 별 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인물을 다룬 내용이더라도 대본을 누가 썼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많이 달라집니다. ‘황진이’의 경우, 시인이신 구상 선생이 대본을 쓰셨습니다. 오페라에는 극적인 전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적 구성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극에서는 영화나 연극과는 달리 음악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드러내 보여야 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연기나 대사를 과감히 생략하고, 극의 뼈대를 최대한 단순화시켜 필요에 따라 등장인물과 상황을 강조하는 요소가 필요해지는 겁니다. 한 마디로 미적 단순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이 대본을 써야 합니다. ‘동방의 가인’에서는 이런 극적 구성의 문제와 음악 구성력의 조화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사실 황진이는 당시에 웬만한 석학 이상의 지식, 창의력, 예술 감각을 지닌 똑똑한 여자였습니다.
황진이는 아름다운 외모와 특출한 예술적 재능을 겸비한 역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여인입니다. 하지만 서출이라는 신분상의 콤플렉스가 그녀의 행적 곳곳에 드러나 있고, 또 이중적인 자의식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방의 가인’에서 그녀의 이런 고뇌들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 황진이의 경우, 신분상의 좌절감에서 찾아오는 콤플렉스가 권력 지향적인 욕구로 변이되기보다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전체에 대한 냉소와 염세적 성격이 지배적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녀가 권번에 들어가기로 결심하는 그 순간이 그녀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 전환점이 되었죠. 그때부터 그녀는 평범한 아낙네로서의 삶과 권력자들을 상대하는 기녀로서의 삶 사이에서 내적인 갈등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한 가장의 아낙네로서의 삶을 동경한 그녀는 요샛말로 표현하자면 계약동거를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가슴 속에 품은 애틋한 사랑도 결국 사회적 신분상의 차이 때문에 실현할 수 없었죠. 수많은 남자들의 사랑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언제나 뼈저린 외로움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동방의 가인’에서는 판타지 요소를 적극 활용하여 ‘꿈길에서’라는 이중창으로 황진이의 그런 내적 아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직접 작곡하신 입장에서 볼 때, 이 ‘동방의 가인’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 아직 초연이 이루어지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군요. 사실 오페라는 정식으로 무대에서 공연되기 이전에는 그 작품을 작곡한 작곡가 자신도 작품의 전체적인 색깔을 모릅니다. 공들여 작곡한 아리아와 이중창, 합창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음악적으로 조화를 이룰지 모르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비부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리아인 ‘어떤 갠 날’을 단순히 선율만으로 연주한다면 별 다른 감동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진 아리아로 듣게 될 때 관객들은 큰 감동을 느낍니다. 결과적으로 오페라 작곡의 최종 마무리는 무대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겠죠. ‘원술랑’도 여러 차례의 공연을 통해 부분적인 개작을 거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선율이나 리듬은 어느 정도나 반영시켰습니까?
― 한국적인 선율을 틈틈이 반영시켰습니다. 기생춤을 추는 장면에서 비록 서양 악기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지만 그 선율에는 분명 한국적인 음악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세마치 장단을 비롯, 음악 형식으로 치자면 카덴차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큰북이 솔로로 연주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주로 한국의 타악기를 활용했는데, 한국음악의 특성을 담아내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장르 속성상 오페라는 서양의 예술 형식이기 때문에 서양음악 기법 안에 한국적인 음악 특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의도했습니다. 가령, 황진이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실제 거문고 소리가 아니라 첼로음을 유니즌으로 처리한 것이 그 예입니다. ‘동방의 가인’은 오페라 작품이지 창극(唱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페라라는 유럽 음악 장르와 한국적인 음악 특성과 정서를 접목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과연 최상의 접목이란 것이 가능할까요?
― 그래서 한국 작곡가의 고민이 큽니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서양의 작곡기법을 공부한 분들이죠. 창극이 아닌 이상 서양 음악형식의 틀 안에 한국적인 음악정서를 어떻게 담아내는가의 문제가 여전히 큰 화두로 남아 있습니다. 1982년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 여성 작곡제에서 제가 작곡한 ‘무악(巫樂)’이 입선된 적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한국 무속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곡인데, 무녀의 몸으로 강신(降神), 영신(迎新), 접신(接神)하는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보통 이런 과정을 리드하는 북장단을 그대로 인용하는 음악적 접근법보다는 내 자신의 음악 어법에 충실한 형상화에 주안점을 두고 작곡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어느 누가 음악을 들어도 무속적인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만약 현대음악의 틀 안에서 우리나라의 무악을 형상화하는 작업 과정이 없었다면 한국 무악의 스케일만을 인용하는 수준의 결과밖에 안 됐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무악을 현대음악의 큰 틀 안에서 추상화시키고 형상화시켜 재창조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평론가들부터 ‘굉장히 유니크하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오페라 ‘동방의 가인’은 고전음악의 기법과 한국적 선율을 최대한 접목시킨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현대음악 기법보다는 고전, 낭만파 등의 근대 음악 기법에 한국적 특성을 결합시키기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나비부인’의 작품 배경은 각각 중국, 일본이라는 아시아 국가입니다. 비록 이탈리아 작곡가가 작곡한 작품이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음악성이 잘 표현되었다는 평가를 오래전부터 받아왔는데요.
