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育학습科學心理

[박은주의 터치! 코리아] '賞 받는 또라이'를 키워내는 일/2000년 이후 과학 분야 16명의 수상자-일본

영국신사77 2016. 10. 15. 11:17


[박은주의 터치! 코리아] '賞 받는 또라이'를 키워내는 일


박은주 조선일보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조선일보 기자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외국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획일적 가치관, 그게 '생존 무기'가 되는 사회다." "교육제도가 학생들을 압살하고 있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잘 될 거야'하고 격려하기 힘든 시대다. 학생들이 박사과정 진학을 두려워한다. 기초 연구 성과를 사회가 기다려줘야 한다."

도네가와 스스무(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 고시바 마사토시(2002년 물리학상), 오스미 요시노리(2016 생리의학상) 교수가 한 말이다. 기초과학 연구가 '찬밥' 신세인 것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나 '기초'를 연구하는 사람은 배고프다. 돈을 버는 건 '응용 학문'이다. 그게 자본주의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일본에서는 2000년 이후 과학 분야에서만 16명의 수상자가 나올 수 있었을까. 장인 정신, 책임감, '편집증'에 가까운 오타쿠 기질, 외골수 정신인 '헤소마가리(へそ曲がり)' 등 '태도'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결과가 좋으니 장인(匠人)이고 외골수지, 아니면 '똥고집' '또라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해석으로는 타당하지만, 근본 원인을 설명하는 요인으론 좀 부족하다.

복권을 사야 복권에 당첨되고, 연구를 해야 노벨상을 받는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시모무라 오사무 교수는 1955년 '갯반디' 연구로 시작한 연구가 결실을 맺었고, 세포 속 청소 기능을 연구한 오스미 교수도 이 분야 연구에 50년을 바쳤다.

외골수이건 오타쿠이건 배고프면 밥 먹고, 결혼해서 자식을 키운다. '과학자'는 신부나 스님이 아니다. 삶의 기본 조건이 충족돼야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연구'에 매달릴 수 있다.

적어도 일본 과학자들은 어떻게든 '대학 강단'에만 서면 먹고살 길이 있다. 국·공·사립 대학교수 선발권을 가진 일본 문부성 자료를 보면 일본 국립대 교수의 평균 연봉은 1172만엔(약 1억2500만원), 준교수 934만엔, 강사 838만엔, 조교 707만엔이다. 조교만 되어도 7500만원이 넘는다. 우리 대학교수 평균 연봉은 9500만원, 일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하는 '교수급' 강사는 1700만원이다. '공부'를 업으로 하는 이들 사이 격차가 우리는 매우 심각하다. 일본에서도 '교수 철밥통 논란'으로 이 기조가 흔들리고 있지만, 능력 있는 연구원은 연구를 계속한다.

밝은 눈으로 '가치 있는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일본의 연구비 배분 시스템 덕분이다. 오스미 교수는 거의 평생 '나랏돈'으로 연구했다. 논문 수와 외국 학술지 인용 횟수 등으로 연구비가 배분되는 우리 시스템을 적용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연구를 해온 오스미는 '특혜'시비에 걸렸을 것이다.

한 이공계 교수는 "80년대 이후 감사(監査)를 의식해 '계량화 지표' '객관적 지표'로 연구비를 지원한 결과 쓰레기 논문만 양산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20조원에 육박하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정부 연구비를 지원하면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이유다.

'한 우물'도 잘 파야 한다. 엉뚱한 방향 잡아 남의 집 하수관이나 뚫는 게 아니라 '원천(源泉)'을 향해 가는 과학자를 콕 집어내는 안목과 도덕적 엄격성이 필요하다. 제자라서 봐 주고, 고향 후배라서 돈 더 주는 걸 피할 수 있다면 일본처럼 과학 전문가가 명예를 걸고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게 합당하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노벨상' 못 탔다고, 휴대폰 수출 길이 막히는 건 아니다. '발광다이오드' 원리를 발견하지 않아도 TV 품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노벨상이라는 '지적 브로치'를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간절히 원한다면 그 후보들이 '의미 있는 또라이'가 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건 근성 문제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