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 저가 모든 처녀보다 왕의 앞에 더욱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를 삼은 후에" (에 2:17)
에스더서는 누구에게나 친밀하다. 주인공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국무총리 하만이 히브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그의 삼촌 모르드게로부터 전해 듣고 생명을 걸고 왕의 앞에 나아가 자기 백성의 위험한 처지를 호소하였다. 그리고 지혜를 짜서 교만한 총리 하만으로 하여금 그의 죄에 스스로 빠져들게 하여 모든 유대 민족을 그의 책략에서 구원하고 그 대신 하만과 반 유대 세력에 대한 원수를 갚았다. 그 이래로 유대인들은 에스더에 의해 하만에게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을 지키게 되었다. 에스더는 아름답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여성으로 우리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다.
에스더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여자로 그녀의 부모들이 사망한 후(에 2:5-7) 외삼촌 모르드개의 양녀가 되었다. 그녀의 히브리어 이름은 하닷사(도양금 (Myytle))였다. 에스더란 이름은 페르시아 어의 스타라(Stara)와 연관이 있는 듯 하며 그 뜻은 별을 의미하거나 심지어 바벨론의 여신 이스탈(Ishtar)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1). 에스더는 교만했던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후에 미인대회를 거쳐서 왕의 총애를 받는 왕후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일반 역사에서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였다는 기록이 전혀 없으며 또 그런 미인대회로 왕후를 뽑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먼저 에스더가 정말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였는지 부터 알아보자. 여기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서의 히브리어 본문에 기록된 왕의 이름인데, 그는 셀세스(Xerxes)로서 주전 485년에서 465년까지 21년간 페르시아를 다스린 왕이었다. 에스더서 밖에서는 에스라 4:6과 다니엘 9:1에서만 나온다(2). 성경을 떠난 일반 역사에 셀섹스 왕이 나오지만 왕후 에스더나 모르드개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에스더가 실제 인물이었는지를 의심하며 에스더서의 역사성까지도 인정하지 않는다. 일반 역사는 셀섹스 왕의 아내의 이름을 아미스트리스(Amestris)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녀는 페르시아 장군 오타니스(Otanes)의 딸이었다. 헤로토터스(Herodotus)에 의하면 그녀는 남편의 정부의 팔다리를 잔인하게 절단했으며 14명의 페르시아 귀족 청년들을 종교적 헌신의 행위로 생매장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기록에는 폐위된 왕후 와스디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성경에 기록된 왕후 와스디는 어쩌면 아미스트리스였을지 모른다.
그러면 에스더는 어찌 되는가?
아래와 같은 설명이 제시되어 오고 있다.
1. 일부다처의 사회에서 왕은 한 사람 이상의 아내를 소유했다(Baldwin) 2. 에스더는 아마도 첩이었거나 그 첩 중에 첫째였을 것이다(Schultz) 3.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스트리안(Streane)에 의해 언급된 것으로 롸잇(Wright)이 발전시킨 것인데, 와스디와 아미스티리스의 이름의 유사성을 들어 그들은 하나였으며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3).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에스더서 밖에서 에스더란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이 꼭 에스더가 실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헤로도터스(Herodotus)와 테시아스(Ctesias)의 기록에 의하면 셀섹스 왕의 아내는 아미스트리스였는데, 그녀는 차기의 왕이었던 아닥사스다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헤로도터스는 아미스트리스를 셀섹스 통치 시대와 연관시키지 않고 수년 후에 그녀의 아들 통치 시대와 연관짓고 있다. 이 경우 만일 아미스트리스가 성경에 기록된 와스디 왕후라면 그녀는 464년에 왕위에 오른 그녀의 아들 때까지는 언급이 없으니 그 기간동안에 에스더가 셀섹스의 왕후로 있었을 것이다(4). 이 경우 와스디를 밝힌 것은 에스더서의 목적에 맞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미인 선발대회로 왕후를 뽑았다는 것은 믿을만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섭리하셨는가? 헤로도터스(Herodotus)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왕은 그 땅의 일곱 귀족의 가문 중에 한 가문에서 왕후를 택하도록 요청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무슨 미인 선발 대회를 거쳐서 왕후를 택했다는 것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롸이트(Wright)도 아미스트리는 일곱 귀족 가문 중에 하나가 아니었으며 다리우스(Darius)왕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관습이었지 구속력이 있는 법은 아니었다고 잘 지적하였다(5). 아하수에로 왕은 비이성적인 기질이 있었으며, 더구나 노를 잘 풀지 못하는 성격이었다(1:12; 7:10). 그는 수산궁에 많은 후궁들을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방백들의 말을 따라 미인 선발 대회를 거쳐 왕후를 선택한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런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는가 할 때 그 대답은 쉽지 않다. 하나님께서 무슨 외모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시거나 오늘의 미스 경연 대회도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한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에스더가 적극적으로 그 대회에 참석했다기보다는 사촌 모르드개의 권면이 있었고 또 그녀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자기 의사와는 다르게 이끌려 나갔을 수도 있었다(에 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복수심에 불타는 총리 하만의 계획을 좌절시키며, 하만으로 하여금 아하수에로의 새 왕비를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한 죄에 말려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의 도구로서 하나님을 섬겼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6) 주 1.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Vol 2(Grand Rapids: Zondervan, 1976), p. 374 2.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701 3. F. B. Huey, Jr. Esther, E. B. C, Vol. 4(Grand Rapids: Zondervan, 1988), pp.789-90 4.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p.700 5. F. B, Huey, Jr, Ibid., 6.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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