― 네, 그렇죠. 그러나 ‘투란도트’의 경우엔 의상과 무대 디자인에서 중국적 특성이 드러나지만, 음악 자체에서는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중국음악의 특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최근 공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주얼 쪽에 비중을 더 두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비부인’은 감탄스러울 만큼 일본의 전통적인 선율과 가락이 매력있게 융화된 작품입니다. ‘허밍 코러스’의 선율에도 일본적인 색채가 절묘하게 스며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비부인’은 비주얼 면에서 취약한 작품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해서 여성 오페라 작곡가가 매우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실제로 재능있는 여성 작곡가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극적 구성이 필요한 드라마에 대부분의 여성 작곡가들이 관심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여성 작곡가들이 많은데 오페라 작품을 내놓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오페라 작곡이란 게 큰 스케일을 요합니다. 제가 볼 때 내적으로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감각을 지닌 여성 작곡가는 드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페라 작곡가라고 하면 음악 이외에도 드라마에 대한 이해는 필수입니다. 극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거기서 아까 전에 언급한 미적 단순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뽑아낼 수 있는 겁니다. 저도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예전부터 희귀영화를 찾아다니며 감상하곤 했어요. 문학적인 감수성도 예외는 아닙니다. 오페라 작곡가는 자기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항상 다른 분야에 깊은 관심과 공부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을 부지런히 섭취해야 합니다.
널리 알려진 오페라 작품들의 등장인물이나 캐릭터, 서사구조 등이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매우 전형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현대적 감각의 연출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가끔 선보이긴 합니다만, 기존 텍스트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담은 창작 오페라 작곡 계획은 없으십니까?
― 현재 준비중인 작품이 있습니다. 10명 안팎 정도의 가수가 등장하는 소극장용 오페라 작품인데, 작품 배경과 내용, 등장인물 등도 동시대인이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내용면에서는 관객들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코믹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또 저렴한 제작비로 무대에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장기 공연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존경하는 작곡가는 누구입니까?
― 현대음악 작곡가로는 미국의 조지 크럼을 들 수 있겠네요. 현대음악이라고는 하지만 난해하지 않고 매우 신비스러운 음악을 작곡하는 분이죠. 그리고 역시 현대음악 작곡가인 이탈리아의 리게티도 존경하는 분입니다. 오페라 작곡가로는 R.슈트라우스, 뒤카, 푸치니, 베르디, 바그너가 있습니다. 주변분들이 흔히 제 음악의 오케스트라 스타일이 바그너 스타일을 닮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그너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중후함과 관현악을 이용한 장대한 음향 효과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오숙자 씨 성격도 자그 음악 스타일처럼 선이 굵고 강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실제로는 안 그렇거든요.
음악에는 그 곡을 작곡한 작곡가의 인생이 반영된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에는 그것을 창조해낸 예술가의 고뇌가 담겨 있기 마련이죠.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작곡가 중의 한 명이 모차르트의 말년은 극심한 생활고와 가정내의 불화, 건강의 악화 등이 한꺼번에 겹쳐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끝까지 악보를 손에 놓지 않은 채 작곡에 몰입했습니다. 그의 다른 음악 작품들 속에는 그의 천진난만함과 명랑한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경우도 있지만, 투명한 비애의 그림자가 곳곳에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인간의 삶이 그렇듯 음악에도 작곡가 개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음절 마디마디에 배어 있는 것입니다.
모차르트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모차르트가 작곡할 때 보면 당구를 치거나 술을 마시면서, 심지어는 친구들과 시끌법석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마치 악보를 옯겨 쓰는 것처럼 속필로 써내려갔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 가능합니다. 아마 모차르트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멜로디가 들리는 대로 악보를 썼을 겁니다. 다른 악기들 소리도 동시다발적으로 머리 속에서 울렸을 거예요. 저 역시 그런 경험을 자주 겪어봐서 알 수 있어요. 모차르트 자신은 단순히 머리 속에서 들리는, 울리는 그 소리의 흐름을 오선지에 그려넣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모차르트의 머리 속에서 울리던 그 소리가 악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때 사람들은 그를 처음엔 ‘신동’, 나중엔 ‘천재’라고 떠받들게 된 셈이죠. 그러나 대다수의 작곡가들은 그때그때 떠오른 악상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어요. 한번은 운전중에 가곡의 주제 선율이 갑자기 떠올라 차를 갓길에 세우고 크리넥스 화장지 밑바닥에 오선지를 그리고 음표를 정신없이 그려넣었던 적도 있었어요. 어린아이들이 놀이에 심취할 때처럼 저도 음악을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어나갑니다. 어떤 환희와 몰입 상태에 들어서지 않고서는 음악 창작에서 아무런 희열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사람 목소리 외에 어떤 악기를 좋아하십니까?
― 특정한 악기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오케스트라에서 관현악 파트의 활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곡에서 관현악은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모두들 신중을 기하는 파트입니다. 그런데 다른 작곡가 선생들이 제 작품을 감상한 뒤 관현악 파트의 기민하고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는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작곡에서 관현악 파트를 어떻게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술 활동도 계속 이어나가시고 계신지 궁급합니다.
― 음악 에세이집 ‘고독과 이성’ 이후 특별히 집필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자주 찾는 가곡 사이트에 음악과 관련된 주변의 이야기들을 짧은 에세이 형태로 올리고 있는 정도입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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