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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차 가수 하춘화, 테너 박인수의 '노래 제자' 되다

영국신사77 2016. 5. 6. 10:16


입력 : 2013.05.11 03:04 | 수정 : 2013.05.12 11:06

"여섯살부터 노래 잘한다 칭찬… 따끔히 혼내는 스승 필요했죠"
"몇 번 오다 말겠지 했는데 왔다하면 3시간씩 연습해요… 眞聲 향한 열정 배울 만하죠"

'러브 미 텐더, 러브 미 스위트, 네버 렛 미 고~.'

지난달 25일 서울 백석대 음악대학원 성악 연습실. 그랜드피아노 앞에서 두 손 모아 애절히 노래하는 이, 가수 하춘화(58)다. 그 옆에 테너 박인수(74) 교수가 있다. 양미간을 살짝 찌푸린 노(老)교수, 하춘화의 노래를 끊는다. "'텐더~' 할 때 입을 아래위 말고 옆으로 벌려봐요. 아랫니가 더 많이 보이게." 천하의 하춘화가 열 살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따라 한다. "어때요? 소리가 훨씬 명료하고 깨끗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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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앞에서 노래하려니 엄청 떨리네요.” 가수 하춘화(왼쪽)와 박인수 교수가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함께 부르는 모습. /이명원 기자
트로트 가수 하춘화가 성악가 박인수(전 서울대 교수)의 '노래 제자'가 됐다. 작년 늦가을 무렵 일이다.
"조선일보에 데뷔 50주년 맞은 박인수 선생님 인터뷰(본지 2012년 10월13일자 B1면)가 실렸어요.
1600년대부터 250년을 풍미했던 벨칸토 발성법으로 선생님이 목소리를 회복하셨다는 얘기가 나와요.
더 늦기 전에 저걸 배워야겠다 다짐했지요."
하춘화의 전화를 받고 박인수는 의아했다.
"이미 프로이고, 전성기 때 목소리를 여전히 갖고 있는 가수가 내게서 배울 게 뭐 있나, 싶었지요."

하춘화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박인수가 석좌교수로 있는 백석대 음악대학원을 찾았다.
1대1 레슨이 아니라 박인수 소리연구회가 진행하는 '마스터클래스'의 멤버로 합류했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의 성악가들 사이에 섞였다.
"몇 번 오다 말겠지, 했는데 어찌나 진지하고 열심인지.
한 번 오면 내리 3시간 이상 꼬박 서서 연습을 합디다."(박인수)

하춘화는 "중요한 녹화 때문에 한 주라도 선생님 지도를 거르면 불안하다"고 했다.
"노래라는 게 최고점이 없어요. 여섯 살에 데뷔했으니 올해가 노래인생 52년인데,
문득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죠.
다들 '네가 최고야'라고만 하니 자만에 빠졌던 것도 같고.
'네 목소리는 변함이 없어'란 말도 이젠 칭찬이 아니라 질타로 들려요.
누군가 제 노래를 냉정히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 '겸양'에 박인수가 감동했다.
"그래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하는 거요.
난 목소리가 맛이 간 뒤 그걸 깨달았지만,
저 사람은 소리가 살아 있을 때 발성법을 제대로 배울 생각을 한 거니까.
음악은 첫째도 소리, 둘째도 소리, 셋째도 소리지요.
소리가 안 되면 감동도 없어요."

박 교수에게 레슨받으면서 혼난 적은 없느냐고 묻자, 하춘화가 "있지요" 하며 웃었다.
"가요를 오래 부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밴 기교와 장식이 많아요.
그걸 빼라고 하시더군요. 아-에-이-오-우 입 모양 연습하는 것도 힘들어요.
신기한 건, 같은 '오'라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발음하면 알맹이 소리가 나와요.
진성(眞聲)을 터득하는 중이죠."

박인수 교수는 "나 역시 하춘화씨에게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클래식 발성이 자연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예요.
웅얼거리기만 하지 노랫말이 어디 제대로 들리기나 해요?
어찌 보면 벨칸토 창법은 대중음악 가수들에게 이어져 내려온 것 같아요.
말하듯이 노래하니 발음도 분명하고 자연스럽고."

두 사람의 음악 수다가 인생으로 옮아갔다.
하춘화가 "저는 실제 공연보다 리허설 때 노래를 훨씬 잘 불러요" 하며 웃자,
박인수 교수가 맞장구를 쳤다.
 "욕심 때문이지. 내가 그래서 망했잖아.
실제 무대에선 좀 더 튀려고 과욕을 부리다가. 중용으로 못 가고 극단을 택한 죄지요(웃음).
노래도 인생도 힘 빼고 편안하게, 순수하게 가는 게 최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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